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 담 / 한국아나뱁티스트센터 김복기 총무와 함께 오늘의 개혁을 말하다

■ 종교개혁 500주년 특집 대담

일    시 : 2017년 10월 31일 오후 3시
장    소 : 들소리신문 세미나실
대 담 자 : 김복기 목사_한국아나뱁티스트센터 총무  
           조효근 목사_들소리신문 발행인

▲ 아나뱁티스트 더크 빌렘스는 핍박으로 수감되었다가 탈옥하여 얼어붙은 강을 건너 도망하고 있었다. 빌렘스는 얼음이 깨지면서 자신을 쫓는 간수가 물에 빠지자 그를 건져 낸 뒤 바로 체포, 재투옥되었고 곧 화형당했다. 1569년.
(사진=Wikimedia Commons)

 

종교개혁 500주년을 지나면서 16세기 당시 종교개혁 세력으로부터 핍박과 죽임을 당했던 아나뱁티스트 운동에 대한 관심이 높다. 그들이 죽음 앞에 자신을 내어주면서까지 실현코자 했던 개혁의 삶, 그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오늘의 한국교회는 왜 그들의 소리에 주목하는 것일까. 500년 전 피의 외침이 21세기 한국교회에 큰 메아리로 진동하고 있다. 한국아나뱁티스트센터(KAC) 총무 김복기 목사를 통해 아나뱁티스트 운동의 흐름과 그 핵심을 들어보았다. 

<편집자주>

 

 

조효근 목사(이하 ‘조’) : 강원도 춘천의 한국아나뱁티스트센터(KAC)에도 더크 빌렘스의 그림이 있는가? 더크 빌렘스는 가톨릭교회에 의해 수감되었다가 탈옥해 도망하던 중 간수가 깨진 얼음에 빠지자 발걸음을 돌려 그를 건져내고는 곧바로 체포돼 화형 당했다. 이것이 아나뱁티스트가 복원하고자했던 용서와 사랑의 신약교회 본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아닐까 싶다.

폭력 문제에 있어서 루터의 종교개혁을 ‘절반의 성공’이라고 평가하는 것은 덕담이고 사실상 실패라고 볼 수 있다. 종교개혁에 함께했던 농민들을 제압하는 과정에서 그리고 당시 급진적인 개혁 세력이었던 아나뱁티스트를 처리하는 방식에서 보인 잔인함과 폭력성은 예수의 육성인 ‘칼을 쓰는 자 칼로 망한다’(마 26:52)는 가르침을 정면으로 위배한 것이다. 16세기 근원적인 개혁을 외치며 죽음에 자신들의 목숨을 내어준 아나뱁티스트의 비폭력 평화운동은 오늘의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깊이 새겨야 할 부분이라고 본다.

김복기 목사(이하 ‘김’) : 아나뱁티스트는 종교개혁이라는 거대한 격랑 속에서 제1세력이었던 가톨릭교회, 제2세력이었던 개혁교회와 함께 제3세력 혹은 제3의 종교개혁으로 알려져 있다. 

아나뱁티스트 운동은 종교개혁 당시 유아세례에 반대하며 쯔빙글리의 제자 6명이 1521년 1월 팰릭스 만츠 어머니의 집에서 비밀리에 모여 서로에게 다시 세례(re-baptizer)를 준 것에서 시작됐다. 이들은 세례를 통해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며, 복음을 가르치며, 믿음을 지키는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임을 서로 서약함으로써 아나뱁티스트 운동의 출발을 알렸다.

이들은 루터와 쯔빙글리가 변화된 신자들로 구성된 독립교회를 이루겠다고 스스로 천명했던 개혁의 비전을 따르지 않는 것을 보고 크게 실망했고, 정치적으로 신학적으로 자신들이 떠났던 가톨릭의 모습을 답습하는 것을 보면서 가톨릭 이전의 교부시대와 신약성경이 제시하는 초대교회의 모습을 완전히 회복시키는 것을 추구했다.

이처럼 근원적인 개혁을 요구했던 아나뱁티스트가 한국교회의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아나뱁티스트는 후터라이트, 아미쉬공동체, 부르더호프공동체, 메노나이트 등 전 세계에 6개 그룹이 존재하고 그 산하에도 북미에만 40개의 서로 다른 그룹이 있다. 서로 조금씩 다르지만 제자도와 평화공동체를 추구하는 점에 대해서는 거의 공감한다. 한국에서는 1980년대쯤 되어서야 아나뱁티스트 관련 책이 소개되고 논문이 발표되기 시작하는 등 그 역사가 짧은데 현재는 130여 권의 책이 출간되었을 만큼 정보도 관심도 급증하고 있다.

16세기 아나뱁티스트 역사가인 아놀드 스나이더는 ‘아나뱁티스트 역사와 신학’ 연구를 통해 아나뱁티스트들이 주장한 논점을 상당히 포괄적으로 제시했다. 그는 아나뱁티스트 운동의 신학적 교회론적 핵심사안을 정리했는데 △반성직주의 △반성례주의 △성서의 권위 △믿음을 통한 은혜의 구원 △성령의 활동 △성령과 문자 △구원론 △믿음과 행위: 제자도 △복종: 순종 혹은 항복 △죄와 자유의지 △ 마지막날 △물세례 △주의 만찬 △상호책임으로서의 훈계: 권쟁, 추방, 파문 △상호 부조 △국가와 교회이다.

조효근 목사님께서 말씀하신 비폭력 평화의 실천은 아나뱁티스트 운동의 중요한 부분이다. 이 운동은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양쪽 진영으로부터 박해를 받았기 때문에 그 어떤 그룹보다 더 조직적이고 구조적인 박해에 직면해야 했다. 이들은 당시 발각되는 족족 죽임을 당했다. 그러나 자신들에게 가해진 핍박에 맞대응하지 않고 죽음으로 개혁을 말뿐이 아닌 몸으로 살아냈다.

아나뱁티스트 운동에 대해 강의할 때면 개혁교회의 외침과 비슷하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외침은 같을 수 있지만 그것을 몸으로 살았는가를 보면, 아나뱁티스트 운동은 그들이 이미 16세기에 개혁을 외친 대로 살다 죽은 역사이다. 구호를 외치는 것과 그것을 삶으로 살아내는 것은 확연히 차이난다. 한국교회는 외치는 것이 전부인 듯 보여 안타깝다.

아나뱁티스트의 일원으로서 늘 고민하는 것은 외침대로 실천하는 교회를 이뤄가는 것이다. 지식적으로, 논리적으로 이해했다고 신앙은 아니다. 어떻게 삶을 변화시키느냐에 초점 맞춰야 한다.

20세기 복음 설교가 중 한 사람인 마틴 로이드 존스는 그의 책에서 루터가 말년에 비참하게 죽어간 것을 밝히면서 그가 아나뱁티스트에 대한 열등의식에 사로잡혔었다고 쓴 것을 보았다. 루터가 주창한 만인사제설이 자기 교구에서는 전혀 실천되지 않았는데 아나뱁티스트 쪽에서는 아무리 리더들을 잡아 죽여도 새로운 리더가 나오고 숨어서 예배드리며 삶의 변화가 일어나는 걸 보았다는 거다. 그 대목을 보고 깜짝 놀랐다.
나도 16세기에 살았으면 과연 그들처럼 죽을 수 있었을까? 결국은 자기 결단인 것이다.

조 : 그렇다. 아나뱁티스트 운동에서 또 한 가지 주목되는 부분이 ‘평민의 자유’이다. 이것은 성직주의에 반대해 모든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앞에 단독으로 설 수 있다고 한 루터의 ‘만인사제’보다 더 진일보한 것이다. 루터의 만인사제는 당시에 전혀 구현되지 못했고 오늘날 목사와 평신도로 이분화 된 한국교회에서도 전혀 먹히지 않는다. 아나뱁티스트는 어떻게 ‘평민의 자유’를 구현해가고 있는가?

 

 

김 : 아나뱁티스트의 회중교회가 바로 그것이다.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교회의 몸으로서 교회를 섬기며 예수 제자의 삶을 살고자 힘쓴다. 서로에게 목회하는 개념이다. 

나는 대학에서 조경을 전공하고 더 공부하려고 유학 갔다가 메노나이트 교회에 출석하면서 신학까지 공부하게 됐다. 18년 동안 캐나다와 미국의 5개 메노나이트 교회를 다녔다.

아나뱁티스트는 회중에서 목회자가 나오는 전통이 현재도 진행되고 있다. 그가 목회자로서의 자격이 있는가를 회중으로부터 인정받아야 한다. 신학교를 졸업해야만 목회에 나설 수 있는 구조와 다르다. 또 목회자가 목회지를 변경하거나 새롭게 목회를 시작할 경우 각 지방회에서 목회자 재교육 프로그램(Transition in Ministry)에 참여할 것을 권한다. 새로운 지역에서 잘 적응하며 목회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이것은 3년 과정으로 진행되는데 프로그램 중 한 부분이 멘토링이다. 나는 미국 인디아나주와 캐나다 온타리오주의 메노나이트 교회에서 목회인턴 과정을 거치며 목회 훈련을 받았는데 나의 멘토는 80대의 할아버지 목사였다. 한 달에 한 번씩 만나 나누는 대화는 목회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휴가는 잘 보냈는지, 아이들 이야기, 가족 간의 만남을 자연스럽게 이어간다. 그분 집에서 온 가족이 하룻밤을 보낸 후 아침에 기도하고 빵을 나누었던 시간은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한 달에 한번 만나 모임을 마치던 어느 날, 그분이 나에게 “네가 나에게 목회해 줘서 참 고맙다”고 말했다. 내가 한참 후배인데 무슨 말인가 했더니 “우리는 서로에게 모두 목회자”라면서 “목사는 성도에게, 성도는 목사에게 목회하는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어린 목회자가 부임하면 성도들이 더 성숙한 경우가 많다. 목사가 실수하면 성도들이 웃으면서 “그럴 수 있지” 하고 넘긴다. 그럼 목회자는 그렇게 서로 지지하고 인정하는 분위기 속에서 훌륭한 목회자로 자라간다. 설령 부족한 목회자라도 회중이 건강하면 아무 문제 없다.

목회자든 성도든 모두 형제, 자매이다. 실제로 5살 꼬마도 목사인 나에게 ‘형제’라고 부른다. 온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시다. 예수는 우리 믿는 자들의 표상이면서 믿음의 주이고 우리를 온전케 하는 분으로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신 인류의 대표자이시다. 그런 의미에서 성도 간에 형제자매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건 하나님 나라의 질서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교회에서 성도들 모두는 은사에 따라 일한다. 100명이 모인 교회에 가면 80~90명은 무언가를 한다. 작은 교회라도 많은 일을 한다. 5년 다녔던 교회는 성도가 200명인데 설교자가 20명이었다. 목사는 한 달에 두 번 정도 설교하고 나머지는 성도들이 돌아가면서 설교하는 것이다. 이처럼 각자 은사에 따라 일한다.

목사는 교회를 전체적으로 보고 감독한다. 각기 형제들의 연약함이 어떻게 채워질 수 있을지 파악하려면 각 사람을 잘 알아야 한다. 연약함과 강함을 조화시켜 하나의 건강한 몸이 되도록 한다.

조 : 한국교회의 일방통행 식 목회 상황에서 목사가 성도에게, 성도가 목사에게 목회한다는 말은 참 신선하다.

김 : 아나뱁티스트 운동의 논점들은 16세기 기독교국가주의라는 맥락에서 볼 때 경천동지할 내용이자 사회를 뒤흔들었던 주제들이었다. 교회를 이해함에 있어 교회 그 자체가 사람의 생각이나 사상의 결과물이 아니라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시작하시고 이끄시고 궁극적인 하나님 나라로 만드실 계획 속에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지나면서 하나님의 비전을 각기 교회에 얼마나 적용할 수 있으며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를 질문해야 한다. 믿음은 관념이 아니라 삶이다. 믿음의 정수를 따라 삶을 변화시켜 가는 노력이 일어나야 할 것이다.

조 : 오늘 아나뱁티스트 운동의 역동적인 현장을 전해주어 감사하다. 한국교회가 지상의 하나님 나라 모형을 세워갈 수 있도록 개혁을 몸으로 실천하는 현장이 많아지기를 기대해본다.

정리=정찬양 기자

 

 

<복음인in 들소리>는 하나님의 교회다움을 위해 진력하는 여러분의 후원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동반자로서 여러분과 동역하며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함께 하겠습니다. 샬롬!

후원계좌 : 국민은행 010-9656-3375 (예금주 복음인)

저작권자 © 복음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