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은 1517년에 중세기 낡은 종교의 틀을 벗어나려고 종교 혁명을 시도했는데 21세기 다수의 한국교회는 중세기적인 형식을 즐기고 있으니 동시대를 함께 살아가기가 힘들다. 근래에 들어서 두드러진 풍조는 천당보내기 식 교회들이 대세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교회의 사회적 기여도가 낮아졌고, 정부의 복지정책이 오히려 교회가 주는 안위를 앞서가고 있으니 면목이 없고 부끄럽기까지 하다.

천당보내기 종교가 기독교의 본분이 아니다. 천당은 예수 계시는 곳이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자격으로 인간으로 오신 이상 천당이라는 중세 이전적 종교지상주의 시대의 가치와 결별하고, 인간 사랑의 시간들 속에서 살아가다가 유대교의 이단자로, 로마 황제의 도전자로 몰려 치욕적인 십자가 형틀에서 겪는 죽음까지가 천국의 중심 지대이다. 육신의 날이 끝나고 영의 세계로 옮겨가는 것은 낮이 지나면 밤이 오고, 가을 지나면 겨울 오는 것처럼 순리의 연속일 뿐이다.

한국교회가 지금 루터와 16세기 개혁자들의 500주년 기념탑 앞에서 감격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해도 그 모습들이 감동스럽지 않다. 한국교회의 수준과 속마음은 교회당 간판에서 잘 드러나 있다.

교회당 간판에 행정단위 이상의 이름표를 선호하는 그 수준에서 한국교회는 결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이 정직하지 않음을 웅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교회 이름에 추상성 형용사들이 자리해 있다는 것은 “교회”에 대한 신뢰를 저버렸음을 말한다. 교회는 이 세상의 아름답고 화려한 추상성 단어 천마디 동원하는 것보다 더 크고 영광스러운 이름이다. 교회와 비교할 다른 이름은 예수뿐이다. 예수가 교회의 동급 어휘다. 예수가 아버지요 교회가 어머니 위상이었을 때만 정상적이기 때문이다.

행정단위 명을 피하는 교회는 이 세상을 주와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게 하려는 의지를 포기한 천당주의자들인데, 이를 엄밀하게 평가하면 이 세상에서 천국을 경험하지 못한 자들이 천당꿈을 꾸는 것은 미신과도 다를 바 없는 병든 신앙상태다.

이게 바로 중세기적 혼돈의 결과이다. 서양교회는 중세기 미신에서 벗어난 지가 500년인데 한국교회는 중세기적인 미신과 우상지배시대를 즐기고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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