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종락 번역가

올해는 일을 많이 벌인다. 내가 무슨 일을 벌이건 지지해주는 아내가 더 이상은 안 된다고 경고했을 정도다. 어쨌든 본업에도 소홀하지 않으면서 벌여놓은 일을 잘 수습해나갈 수 있으면 좋겠다. 그 중 하나가 연말까지 월례 고전 독서모임을 이끌기로 한 것이다. 첫 번째 모임은 셰익스피어의 <오셀로>로 가볍게 시작했다. 물론 여기서 ‘가볍다’는 말은 같이 읽을 다른 책들에 비해 얇다는 뜻일 뿐, 다루는 내용이 가볍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셀로>가 어떤 이야기던가. 물론 질투에 대한 이야기이다. 고지식한 장군이 악당의 말에 넘어가 아내를 의심하고 질투를 이기지 못해 아내를 제 손으로 목 졸라 죽이는 치정살인극이다. 다 아는 이야기. 단순한 줄거리. 그러나 보는 눈이 있으면 전혀 다른 것이 보이는 법. 영국의 추리소설가 애거서 크리스티는 이 책에서 그녀가 창조한 명탐정 에르퀼 푸아로의 마지막을 장식해줄 최고 악당의 원형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녀가 그런 악당을 등장시킨 작품이 바로 <커튼>이다.

<오셀로>에서는 모두 네 명이 죽는다. 데스데모나, 오셀로, 로데리고, 이아고의 아내. 그런데 범인은 두 사람이다. 로데리고와 이아고의 아내를 죽인 사람은 이아고, 데스데모나와 오셀로를 죽인 사람은 오셀로다. 하지만 애거서 크리스티는 데스데모나와 오셀로를 죽인 사람도 이아고라고 본다. 질투심을 못 이겨 아내 데스데모나를 목 졸라 죽이고 스스로 칼을 들어 자결한 것은 오셀로였지만, 결국 모든 살인의 진정한 원인은 뒤에서 범죄를 계획하고 사람들을 조종했던 이아고였다는 것이다. 그녀는 더 나아가, 그로부터 완벽한 살인 기술을 포착해낸다. 그 기술은 “사람들의 정상적인 사회적 내성을 무너뜨리는 것”이고 “사람들 사이의 불화를 증폭시키는 방법”이었다. 그것은 “최고의 기술이면서 동시에 가장 악랄한 기술”이었다.

<커튼>의 악당(X라고 해두자)은 어디에 있건 사람들이 서로 죽이도록 유도할 수 있는 기회를 엿본다. 그래서 그가 있는 곳에는 불화가 싹트고 살인이 벌어진다. 하지만 그의 시도가 늘 성공한 것이 아니었다. 그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외부적 상황(예를 들면 에르퀼 푸아로 같은!)도 있고, 그에게 영향을 받지 않는 타입의 사람(Y라 하자)도 있다. 푸아로는 그런 이의 특징을 본인의 감정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흑백이 분명한 논리체계를 갖추고, 자신의 연구에 집중하는 것, 이렇게 세 가지로 정리한다.

본인의 감정을 정확하게 인지한다는 것은 주어진 상황이나 인물에 대한 자신의 감정적 반응을 안다는 것이겠다. 그것을 외면하지 않고, 다른 사람이 그것을 규정해주도록 내버려두지도 않고, 오히려 정직하게 대면한다는 말이겠다. 둘째, 흑백이 분명한 논리체계라. 아무리 원하는 게 있어도, 그것을 얻을 수 있는 길이 있다 해도, 해도 되는 일과 안 되는 일에 대해 분명한 선(‘계명’이라고 해도 좋겠다)을 가지고 있었다. 도덕원칙이 분명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제아무리 은근하게 살인을 부추겨도 넘어가지 않을 수 있었다. 셋째는 자신이 하는 일에 보람을 갖고 힘껏 매진하는 것이었다. 여기저기 기웃거리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고 가치 있게 여기는 일에 매진하는 것. 이상이 엉뚱한 부추김에 넘어가지 않는 비결이라는 거다.

궁극의 악당이란 배후에 숨어서 몹쓸 생각을 부추기고 적절한 멘트를 넣거나 암시를 주어 불화를 조장하고 죄를 짓게 하는 존재라 했다. 그렇다면 궁극의 선인은 어떤 존재로 상정할 수 있을까? 어떤 역경과 좌절 속에서도 선한 소원을 지속적으로 불어넣는 존재겠다(빌립보서 2:13). 그리스도인에게는 이미 그런 분이 주어져 있다. 그리고 그분이 주시는 소욕에 따라 살아가는 선인의 구체화된 화신은 누구일까? 그런 소원에 따라 말과 행동으로 충실하게 살아가는, 혹은 그렇게 살아가려 노력하는 존재겠다. 아마 머리에 떠오르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분의 뜻에 따라 이들과 함께한다면, 온갖 수준의 이아고와의 싸움도 승산 없는 싸움은 아니겠구나, 해볼 만하겠구나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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