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로펜의 아시아(AD 610~1625) 천년여행 [ 228 ] / 사제 왕 요한 34

▲ 중국 란주의 한 박물관에서 만난 고대 중국인 모형.

“기독교가 뭔가요? 
기독교는 하나님이 사람 되어 
오신 거잖아요. 왜 왔나요? 
사람을 구원하고 사랑하기 위해서 
왔겠지요. 왔으면 하나님이 사람으로
오신 ‘그 사람 예수’가 있고, 
또 하나님이 사람으로 온 
‘이 사람 나’가 있는데, 
나와 예수가 하나인 비밀을 
사람들이 모르고 있더라고요.”

 

 

태자는 카라반 청년에게 미담 내용을 좀 더 자세히 말해주면 좋겠다고 요청했다.

“네, 그게 어렵지 않아요. 이슬람 술탄 살라딘이 2차 십자군에게 승리한 후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면서 한 말입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요?”

“네. 성 안에 사는 사람들은 지금처럼 그대로 살라는 명령을 내렸답니다.”

“뭐욧! 그게 무슨 대단한 말인가요?”

태자는 큰 호기심을 가졌다가 실망했다. 저 친구가 누구를 놀리는 것인가 하고 불쾌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여보시오. 이야기를 더 들어보지도 않고 왜 그러시오.”

카라반 청년이 태자에게 핀잔을 준다.

“어허, 감히….”

“왜들 이래요.”

카라반 청년이 태자에게 당돌한 표현을 하려 들자 태자가 말리면서 일행 보부상들에게 눈을 껌벅였다. 순간, 카라반 청년이 몸을 사리면서 태자의 눈치를 본다.

“맞소. 내가 너무 성급했소. 걱정 말고 어서 말해보시오. 재밌을 것 같구먼.”

“살라딘 술탄이 예루살렘 주민들더러 성주 한 사람 바뀐 것 때문에 눈치 보지 말고 생업에 지장 없이 살라고 했답니다. 그런데 주민들이 놀란 것은 1차 십자군 때(AD 1099년) 점령군들은 이전에 살고 있던 유대인이나 아랍인, 또는 그 밖의 사람들을 모조리 죽였다는군요. 심지어 어린아이와 임산부도 죽이는 등 무척 잔인해서 기독교 아닌 사람들은 추방도 아니고 다 목을 잘라 죽였는데, 금번에는 이슬람군 사령관이 다짐하기를 결코 해치지 않을 터이니 걱정 말고 이전처럼 살라고 했다지 뭡니까. 그래서 전혀 신분 차별 없이 평화롭게 살고 있다는 이야깁니다.”

카라반 청년의 말을 듣고 있는 태자는 무릎을 쳤다. 가슴을 치기도 했다.

“하아, 참으로 훌륭한 장군이구려. 세상에 그런 인물이 이슬람 장수 가운데 있다니….”

태자는 카라반 청년에게 참으로 훌륭한 인물을 소개해 주어 고맙다고 정중하게 인사하면서 그가 가진 은팔찌 하나를 선물로 주었다.

다음날 아침 태자는 일행을 이끌고 하미를 떠났다. 사주(둔황)까지 일단 가기로 했다. 말과 마차를 운행수단 삼아서 길을 재촉했다. 저녁때가 되어 사주 인근 소그드 거상의 별채에 여장을 풀었다. 일행과 마주앉은 태자는 지도 한 장을 꺼냈다. 그가 대충 그려본 대륙 전체의 모습이었다. 극동 발해만 저 너머 거란 제국의 다섯 개 수도 중 가장 동쪽인 상경 용천부에서부터 제국의 전성기는 물론 중국 대륙 전체와 몽골 초원에 이르기까지 소그드인들과 네스토리안 선교사들이 함께 활동했다는 도시 3백여 개 주요 지역이 그려진 지도였다.

“이것을 보시오. 우리는 조그마한 나라 하나를 경영하는 것에 만족할 수 없어요. 당나라 뒤를 이어 대륙천하를 호령했던 거란제국이 우리나라요 우리 조상들의 나라였죠. 지금의 카라 키타이는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강대한 제국입니다. 그러나 내가 목표하는 나라들은 더 큽니다. 이토록 큰 나라들을 우리 네스토리우스 파 선교단이 발바닥으로 다 밟았습니다. 앞으로 나는 제국을 경영하는 황제보다 이토록 드넓은 대륙 모든 곳에 복음왕국들을 만들 것입니다. 복음을 가지고 가서 참되게 살자, 서로 도우며 살자, 종교들 간의 싸움 따위는 하지 말자면서 사는 사회를 만드는 것입니다. 여기 파울로가 있지요. 저 사람이 누군지 여러분 알지요. 나는 말입니다. 파울로와 저 사람이 속한 십자군 유럽이 찾고 있는 사제 왕이 말입니다. 저들 말로는 ‘프레스터 존’이라는 사람을 많이 만들어낼 것입니다. 이 지도에 그려진 복음 왕국이 3백 개이니까 ‘사제 왕 요한’인지 ‘프레스터 존’인가를 3백 명 만들어 책임자로 세울 것입니다. 십자군 사람들은 자기네가 찾고 있는 ‘사제 왕 요한’이 한 사람인 줄 알고 있으니까 저들은 못 찾는 거예요. 내 눈에는 사제 왕인가 뭐 프레스터 존이 한 사람이 아니고 수백 수천 명이 보이는데 저 유럽 땅 기독교 눈에는 한 사람인가 봐요. 사람이 미련하기 시작하면 자기 마누라를 지금 껴안고 있으면서 마누라 없다고 찾는다는 멍청이들의 속담처럼 되는 겁니다.”

태자는 말을 하면서도 힐끔힐끔 파울로를 보며 웃음 짓고 있었다. 십자군 탈영병 파울로는 바로 저 사람이다, 지금 저 애늙은이 저 사람 태자가 사제 왕이다. 스무 살도 못 된 애송이가 언제 저토록 영특한 지혜를 터득했을까?

파울로가 생각에 사로잡혀 있을 때 태자는 흥얼거리면서 자기를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하는데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때 누군가가 입을 열었다.

“선생님, 거 3백 개 지역 책임자들이 그럼 사제 왕이겠군요.”

“맞아요. 왕이고말고. 성경에 보면 믿는 자들을 왕 같은 제사장이라 하잖아요. 왕이요 또 제사장이라 했어요. 로마 기독교는 왕이 따로 있고, 제사장이 따로 있고, 신자가 따로 있으나 우리 동방 기독교는 이 셋의 직분이 하나로도 표현됩니다. 성경의 가르침대로지요. 우리에게도 주교직이 있으나 그것은 행정직일 뿐 교회의 필수 직분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똑바로 배우면 내 말에 모두 동의할 것입니다.”

그때 사주 책임자가 태자를 찾아왔다. 그는 머리가 하얀 노인이었다. 모인 사람들이 잠시 멈칫하는데 노인이 태자 앞으로 가서 목례하고 태자가 권하는 옆자리에 앉는다.

“저는 이곳 둔황에서 50년쯤 되는 세월을 보내고 있습니다. 네스토리우스파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투루판 고향집에서 어린 날을 보낸 때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기독교를 이어받았죠. 우리 집은 알로펜 주교를 모시고 일등 제자노릇을 했던 집안입니다. 벌써 5백여 년 전이 되겠군요.”

“어르신이 장안 뤼양 등 옛 한·당 제국 시절 명가들 자손들과 지금도 깊은 우정을 쌓으며 지내신다 하던데, 그게 맞는 말인가요?”

“그래요. 귀인께서 그 이야기를 누구에게 들으셨는지 모르겠으나 저희들의 우정은 신분이나 종교 등 가문의 수준에도 큰 영향을 받지 않아요. 저는 사업상 소그드 상단과 거래를 많이 하는데 서로 얼마만큼 신뢰하는가에 따라서 투자의 분량을 정합니다.”

“그런가요. 소그드 상단 사람들과 우리 네스토리우스 파 상인들의 신용은 서로 든든한가요?”

“글쎄요. 소그드 상인들은 대개가 마니교에서 파생된 마즈닥 파인데 저들은 조로아스터교나 불교도 그리고 우리 기독교 사람들과 친합니다. 그런데 아시겠지만 하미, 누란, 투루판 등 타클라마칸의 유력 성벽 국가들 안에는 여러분 네스토리우스파 신자들과는 달리 로마 가톨릭파 기독교 선교사들도 있어요. 그들은 우리들 네스토리우스파를 개 쌍놈들 취급하고 같이 사귀려하지도 않지요. 그렇다 해서 다른 종교 사람들과 친하나면 그렇지도 않아요. 특히 소그드 상단에서는 그들과 가까이하려 들지 않습니다. 그런데 제가 괴로운 것은 저 자신도 그들 로마 가톨릭 사람들이 은근히 싫어지고 있음을 생각할 때 나 혼자서 생각해 봅니다. 이 늙은이야, 너는 나이를 헛먹었구나. 아직도 너를 싫어하는 자, 너를 미워하는 자를 싫어하고 미워하다니 하면서 탄식합니다. 이런 말을 꺼내는 것 자체가 부끄럽답니다. 조금 전에 밖에서 들으니 귀인께서 네스토리우스파 전도 조직이 이 거대한 아시아 천지에 3백 개 처가 있다고 자랑하시던데, 자랑이 맞기는 하지만 자랑으로 끝나면 하나님의 법칙을 다 모르는 겁니다.”

“아, 그런가요. 성주님! 그럼 우리가 어떤 마음자세를 가져야 하나요?”

태자가 근심어린 표정을 지으면서 묻는다. 노인은 태자를 향해 목례를 다시 한 번 드리고 나서 잠시 모인 무리들을 한 사람씩 자기 눈 속에 담아두기라도 할 듯이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제 생각에는 기독교를 전한다는 것보다는 종교 자체를 해체하는 겁니다. 기독교가 뭔가요? 기독교는 하나님이 사람 되어 오신 거잖아요. 왜 왔나요? 사람을 구원하고 사랑하기 위해서 왔겠지요. 왔으면 하나님이 사람으로 오신 ‘그 사람 예수’가 있고, 또 하나님이 사람으로 온 ‘이 사람 나’가 있는데, 나와 예수가 하나인 비밀을 사람들이 모르고 있더라고요. 어떻게 예수가 나일 수 있느냐고 반발하면 나는 이렇게 대꾸합니다. 예수가 나일 수 없다면 하나님이 예수일 수도 없을 것이라고요. 바로 이 부분에 기독교의 함정이 있지요. 이른바 대속론(代贖論) 교리학인데 하나님의 신비한 내용을 헬라철학으로 꾸미다보니 논리 전개가 힘들지요. 대속론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사람으로 오신 이가 예수인데, 또 그 예수가 하나님이라고 주장하거든요. 이 같은 이론은 없어요. 불가능성 논리를 논리법칙으로 우격다짐하다보니 기독교 역사를 보면 기독론 싸움을 1천 년쯤 했고, 그러다가 유대인을 잃어버렸고, 기독교를 쏙 빼닮은 이슬람 종교와 원수 되어 또 1천여 년쯤 더 고생하고 서로 미워하고 저주하다가 자칫하면 둘 다 망할 수 있겠죠.”

“어르신, 너무 고약스럽게 표현하시네요. 뭐 그런 악담이 다 있나요?”

파울로가 불끈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거실에 모인 수십 명의 젊은이들은 파울로와 둔황 지역 책임자 쿰바홀 가문 후손인 쿰가인 노인을 번갈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태자가 나섰다.

“하나님이 예수로 올 수 있다면 그 예수가 나로 표현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분명히 명언이고 우리 기독교 신학의 미래용이 분명하겠군요.”

“서양 기독교는 미래일 수 있으나 우리들 로마 기독교가 개나 돼지 정도로 취급하는 중앙아시아 벌판과 아시아 전 대륙을 누비고 사는 우리들 네스토리우스파 이단자들은 현재용으로 살아내야 합니다. 여러분, 아시아가 얼마나 큰지 아십니까. 저쪽 페르시아, 중앙아시아, 북방 초원지대와 중국, 그리고 페르시아 남쪽이 남방 땅들과 아라비아까지이면 로마 기독교 정통파들보다 무려 백 배가 더 되는 영토에서는 하나님이 예수로 오신 그 예수를 우리들 모두는 자기 안에서 만날 수 있어요. 내가 앞으로 여러분 신참 소그드 식 전도자들이 로마 식 기독교보다는 우리가 이 사막에서 서양으로부터 천대받으며 터득한 예수, 서양 사람들은 눈이 멀어서 자기들 안에 있는 프레스터 존을 만나지 못하고 지금 우리들 중에 있는 프레스터 존인가 사제 왕 요한인가를 찾아다닌다던데, 아마 그들 로마 기독교는 우리들과 함께하는 프레스터 존을 백년 더 찾아도 만나지 못할 겁니다.”

파울로는 노인의 말솜씨에 눌려서 더 이상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있고, 태자는 눈을 지그시 감고 연신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복음인in 들소리>는 하나님의 교회다움을 위해 진력하는 여러분의 후원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동반자로서 여러분과 동역하며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함께 하겠습니다. 샬롬!

후원계좌 : 국민은행 010-9656-3375 (예금주 복음인)

저작권자 © 복음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