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의 성경과 불교의 <무문관>을 통해 본 구도의 길

“사랑과 자비가 흘러넘치는 인격적 존재에게로 다가가는 길은 
 당연히 넓고 문은 활짝 열려있어야 합니다. 하느님과 사랑과 자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크고 넓으니까요. 그러니 당연히 
 문이 없는 것이나 진배없다고 말해야 합니다”

 

▲ <예수처럼 부처처럼>
이영석 지음/성바오로

“비어 있는 무덤이 어떻게 예수가 부활했다는 표징이 될 수 있을까요? 그 이유는 비어 있지 만 충만하기 때문입니다. 비어 있는 무덤 속에는 한평생 비어 있는 삶을 살아온 한 사람의 인생으로 충만합니다. 말 그대로 ‘텅 빈 충만’입니다.”

“‘무’는 ‘있음(有)’의 반대인 ‘없음’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진리는 ‘있다’라고 말한다고 해서 있고, ‘없다’라고 말한다고 해서 없는 것이 아닙니다. …진리는 유무(有無)의 상대적 공간에서 벌어지는 개념적 사유와 논리로부터 아득히 멀리 떨어져 있는 자유 그 자체입니다. 진리는 일체의 분별로부터 자유자재합니다.”

예수님의 시신을 모신 무덤이 텅 비어 있었던 사건을 그리스도교와 불교의 시선으로 풀이한 내용이다.

예수회 신부인 이영석(서강대 인성교육센터 교수)은 신부이면서 동국대학교에서 불교 철학으로 석사와 박사학위를 취득한 불교 학자(?)이기도 하다. 책은 저자가 불교 철학을 공부한 후 ‘그리스도교와 불교와의 만남’을 성경과 선승 무문혜개(無門慧開, 1183~1269)의 해설집인 <무문관> 안에서 접점을 찾고 그것을 풀어낸 것이다.

학자라기보다는 그의 표현을 빌자면 혼자 묻고 혼자 답하는 ‘혼자 놀기’ 식으로 불교의 깊이를 들여다본 신부라는 말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20년 간의 수도생활 그리고 16년간의 불교 경험을 통해 그리스도교와 불교의 진리를 찾아가는 구도의 과정이 많이 닮아있다는 것을 발견한 저자는 그 즐거운 ‘혼자 놀기’의 마당으로 독자들을 초대한다.

<무문관>은 중국 송대의 무문혜개 선사가 1700여 칙(則)의 공안 가운데 가장 핵심이 되는 48개의 공안을 가려 화두 참구의 사례를 제시한 책이다.

글은 꼭지마다 성경과 <무문관>이 대조를 이루도록 해 깊은 깨달음으로 이끈다. 그리스도교가 구원의 길을 제시하는 “좁은 문으로…”는 <무문관>의 “문이 없는데…”와 통하고, 예수의 텅 빈 무덤은 진리를 찾는 길이 아예 없음을 뜻하는 “무(無)”와 만난다. ‘오른뺨을 맞으면 왼뺨도…’와 ‘뺨을 맞으면 손뼉 치며 웃어라’, ‘불행하여라, 너희 눈먼 인도자들아!’와 ‘손가락을 잘라 버려라!’, ‘영원한 생명을 받으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와 ‘꽃 한 송이를 들어 보이며…’가 대조를 이룬다.

저자는 이처럼 그리스도교와 불교의 만남을 시도하는 것에 대해 “<무문관>에 펼쳐진 침묵의 지혜가 성경 말씀에 한줄기 신선한 빛을, 성경에 표현된 사랑의 말씀이 <무문관>의 48가지 공안(公案)에 생명의 물을 조금이나마 제공할 수만 있다면 이 얼마나 흥미로운 일이겠습니까?”라고 반문하면서 “왜냐하면, 서로 다른 신앙을 지닌 사람들을 하나로 이어주는 것은 교리가 아니라 종교체험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진리로 통하는 입구, 왜 성경은 “좁다”고 말하고 <무문관>은 ‘문이 없다’고 서로 다른 말을 할까? 저자는 “그리스도교 신자는 진리를 인격적인 사랑과 자비의 측면에서, 불교 신자는 비인격적인 지혜의 측면에서 바라보기 때문일 것”이라면서 “사랑과 자비가 흘러넘치는 인격적 존재에게로 다가가는 길은 당연히 넓고 문은 활짝 열려있어야 합니다. 하느님과 사랑과 자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크고 넓으니까요. 그러니 당연히 문이 없는 것이나 진배없다고 말해야 합니다”라고 풀이한다.

저자는 그리스도교와 불교의 문법이 많이 다르지만 “지금 여기서 어떻게 살 것인가에 관한 ‘삶의 기술’(ars vitae)에 대해서는 겹치는 부분이 꽤 있다”면서 말이 아닌 삶으로 진리에 다가가는 기쁨, 성경과 <무문관>을 통한 ‘놀이’로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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