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간 식물인간 상태의 어머니 돌본 황교진 집사의 사랑 이야기

대학 졸업 때 뇌출혈로 쓰러진 어머니, 
20년간 정성껏 돌봐

“고통당한 사람에게 필요한 건 손 잡아주고 
이야기 들어주고 밥 같이 먹어주는 것”

▲ 황교진 집사

“이 세상과 우리 육신은 무너질 장막집입니다. 부활의 소망, 하나님 나라의 가치로 바라볼 때 내가 만난 오늘 이 순간은 신비와 감사로 충만합니다.”

뇌출혈로 쓰러져 식물인간 상태가 된 어머니 곁에서 20년간 병상을 지킨 황교진 집사(47, 제자들교회), 그는 얼마 전 어머니를 떠나보내면서 비로소 막연하기만 했던 ‘부활’의 실체를 경험했다.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 사람들은 그에게 묻는다. 왜 20년 간 포기하지 않았냐고. 그의 대답은 간단하다. “사랑하니까.” 병원에서 가망 없다는 진단 후 황 집사는 집으로 어머니를 모셔와 ‘갓 낳은 아픈 딸’을 돌보듯 극진히 보살폈다. 치료의 기적은 없었다. 하지만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것, 그것이 날마다 체험하는 기적이었다고 말했다.

 

# 환란을 견디는 게 진짜 복

황 집사의 어머니는 1996년 11월 27일 뇌출혈로 쓰러진 지 만 20년만인 지난 10월 14일 소천하셨다. 황 집사는 지난 20년을 성경이 말하는 사랑이 무엇인지 배우고 익힌 기간이었다고 했다.

황 집사의 어머니는 동대문시장에서 숙녀복 도매 일을 했다. 밤 10시에 출근해서 오전 10시까지 일하고, 퇴근 후에도 살림과 다음 시즌 디자인을 고르느라 늘 바빴다. 황 집사는 그런 어머니를 보며 ‘좋은 대학 가서 돈 많이 벌어 어머니를 고단한 삶에서 해방시켜드리겠다’는 꿈을 가졌다. 그것이 어머니를 행복하게 해드리는 길이라고 여겼다.

그 꿈이 그토록 빨리 이뤄질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삼수해서 어렵게 들어간 대학 4학년 졸업을 앞두고 밤에 출근하신 어머니가 가게에서 뇌출혈로 쓰러졌다는 연락을 받았다. 병원으로 달려가 보니 어머니는 심각한 상황이었다. 병원을 옮겨 수술을 받았지만 어머니는 깨어나지 못했다.

식물인간 상태의 어머니를 돌보는 일은 상당한 힘이 필요했다. 연년생의 여동생에게도, 집안일에 무심한 아버지에게도 맡길 수 없었다. 대학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대학원에 진학하려던 꿈을 포기해야 했다. 졸업 작품전에서 최고상으로 받은 트로피는 청소하다 깨졌고, 사귀던 여자 친구와도 만날 수 없어 헤어졌다. 그렇게 황 집사의 젊은 날은 어머니의 병상에서 흘러갔다. 

그의 하루는 어머니의 기도가 막히지 않도록 수시로 가래를 빼내고, 매일 목욕시켜드리고, 침대 시트 갈고, 대소변을 받아내는 일로 채워졌다. 고단한 일상에서 가장 기쁠 때는 몸을 깨끗하게 닦아드리고 편안하게 잠드신 어머니의 모습을 볼 때, 딱 엄마가 아기를 기를 때의 기쁨이었다.

병상에서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가장 많이 바뀐 건 그의 기도였다. 처음엔 ‘제발 어머니를 살려주세요’라며 눈물로 기도했지만 점차 ‘어떻게 하면 어머니를 잘 돌볼 수 있을까요?’라고 기도했다. 머리를 깎아드리는 날이면 전날부터 기도를 많이 했다. 혹시라도 머리를 깎는 동안 가래가 쌓여 호흡이 막히지 않도록, 어머니의 상체를 받치며 깎으면서 자신의 팔과 허리 힘이 달리지 않도록…. 병이 낫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병 돌봄의 능력은 한없이 부어주셨다고.

어머니의 병상을 지키면서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지, 성경이 말하는 사랑이 무엇인지, 신앙함이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 배우고 익히는 시간이었다고 황 집사는 고백했다.

“교회에서는 우리 인생에 환란이 없는 삶을 복이라고, 하나님은 고통으로부터 우리를 지켜 주신다고 말해요. 그러나 성경에서 하나님은 고통 가운데 함께하시는 분인 것을 봅니다. 풀무 불을 끄지 않고 다니엘이 불 속에 들어가게 하셨어요. 그 속에서 하나님도 함께 계셨죠. 하나님은 고통을 허락하시고 그 가운데 함께하십니다.”

 

# 고통을 견딤은 스튜핏? 참된 행복!

언제 끝날지 모르는 고통의 시간, 그것에 대한 두려움을 잊게 해 준건 글쓰기였다. 어머니가 주무실 때면 독서와 글쓰기로 힘겨움을 달랬다. 어머니를 돌보는 일상, 새롭게 깨달은 것들을 글로 정리해 SNS에 올렸는데 그것을 보고 한 출판사에서 책으로 만들자고 제안해왔다. 어머니가 쓰러지신 지 8년 만에 <어머니는 소풍 중>이 나왔다. 책은 2014년 <엄마는 소풍 중>(우리가 만드는 책)으로 개정돼 나왔고 어머니와 함께 직장, 결혼, 부부, 육아의 이야기를 담아 새롭게 펴낼 준비를 하고 있다.

책을 통해 아내를 만나 결혼해 두 아이를 낳았다. 또 책이 인연이 되어 2005년 대기업 홍보팀과 출판팀에서 일했고 이후 출판과 기획 일을 꾸준히 해왔다. 강연을 통해 어머니를 돌보며 느낀 것, 생명의 소중함과 사랑의 가치로 세상을 바라보는 일이 왜 중요한지에 대해 나눴다. 어머니로 인해 모든 것을 포기했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잃었다고 생각했던 것들보다 더 좋은 것들을  받게 됐다고 황 집사는 말했다.

가정과 직장생활로 어머니를 요양병원에 모셨지만 매주 정기적으로 시간을 내어 병원의 손이 닿지 않는 부분을 황 집사가 채웠다. 세월이 그냥 지났을까. 어머니 얼굴만 봐도 어디가 어떻게 불편한지가 나온다. 황 집사의 손길이 닿으면 불안하던 어머니의 바이털사인이 평온을 되찾았다. 그렇게 어머니와 아들은 사랑으로 교감했다.

지난 20년 동안 어머니를 편안하시게 하는 데 매진하며 달려왔는데, 어머니를 떠나보내자 공허함이 밀려왔다. 그런데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면서 부활의 영광과 소망이 얼마나 큰지를 깨달았다. 어떤 이들은 식물인간 상태에서 20년을 산다는 것이 무슨 소용이냐며 ‘낭비’라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성경이 말하는 가치와 반대되는 가치들이 만연한 세상에서 사랑하며 산다는 건 무엇일까?”에 대해 고민하며 따라갔을 뿐이라고 그는 말했다. 세상이 제시하는 성공보다 성경이 말하는 사랑을 따라가는 삶, 한 번뿐인 인생인데 영원한 가치에 삶을 거는 건 너무 당연한 것 아니냐는 얘기다.

그동안 어머니의 병원비와 생활비를 충당하느라 빚이 있지만, 더 이상 걱정거리로 보지 않는다. 눈에 보이는 환경보다 하나님의 가치를 따라가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20년 간의 경험을 통해 깨달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가치를 따라갔을 때 하나님께서 내려주시는 만나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황 집사는 얼마 전 벤처업계 최대 규모의 소셜 벤처 아이디어공모전에 응시해 18개 팀 중 최우수상을 거머쥐었다. 핵심은 병든 가족을 돌보는 가정에 찾아가 환자를 돌보는 방법이나 간병인의 심리 케어, 민간 서비스 연결 등 힘겨운 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시스템에  대한 것이었다.

황 집사가 어머니를 돌보던 때 교회 후배 어머니가 뇌종양으로 수술 받아 후배가 집에서 돌보는 것을 알고 도움을 준 일이 있었다. 동변상련의 정이랄까, 후배의 사정이 걱정되어 전화해보니 후배는 말없이 울기만 했다. 막막한 상황에 무기력해진 것을 감지하고 그 길로 후배 집으로 달려갔다. 개미가 바글거리는 후배 어머니의 머리를 감겨드리고 오물로 범벅이 된 옷을 갈아입혀드렸다. 후배는 너무도 기뻐하며 어머니를 간병하기 위해 다시 힘을 냈다.

“고통당한 사람에게 필요한 건 손 잡아주고, 이야기 들어주고, 밥 같이 먹어주는 것입니다.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보이지 않는 곳까지 주변을 돌아볼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황 집사는 이번에 사업계획이 선정되면서 사회적 기업으로 1년간 육성화과정으로 시작해 본격적으로 사업을 진행해볼 수 있게 됐다. 그동안의 경험을 힘겨운 이들과 나누며 도울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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