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로펜의 아시아(AD 610~1625) 천년여행 [224] / 사제 왕 요한 29

총사령관 을지 고는 야율 직고를 데려오라고 명령했다. 잠시 후, 총사령관실 태자 요한과 을지 고가 나란히 앉은 자리에 야율 직고 장군이 끌려왔다. 그는 쇠사슬에 묶인 채였다. 태자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명령을 내렸다.

“당장 사슬을 풀어라. 이 무슨 짓인가?”

노여움에 찬 태자의 서슬에 야율 직고를 죄인으로 잡아온 군사들이 놀라서 즉시 두 손을 묶은 쇠고랑이며 오라를 진 상체의 포승줄을 풀어냈다.

“앉으시오. 숙부님!”

야율 직고는 선황제인 야율 이열의 먼 촌 동생벌이 된다. 평소에 숙부로 호칭했던 태자 요한은 야율 직고에게 숙부의 예를 지키고자 했다. 그러나 을지 고는 태자의 태도에 만족하지 않았다. 얼굴을 찌푸리며 천장을 잠시 바라보다가 한숨을 쉬었다.

“야율 직고! 태자께서는 하해와 같은 마음으로 그대를 너그러이 대하시지만 그러나 당신과 당신 자식의 죄가 사라진 것은 아니야. 태자 마마께 대죄를 고하고 죽음을 청하라!”

을지 고 총사령관의 추상같은 호령이 떨어졌다. 야율 직고 장군은 태자와 을지 고를 번갈아 바라보다가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 저울질하는가,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왜 말이 없나?”

“총사령관님, 할 말이 없나이다. 소인이 어쩌다가 이 꼴이 되었는지가 오히려 궁금합니다. 제가 어찌 감히 황위를 넘보거나 제 미천한 자식이 태자 마마의 경쟁상대가 될 수 있다는 어리석은 행동을 합니까? 일이 어디서부터 이리 되었는지 소장은 도무지 알 수가 없나이다.”

야율 직고의 말을 듣고 있던 태자가 말했다.

“됐소. 야율 직고 장군은 지금 여기서 한 말에 대해서만 책임을 지시오. 나는 더 이상 이 일로 새로 황위에 오르신 황제께 누가 되기를 원치 않소. 나가서 하명을 기다리시오.”

을지 고가 고개를 끄덕이자 야율 직고 장군은 별실로 끌려 나갔다. 을지 고는 태자에게 계급을 강등해 변방으로 보내는 것이 어떠냐고 물었으나 태자가 반대했다.

“사부께서 휘하에 두시고 잘 가르치심이 좋지 않을까요? 황제 폐하께 보고 드리는 것이 마땅하기는 하지만 오히려 부담이 될 수 있겠지요.”

을지 고는 태자의 속내가 만만치 않음을 직감했다. 황제에게 보고를 미룸으로 오히려 황제의 속마음을 빨리 판단할 수 있다는 생각일 것이다. 을지 고는 태자 요한을 새삼스러운 눈으로 바라본다. 경이롭다는 듯이 말이다. 태자는 을지 고의 넉넉한 미소에서 무엇을 발견했을까.

“사부님, 미풍일 것입니다. 권력 이동이 있을 때 일어나는 잔바람 말입니다. 우리 왕조는 튼튼합니다. 떠밀려서 황위에 오른 황제 주변에 재주꾼이 얼마쯤 엉겨 붙어도 문제 될 것이 없지요. 나의 사부님이 계시고 든든한 내 어머니 같으신 나비소 장군님도 계시는데요. 뭐가 걱정입니까.”

“그럼요. 무엇보다 더 영특하신 태자 마마, 장차 중앙아시아 대륙과 초원의 이동종족들까지 대통합 시대를 이루실 사제이시며 대 황제이실 어른이 여기 계시는데 말입니다.”

“사부님, 그러시면 제가 어디로 피해야 하나이까.”

그때 태자 궁 연락관이 달려왔다. 초원의 나라에 가서 옹칸 토그릴을 만나고 돌아온 유드게스 휘하 병사들이 보고 드리러 왔다는 것이다.

“그래, 오후 시간 나비소 장군의 진중에서 만나겠다고 하라.”

“태자께서는 언제쯤 메르브에 또 가시렵니까?”

을지 고가 요한에게 물었다.

“사부님, 이제는 마음을 푹 놓고 본격적인 중앙아시아 수업을 하려고 합니다. 사부님께서도 잘 아시듯이 중앙아시아는 임자 없는 땅입니다. 도무지 그 어느 종족도 여기가 내 조국이요, 또는 나의 조상의 뼈가 묻힌 어버이의 나라로 여기는 자들이 없습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는 일렉산드로스라는 영웅이 마케도니아에서 인더스 강까지 지배했던 옛 제국은 거대한 페르시아 영토를 복속시켰다지만 지금은 없습니다. 그가 아꼈다는 박트리아에서 카스피해 일대는 물론 히말라야 설산에서 지금 우리가 머무는 사마르칸트까지 이 거대한 대지에 몸을 의탁하고 사는 민족이 도무지 몇 개의 종족이나 될까요? 수백 개 종족일 터인데 그들이 같은 지역에 살면서 여기는 내 나라 내 부모와 내 조상의 조국이라는 자부심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곳이 하나님의 나라에 가까운 곳, 축복 받은 땅이기는 하죠.”

“사부님, 그게 무슨 말씀이신가요?”

“그렇지 않습니까. 인생들이 기껏해야 백년을 지킬까말까 한 땅덩어리를 놓고 피 흘리고 싸우지만 중앙아시아, 지금 우리가 머무는 이 땅에서 우리 카라 키타이도 언젠가는 사라져야 하는 운명을 타고난 거죠. 그러니까 욕심을 버리고 하늘나라 복음을 전해 사람 사는 곳은 그 어디나 내 부모 내 형제들의 처소요 이 모두가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며 오순도순 사는 나라를 만드는 일에 몰두해야 합니다.”

“그거 맞습니다. 그래서 제가 왕이 되기보다는 전도자가 되어 이 땅 민족들에게 평화와 축복의 전령사가 되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게 그냥 주어지지 않습니다.”

“무슨 말씀이신가요.”

태자 요한과 을지 고는 이야기가 깊어지다가, 어찌하여 여기 카라 키타이가 자리 잡은 중앙아시아인가에 이르렀다.

“이곳을 사람들은 중앙아시아라고 합니다. 아시아의 중간이고 중심이요 아시아의 심장부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고레스 대왕의 아케메네스 또는 대 페르시아라고 해야 이해가 빠른 인류역사 상 가장 큰 제국이었던 때를 제외하고는 중아아시아의 주인은 없었어요. 알렉산드로스 장군도 중앙아시아는 여행을 한 정도이죠. 그가 우리의 수도인 사마르칸트를 잠시 다녀갔다는 전설이 전해올 뿐이죠. 이제는 우리 카라 키타이가 영토의 단일화는 모르지만 문화 곧 종교는 하나의 중심종교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바로 그겁니다. 사부님, 소인이 그 일을 해내고 싶어요. 저는 저 개인을 꼭 말하는 것 아닙니다. 저는 유럽 기독교 교황군인 십자군이 우리 할아버지를 사제 왕이라며 찾아왔다는 사실을 중요시합니다.”

“그렇습니다. 카라 키타이를 개창하신 야율 대석 황제를 사제 왕이라 하고, 몽골 초원의 옹칸 토그릴

칸을 또 사제 왕으로 말합니다.”

“바로 그때, 저는 사제 왕은 한 사람이 아니다. 중앙아시아는 사제의 나라, 기독교의 나라가 되어야 한다는 하나님의 암시가 떠올랐습니다.”

“태자 마마, 그러나 이것은 조심하셔야 합니다. 종교는 본디 하나입니다. 하나님이 한 분이신데 종교가 둘이고, 또 셋, 넷이 될 수 없어요.”

“하지만 그건 자칫 조심스럽게 표현해야 되지 않을까요. 우리 네스토리우스 파를 이단이라고 추방한 교황의 서방 기독교가 우리에게 또 뭐라고 시비할지 모르잖아요.”

“그건 걱정할 필요 없어요. 그들 유럽인들이 중앙아시아나 초원의 땅에 와보면 종교란 본디 하나가 분명하지만 문명과 종족의 이동 과정에서 여러 형태의 종교적 주장을 하게 되었음을 알게 되겠죠. 그들이 지금은 유럽이라는 조그마한 둥지에서 살고 있으니까 기독교 하나뿐이라고 하지만 그들이 중앙아시아나 초원의 아시아에 와서 살아본다면 여러 유형의 종교들이 존재하지만 그들이 사실상 하나님을 향하고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아이고, 사부님! 잘 모르겠어요. 사부님의 말씀을 알아듣기는 하지만 저는 아직….”

태자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조금 지나면 마마께서도 제 의견에 공감하실 겁니다.”

“네, 공감하고는 있으나 너무 무거운 공부라 쉽지 않군요.”

저녁시간, 태자는 을지 고의 집무실 겸 집으로 찾아갔다. 몽골에 다녀온 병사들과 유드게스 장군이 와서 대기하고 있었다.

“유드게스 장군, 수고 많으셨어요.”

태자가 입을 열었다. 유드게스는 그가 명하여 옹칸의 군진으로 보냈던 부장 둘을 요한 태자에게 소개했다. 보르키와 메켄지였다. 둘 다 위구르 청년들이다.

“옹칸께서는 잘 계시더냐?”

을지 고가 두 청년에게 물었다. 그들은 을지 고의 명성을 잘 아는지라 말을 제대로 못하고 얼굴을 붉히고만 있었다. 유드게스가 말했다.

“총사령관님 각하! 태자 마마께서 테무진의 느낌이 예사롭지 않다 하여 제가 네 명을 케레이트국에 보냈습니다. 토그릴 카간이 기꺼이 받아주셔서 이들 넷이서 케레이트 군사에 편입해 훈련하고 사냥길이나 소규모 분쟁의 전투에 참여도 하면서 지냈답니다. 우선 두 병사들을 제가 불렀습니다. 태자 마마의 궁금증을 풀어드리려고요.”

“그래 잘했어요. 그럼….”

태자가 유드게스의 말에 동의하면서 테무진 이야기를 듣고 싶어 했다.

“네, 대장님!”

유드게스는 태자 요한에게 대장이라고 호칭했다.

“뭐, 대장님이라고?”

을지 고가 태자와 유드게스를 바라보다가 웃는다. 태자가 을지 고를 마주보면서 한쪽 눈을 깜짝했기 때문이다.

“그래, 말해 봐요.”

“네, 대장님. 마마께서 예감하신 대로 테무진은 비범한 인물이 분명하더랍니다. 옹칸 토그릴이 그 친구 앞에서 태도가 조심스럽더래요.” 

조효근/소설가, 본지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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