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9장 38-50절

▲ 이종목 목사
오천교회 담임

예수님의 제자 ‘요한’이 예수님께 질문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를 따르지 않는 어떤 사람이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는 것을 보고 우리를 따르지 않기에 금했습니다.’ 그는 귀신을 쫓아낸 사람에 대한 시기심과 예수님께 칭찬받고 싶은 두 마음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요한의 질문을 받으신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행하는 일을 금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며 ‘너희가 내게 속한 자라 하여 냉수 한 그릇이라도 준다면 그 사람은 결코 상을 잃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역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또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들 중 하나라도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맷돌이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리라”(막 9:42). 

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상반된 말씀을 하셨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사역의 다양성을 포용하시지만 죄를 짓는 것에 대해서는 단호하셨습니다. 저는 42절의 말씀을 NIV 영어성경으로 읽고 묵상하다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And if anyone causes one of these little ones who believes in me to sin, it would be better for him to be thrown into the sea with a large millstone tied around his neck.” 이 영어문장의 구조에 따르면, ‘큰 맷돌을 목에 달고 바다에 던짐을 받아야 할 사람은 남을 실족하게 한 사람이 아니라, 실족당한 사람입니다.’ 저는 그동안 남을 실족하게 하는 사람이 맷돌을 목에 걸고 바다에 던짐을 받아야 할 사람으로 성경을 읽었습니다. 그런데 영어성경과 헬라어 원문에는 목에 맷돌을 걸고 바다에 던져져야 할 사람이 실족당한 사람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남을 실족하게 하는 사람은 괜찮다는 뜻인가요? 아닙니다. 남에게 죄를 짓게 하는 사람은 자신의 죄를 통곡하며 회개해야합니다. 예배 전에 남에게 죄를 지은 일이 있으면 먼저 예배 전에 화해하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마 5:24). 

  왜 남에게 실족당한 사람이 연자 맷돌을 목에 걸고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더 낫습니까?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다가 남의 말에 넘어질 때가 있습니다. 남의 행동에 상처를 받거나 자존심이 상할 때가 있습니다. 그렇게 상처를 받으면 주로 어떻게 생각합니까? “교회의 아무개 때문에 시험 들어서 교회에 가고 싶지 않아. 교회를 떠나야지. 믿는 사람들이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 더 못됐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혹은 “이제부터 나는 앞장서서 일하지 않을 거야. 뒤에서 지켜볼 거야. 잘하나 보자” 등등의 말을 하지 않습니까? 혹시 이렇게 생각하신 경험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오늘 예수님의 말씀을 잘 들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남의 말이나 행동에 넘어지고 시험받아서 더 죄의 나락에 빠지게 되고, 하나님을 멀리 떠날 바에는 맷돌을 목에 걸고 죽는 것이 낫다고 경고하십니다. 계속해서 시험에 빠져 죄를 짓지 말라고 하십니다. 문맥은 다르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말씀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계속해서 음행하는 성도들이 더 죄를 짓기 전에 그 영혼이 구원받길 원했습니다. “이런 자를 사탄에게 내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라”(고전 5:5).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남을 탓하기 전에 우리가 자신을 살펴보길 원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단독자로 서길 원하십니다. 교회는 남의 죄를 지적하는 곳이 아니라 나의 죄를 회개하고 서로 용서하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죄를 더 심각하게 들여다보도록 반복하여 강권하십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의 패턴을 주목하십시오. “네 손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버리라 장애인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곧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 만일 네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버리라…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는 빼어버리라… ”(막 9:42-47).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가 죄를 지을 때마다 우리 몸의 지체를 잘라버리라는 뜻인가요? 그렇다면 성도들 가운데 온전한 몸을 가진 사람이 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죄를 끊는 것이 고통스럽다할지라도 단호히 버리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죄를 단호히 거절해야 하는 이유는 “지옥”의 심판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옥”은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한 곳”(막 9:48)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결단을 촉구하십니다.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막 9:50). 죄를 이기는 것은 우리의 힘으로 되지 않습니다. 맛을 내는 소금이 있어야 합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가능합니다(슥 4:6). 성령의 검인 말씀으로 이깁니다(엡 6:17). 시험의 불을 통과하면 하늘의 상급이 있습니다(고전 3:13-14). 성도는 가시밭(시험)의 백합화(소금)가 되어 향기를 발하는 사람들입니다(아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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