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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위를 사양하는 황태자 > 4<알로펜의 아시아(AD 610~1625) 천년여행 [ 225 ]
조효근  |  dsr123@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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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2호] 승인 2017.12.20  16:2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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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투르판, 그곳에도 무슬림이 모이는 모스크는 곳곳에서 발견됐다.

그랬다. 케레이트의 군주 토그릴은 옹 칸이라는 이름으로 서양에도 잘 알려진 인물이다. 그의 나라는 일찍이 10세기 초 케레이트 카간이 군사 이동 중에 고비사막을 지나다가 눈사태를 만나 꼼짝없이 죽게 되었다. 그때 카간은 소리쳤다. ‘신이여, 나를 구해주시면 내 나라를 바치겠나이다’ 했다는 전설이 있다. 그때 메르브 네스트라우스파 주교단이 지나가다가 케레이트 카간과 그의 부하들을 구원해 준 것이 인연이 되어 케레이트는 몽골 초원의 기독교국이며 토그릴 옹 칸은 사제 왕 요한이라고 십자군 진영은 믿고 있는 터였다.

실제로 토그릴은 몽골 초원의 강자들 중 최고의 자리에 있었다. 타타르족, 나이만족, 메르키트족들이 꿈틀거리고는 있으나 테무진의 양부로 소문난 옹칸 토그릴을 그 어느 부족도 넘보지 못했던 시기다. 그런데 옹칸이 테무진 앞에서 조심스러워하다니…? 태자는 궁금했다.

“좀 더 자세히 말해 보시오.”

정색하고서 묻는 태자 앞에서 유드게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토그릴은 태무진의 부친 예수게이와 안다를 맺은 의형젭니다. 그런데 예수게이가 세상에 없으니 토그릴과 테무진은 숙질간이요 초원의 법칙으로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입니다. 그런데 아들이기도 한 테무진에게 토그릴의 언행이 조심스럽다는 것은 예사로운 일이 아니라는 판단을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 더 말씀드리면 몽골 초원의 전설적인 영웅이었던 카불 칸이 테무진의 증조부이기도 합니다. 아마 테무진이 혈통값을 하기 시작한 듯합니다.”

“그렇지 않소. 군웅이 할거하는 몽골 초원에서는 혈통도 중요하겠으나 옹칸 토그릴이 어린아이나 다름없는 테무진 앞에서 언행이 조심스럽다면 우리가 모르는 어떤 비밀이 있을 것이요. 테무진의 인품이 뛰어나거나 우리가 모르는 용맹스런 힘이 그에게 있든지 말이죠. 앞으로 좀 더 깊이 살펴보도록 하시오.”

“네, 마마.”

유드게스가 몽골지역 정탐전사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태자는 을지고 장군과 마주앉아서 야율 직고 장군 아들의 태자설의 여운을 지우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둘 다 신중한 성품의 사람들이다. 태자 요한은 태자 자리를 홀가분하게 넘겨버려도 좋다고 생각하고 있으나 을지 고는 결코 있을 수 없는 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단순한 태자 교체가 아니다. 자칫 카라 키타이 국의 몸체가 뒤뚱거릴 수도 있는 중대사였다.

다음날 태자는 그의 친위대인 카라진 30용사와 함께 나이만 부족의 경계지역으로 갔다.

“태자 마마, 나이만 부족은 케레이트보다 더 용맹하고 또 음흉합니다. 경계해야 할 자들입니다.”

“그래요. 용맹함이야 상관없으나 어찌 음흉하다는 말을 쓰는가? 이 말은 상대방을 비난하는 뜻도 들어있는데, 그들이 그럼 늑대 혼을 가졌다는 것인가?”

“그렇습니다. 제가 판단하건대 앞으로 카라 키타이의 난적은 나이만이 아닐까 하고 소장은 예측하고 있나이다.”

“예측이라고? 거 재미있군요. 그 이야기 좀 더 자세히 해보구려.”

나이만이 난적이라고 한 케레이트 전사 출신 자무케의 정보는 적중했다. 우선 초원의 삼총사로 지목할 케레이트의 옹칸 토그릴, 몽골 부족의 다크호스 테무진, 나이만의 타양 칸이 으르렁거리는 몽골 초원은 이들 셋 중 누군가가 초원세계를 통합한 후 카라 키타이의 벽을 돌파해 유럽을 향해 돌진하려 한 것이다. 물론 카라 키타이가 현재 뒤로는 초원 아시아요 나아갈 무대는 카스피해와 흑해를 가로질러 동로마 콘스탄티노플과 유럽 평정을 목표하고는 있으나 이들 모두 아직은 잠룡들, 또는 이무기나 새끼 용 정도다.

그러나 나이만은 케레이트 옹칸보다 더 네스트리우스의 기독교에 정통한 신앙적 기반을 자부하고 있다. 어떻게 해서 옹칸이 “사제 왕 요한”의 잠정 인물로 십자군 진영에 소문나 있다지만 나이만족 논리로 “사제 왕”은 한 사람의 단독 호칭이 아니라 신앙의 일정한 목표를 달성한 인물들을 말한다. 그리고 그들 사제 왕들 중 왕은 메시아가 될 자격인데, 메시아적인 인물은 나이만의 카간인 왕칸 자신이어야 한다는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은 몽골과 앙숙인 타타르와 화해를 이룬 세력을 가졌으며 문명국가로서의 조건도 갖추었다. 문명국이란 이동초원과 정주민 중심의 궁성을 가진 정착국가 조직을 말한다. 국가행정을 위한 문자를 사용하는 등 초원의 이동종족들과는 차별성을 가지고 있다. 이 점에 있어서는 거란제국의 후예인 키라 키타이와 같은 수준이기도 했다.

“자무케, 그러나 타양 칸이 노쇠한 사람이라던데….”

“네, 마마. 그래서 지금 나이만이 조급증이 있습니다. 요즘은 케레이트와 한판을 벼르기 위해 골몰하고 있답니다.”

“서두른다고 되는 일이 아니야. 하늘의 하나님이 도와주셔야죠.”

태자 요한은 애늙은이와 같았다. 그의 나이를 적다 할 수는 없다. 그가 생각보다 빨리 초원의 태풍을 예견하고 있으니 스무 살이 못 되었지만 이토록 지혜로운 지도자가 성장하고 있는 카라 키타이는 복이 있는 나라였다.

“자, 오늘 우리는 전술 훈련을 해보자. 오늘은 테무진이 공을 들인다는 전법이다.”

“자무케, 테무진의 몽골 전술을 설명해 줄 수 있나요?”

“네, 몽골 전투형은 수부리가 정통입니다.”

“그래요. 그럼 수부리가 설명하시오.”

수부리는 자무케의 친구다. 그는 테무진의 인간 관리와 조금은 우직한 듯하지만 완벽성을 가진 완승형 지도자의 인품을 눈여겨본 사람이다. 테무진 주변에 사람들이 모이고 있었다. 그는 보기 드물게 솔직한 인물로 자기 잘못이 있으면 솔직하게 사과하는 사람이고, 또 자기에게 얼마간의 실수와 잘못을 저지른 사람도 용서를 빌면 시원시원하게 용서함은 물론 그는 무엇보다도 사람의 신분차별이 없다. 한번 믿고 따르는 사람은 끝까지 믿어 준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수부리가 일러준 테무진은 보통 수준의 인간이 아니었다. 들을수록 귀가 크게 열리는 테무진 이야기는 수부리가 기독교 이야기로 건너가다가 멈췄다.

“수부리! 당신이 잘못 들은 거겠지. 테무진이 네스토리우스 선교사들을 만나면 밤을 세워가며 예수의 말씀을 듣다니. 그건 만들어낸 미담이 아닐까?”

태자 요한은 수부리의 테무진 소개에 의문을 표시했다.

“태자 마마, 제가 전해 들은 바로는 테무진이 초원을 평정한 뒤에 유럽 기독교를 바르게 가르치기 위해 서쪽으로 갈 결의를 단단하게 한다고 들었습니다. 서쪽 기독교를 다스리려면 자기 자신이 예수의 복음을 잘 알아야 한다면서 군사훈련 못지않게 부하들에게도 네스토리우스파 선교사들을 동원해 성경교육을 철저하게 시킨다는 소문입니다.”

태자는 손발에서 힘이 빠져나감을 느꼈다. 자기 말고도 유럽으로 진군하려는 야심가들이 생각보다 많음을 확인하자 마치 자기가 깊이 숨겨둔 중요한 비밀이 너무 손쉽게 들통났을 때와 같은 허탈감이 온몸을 사로잡았다. 그는 자신의 이 같은 모습이 카라진 용사들에게 드러나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다.

“수부리! 테무진 식 전투대형이 색다르다고 했던가요?”

“네, 마마. 13익 전투형을 주로 사용합니다. 중앙 본대의 좌우에 여섯 날개식인데 본대를 떠받쳐주는 부대로 주로 기마병이 배치됩니다. 이는 정주민 전투형식이고 초원에서는 기마전이 있습니다.”

“초원의 승부는 우리와는 상관없겠지. 우리에게는 13날개 식 전투대형이 중요하겠군.”

“마마, 우리가 초원지대를 진군해 갈 경우도 계산해야 하지 않을까요?”

“물론. 가상은 하지만 초원은 저들의 각축장이죠. 저들 간의 승부가 멀지 않아 보이기는 하군요.”

태자 요한은 카라진 30용사를 이끌고 투르판으로 장거리 이동을 했다. 카라 키와이의 주요 전략지역이었다. 다섯 시간 이상 달려 늦은 저녁 시간에 투르판에 도착했다. 태자의 등장으로 투르판 군 사령부는 비상이 걸렸다. 사령관 호출도 없이 태자는 네스토리우스파 교구청으로 향했다. 태자가 쉬고 있는 사이에 요한 주교가 태자의 거실로 달려왔다.

“주교님, 불시에 찾아와서 결례인 듯하옵니다.”

“태자 마마, 어인 말씀이십니까. 보위에 오르심을 사양하고 국경순시에 나서서 바쁘신데 저는 아무런 도움 드리지 못합니다.”

“아닙니다. 주교님! 오늘은 밤늦게까지 주교님의 가르침을 받고 싶어서 달려왔습니다.”

주교는 태자의 표정을 살폈다. 혹시 무슨 고민이 있나 싶어서 조심스러웠다.

“어찌 말씀이 없으시오. 저는 오늘 몽골의 젊은이 테무진 이야기와 초원에서는 내가 왕이라고 큰소리친다는 나이만족의 소식도 들었습니다. 그들 모두가 연합으로 우리를 공격해 와도 겁나지는 않으나 테무진의 신앙심과 나이만족의 기독교 훈련에 대해서 좀 더 알고 싶습니다.”

“마마, 우리가 한 수 위입니다. 우리는 선황제께서나 지금 제 앞에 계신 요한 태자의 신앙과 덕성이 하늘을 찌르며, 중앙아시아의 최강군을 가지고 있습니다.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아니오. 바로 지금 그 같은 생각이 우리를 위태롭게 한다고 봅니다.”

조효근/작가, 본지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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