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교회를 열심히 다니고 있는 것이 
앞모습이라면, 과연 우리가 깨어서 조심해야 할 
뒷모습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연약한 자의 편에 서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처사가 아닌가”

 

▲ 김문건 목사
신광교회 담임

◈ 월 :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 / 고린도전서 3장

교만은 멸망의 앞잡이라고 성경에 적혀 있다. 바울은 자신의 위치를 언제나 잊지 않았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의 사람으로 부름을 받고 쓰임 받고 있는 것이 자신의 최상의 처지임을 자랑으로 여겼다. 
성도의 바른 신앙을 위하여 해산의 수고를 아끼지 아니하겠다는 목양 일념을 갖고는 있지만, 언제나 이 일의 최고 권위자이며, 제일 많은 수고자요, 궁극적인 생명 역사의 주인은 우리 사역자가 아닌,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뿐임을 기쁨으로 고백한다. 이는 순순한 믿음의 품성을 가진 자로서의 자질도 엿보인다. 수도 없는 하나님의 일을 겪으면서 매 순간마다 하나님의 일하심에 놀라고 있다는 증표이기도 하다. 

우리의 감사가  잊혀지는 순간은 바로 이런 순간이 아닐까 싶다. 바로 하나님의 일하심에 대한 경외심이 사라져 주의 일의 결과를 아무런 감격도 없이 당연한 것으로 여기면서 감사가 사라지는 것이다. 이런 의미라면, 바울의 이 고백은 매 순간 하나님의 일하심에 대한 간절한 기대와 놀라움을 지니고 있는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에서 나온 것이리라.
▶ 기도 : 하나님의 역사 앞에 어린아이와 같은 감격을 잃지 않게 하소서!

 

◈ 화 :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 / 고린도전서 4장

하나님의 비밀은 말할 것도 없이, 십자가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죄 없으신 구주께서 오히려 죄인의 욕을 당하시며 죽임 당하신 것, 그리고 그 죄에서 벗어나 부활의 진정한 구주로 부활하신 이 사건이야말로 비밀이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는다는 이 소중한 소명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싶다. 

나의 죄성, 나의 게으름, 나의 이기심을 살펴본 나 자신으로는 도저히 이 마음과 이 결심이 나올 턱이 없는 냄새나는 죄인인 나에게서 어찌 십자가 사역에 동참하려는 마음이 생긴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비밀이다. 나 자신이 스스로 놀란다. 

5절에 ‘우리를 기다리고 계신다’는 그 하나님의 칭찬이라는 것 또한 비밀이 아닐 수 없다. 나의 게으름과 나태를 소상히 알고 계실 그분이 나에게 해 주실 칭찬이 과연 무엇일까. 아무리 생각을 고쳐 해 보아도, 그날에 주 앞에 설 때에 얼굴을 들 자신이 없는 이 죄인의 삶을 두고 칭찬을 갖고 기다리신다는 그 하나님의 비밀스러운 성품을 헤아릴 길이 없다.
▶ 기도 : 그날에 해 주실 하나님의 칭찬만을 기다리며, 감사함으로 사역하게 하소서!

 

 

◈ 수 : 오직 누룩 없는 떡으로 하자 / 고린도전서 5장

출애굽의 그 밤에 오직 허락하신 떡은 누룩 없는 것으로 한정하신 하나님께서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역시 같은 마음 갖기를 소원하신다. 1절은 참혹한 현실을 직시하면서 이렇게 시작한다. ‘너희 중에 심지어….’ 하나님의 한숨이 들리는 것 같다. 그래서 하신 말씀이 아예 누룩 없이 살자는 것이다. 다소 과격해 보이는 말씀 같지만, 우리의 삶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이 그만큼 어두움에 깊이 빠져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악은 그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하신 것이다.

우리를 향하여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 하신 주님의 선언은 참 우리를 곤혹스럽게 한다.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소금의 정체성을 갖고 살아야 할 우리가 종종 더 부패한 삶을 즐기기도 하기 때문이다. 성경만을 읽을 것 같았던 거룩한 삶이 거짓과 위선의 최선봉에 서서, 인터넷이나 방송 등에 등장하는 것은 이제 이상한 일이 아니다. 피로 사신 주님의 교회 안을 보시면서, 하나님이 하신 “너희 중에 심지어…”라는 탄식을 매일 경청할 때에만 비로소 우리는 누룩 없는 떡으로 살 수 있을 것이다.
▶ 기도 : 우리 안의 세상 누룩을 관용하지 말게 하소서! 단호하게 물리치게 하소서!

 

◈ 목 :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 고린도전서 6장

우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아니하고 오히려 창기와 한 몸을 이룬 생태를 꾸짖는 말씀이다. 그래서 이 구절은 이중적인 절절한 적용을 우리에게 요구한다. 첫째, 적극적으로 시간의 틈을 두지 말고, 언제나 주의 영광만을 생각하라는 뜻이다. 이는 자칫 조금의 시간적인 세상의 모든 방법들을 이길 방법은 오직 떠나고 버리는 수밖에 없으니 조금이라도 말을 섞거나 겸하여 섬기지 말라는 단호한 결별을 요구한다. ‘너희는 너의 것이 아니니라’는 말씀이 그래서 여기 등장한다. ‘이제 할만큼 했어, 나도 푸념할 수 있고, 한동안은 좀 자유스럽게 살 권한도 있어.’ 그런 신앙의 위험을 경고하신다. 그런 말은 너의 것을 드릴 때에만 가능한 말이다.

과연 지금 드리고 있는 이 모든 것이 과연 너의 것이냐, 정말 너의 것이냐? 혹시 주의 것이 아니냐? 어찌 주님 앞에서 자유 시간을 논할 수 있는가? 마 25장에 나타나는 어리석은 다섯 처녀처럼 달랑 등만 준비하여, 나 할 도리를 다 했으니 하며 나머지 일은 주의 탓을 돌릴 수 있는가? 주님은 어찌 등과 함께 기름을 준비 못하느냐고 책망하실 것이다. 
▶ 기도 : 마음으로 주를 섬기는데 그치지 말고, 몸으로 예배자의 삶을 살게 하소서!

 

 

◈ 금 : 서로 분방하지 말라 / 고린도전서 7장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하리라 하신 주님의 말씀이 생각나는 구절이다. 마귀로 틈을 타게 하지 말라 하신 말씀도 생각난다. 둘이 만나 하나 되라, 한 몸이 되라 하신 말씀도 기억난다. 그렇다. 하나가 된다는 것은 쉽고도 어렵다. 마음만이 아닌, 몸이 하나가 되어야 비로소 하나가 되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조금 마음에 들지 않고, 분주하거나 소원한 상태로 지내다가도 같은 방에서 지내면서 하나가 되는 과정은 하나님이 이루어주실 수 있다는 실생활의 권고이다.

조금 뛰어 넘어 적용하자면, 매 예배가 그렇게 뜨겁고 감격일 수는 없기도 하다. 그렇다고 은혜가 될 때만 교회를 오는 신앙인이 어찌 믿음을 잘 지킬 수 있을 것인가? 지킬 수 없다. 가정도 마찬가지다. 십계명에서 ‘안식일을 기억하여 지키라’고 하신 의미는 의지적으로 미리 준비함으로 귀히 여기는 스스로의 각오를 갖고 지키라는 것이다. 예배를 우리는 ‘거룩한 낭비’라고도 부른다. 이 거룩한 낭비가 또한 필요한 곳이 바로 가정이다. 하나님이 세운 거룩한 두 곳이 바로 교회와 가정이기 때문이다.
▶ 기도 : 하나님이 허락하신 가정과 교회를 하나 되게 하는 일에 힘쓰게 하소서!

 

◈ 토 : 약한 자들에게 거치는 것이 되지 말라 / 고린도전서 8장

나 자신의 신앙만을 생각할 것이 아니라 항상 나보다 연약한 그 누군가를 의식하며 살아가라는 권고다. 신앙인의 뒷모습을 조심하라는 말씀이다. 우리가 교회를 열심히 다니고 있는 것이 앞모습이라면, 과연 우리가 깨어서 조심해야 할 뒷모습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조심스럽게 자문하여 본다. 신앙인이라면 연약한 자의 편에 서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처사가 아닌가 싶다.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을 먹지 말라!’ 강한 자의 편에 선 교권주의를 꾸짖는 구절이기도 하다.

우리가 먹는 잔이 누군가의 눈물이 될 수도 있다는 경고다. 한국교회가 눈물 흘리는 이들의 울음을 뒤로 하고, 오직 위로만 올라가려고 높은 자리를 탐할 때가 아니다. 강한 유대교 지도자들의 편에서 그들의 요구에 응했던 빌라도는 영원히 저주받을 이름이 되었다. 그 재판정에서 진정 약한 자의 편에 서 계셨던 그리스도 편에 서지 않고, 스스로 잘못될 줄 알면서도 군중과 교권자들의 음성에 따라 죄인들을 위하여 스스로 약한 자가 되신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달리게 한 빌라도는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다.
▶ 기도 : 주여, 연약한 자를 돌보며 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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