▲ 유명애
화가, 예예동산 섬김이

올 추석은 유례없이 열흘이나 계속되는 연휴 탓에 그동안 본의 아니게 격조했던 친척이나 친지들을 찾아보는 기회를 얻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인간 삶에서 가장 보기 좋은 장면은 온 가족이, 한 4대가 함께 모여 늙으신 조부모와 어린 손주들이 서로 닮은 얼굴로 희희낙락하며 어우러진 모습이 아닐까 한다. 기저귀 차던 놈이 어느 결에 커서 제 꼴하고 똑같이 닮은 아이를 안고 왔을 때 가슴 벅차지 않을 부모가 어디 있을까?

이렇게 좋은 가족 사이에 어느 때부터인지 ‘상처’라는 괴상한 말이 침투해 들어와서 서로 원망하고 눈물 흘리는 일이 생겼으니, 이는 사탄의 계략이 아니면 무엇일까 싶다. 우리가 어렸을 때는 한국전쟁 직후의 가난하던 시절이라 그런지 부모에게 매를 맞아도 곧 잊어버리고, 억울하게 욕을 들어도 부모 마음이 편치 않으셔서 가장 믿는 자식에게 쏟아 부으셨거니 하고 오히려 다행히 여기지 않았었나 싶다. 이 좋은 가족 사이가 마치 살얼음을 밟고 지나가듯 말을 조심해서 해야 하고, 심리학인가 상담인가 하는 이론들 때문에 다 지나가버린, 그때에는 아무 문제도 없었던 과거의 일들이 들춰져 그때의 상처 때문에 지금 인격에 어떤 결함이 생겼다는 등 요상한 소리들을 하니 참 답답한 노릇이다.

사람마다 특징이 있어 어떤 사람은 나서기를 좋아하기도 하고 수줍어서 숨기도 하며, 한발 뒤쳐졌다고 매번 후회하기도 하는 등, 가지각색인데 그게 무슨 큰 문제라고 ‘상처’라는 딱지를 붙이고 ‘치유해야 한다고 법석인지 모르겠다. 요즘처럼 ‘음악치료’ ‘미술치료’ ‘독서치료’ ‘스포츠치료’ 심지어 ‘요리치료’라는 말까지 무성하고, 그 방면의 전문가라며 명함을 내밀고 우리를 중병환자로 몰아붙여 치유 받아야 한다고 들이대는 때에, 보통 배짱을 가지고는 정상적인 사람이라 확신하기가 어렵기도 하다.

그 치유라는 미명하에 상담하며 심리적인 미로를 뒤지다보면, 대강 범인은 부모나 가족으로 낙인찍히기가 쉽다. 물론 철없이 부모노릇을 했으니 오죽 실수가 많았으련만, 물보다 진한 피는 그 모든 것을 녹여 없애기에 충분한 것이다. 그 피의 사랑의 효력을 믿으므로 우리는 자식을 낳아 키우고, 벌거숭이 어린 것을 가르치고 돌보는 용기를 갖는 것이 아닐까.

어차피 인간의 비뚤비뚤 일그러진 결함을 가정에서 받은 상처 때문이라고 덮어씌운다면, 결자해지라고 그 아픔들을 풀 곳도 가족의 울타리 안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돈을 들여서 상담하러 가거나 치유센터를 찾아다닐 것이 아니고 말이다. 사실 엄격히 말한다면, 상처라는 말 자체가 다분히 허구적 요소를 갖추고 있지만 말이다. 술주정뱅이 아버지 밑에서 술주정뱅이 아들이 나오기도 하지만,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절대로 술을 입에 대지 않는 아들도 나오는 예를 나는 보았다. 재미있는 것은 실패자인 술주정뱅이 아들은 아버지를 평생 원망하면서 계속 술을 마시지만, 술을 입에 대지 않고 착실히 살아가는 아들은 오히려 아버지를 불쌍히 여기고 이해하려고 했다.

가정이 이런 가족들의 아픔을 풀어 줄 수 있는 길은 ‘용서’에 대한 신뢰이다. 사랑이 충만한 가정에서 자란 자식들은 어떤 경우에도 용서받고 위로 받을 수 있는 부모와 동기간의 품을 알고 있다. 그러나 ‘용서’라는 말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 아직도 효과가 있나 가끔 의문이 들기도 하긴 하다. 너무 계산들이 정확해서, 감정과 마음에서도 손해 보지 않으려는 영악스러움이 무섭다. 희생하고, 물러서고, 불쌍히 여기고, 용서하고… 이런 따뜻한 물결이 언제나 몰려올는지….

TV만 켜면, 계속 사냥개처럼 추적해 오는 적폐청산이라는 미명하에 들추어지는 과거사들과 수렁으로 빠져 들어가는 과거의 인사들을 보며 용서라는 잃어버린 단어가 영영 돌아오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두렵다. 우리 서로 앞날의 희망을 바라보고 덮을 것은 덮고 용서하는 그런 아름다움을 되찾았으면 싶다. 자기를 키워 준 부모와 가족을 향해 상처 준 자로 정죄하기보다는 그리워하고 용서하는 따뜻한 믿음을 지닐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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