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21:9-13

“주님이 베푸시는 식탁은 
기억하게 하는 식탁입니다. 우리는 
오늘 이 자리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이
주시는 떡을 먹음으로써 
기억을 이어가고 다시 
시작할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제가 지난 4년 동안 세월호를 위해 무언가 작은 일이라도 할 수 있었던 것은, 세월호참사 사흘 전까지, 주일마다 만났던 우리 교회의 예은이를 잊지 못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착하고 미소가 예쁜 아이였지요. 제가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그 아이가 살짝 미소 지으며 다가와 “목사님 왜 가만히 계세요?”라고 말할 것만 같아서 가만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 저는 단원고 학생희생자들의 이름을 다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그 아이들 모두를 ‘250명의 예은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월호 안전공원 부지가 확정되었지만 지난 4년간, 정치권은 물론이고 시민사회, 심지어 종교계까지도 세월호에 제대로 응답하지 않는 것을 보아 온 유족들은 여전히 불안해합니다. 그러나 저는 유족들에게, “사람들은 잊을지 몰라도 하나님은 잊지 않고 기억하신다”는 위로의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수십 년 동안 이방의 포로가 되어 고통당하며 해방의 길이 보이지 않아 절망하며 “하나님이 우리를 잊으셨나보다”라고 탄식하던 이스라엘 민족에게 하나님은 예언자 이사야를 보내셔서 “나는 너를 잊지 않는다. 잊지 않기 위해 너의 이름을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무너진 성벽을 늘 지켜보고 있다”(사 49:16)고 말씀하셨습니다. 고통 받던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하나님의 기억은 해방과 귀환으로 완성되었습니다. 

세월호 안전공원이 희생자들을 위한 기억의 공간이 되고 오고 오는 세대의 안전교육장과 생명교육의 장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하고 응원해야 할 시대적인 소명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고통당하는 이스라엘백성을 기억하셨던 하나님의 마음을 본 받아서, 희생자들을과 유가족의 아픔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가해자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국가의 이름으로 행한 폭력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용서와 화해도 잊지 않는 데서부터 시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억이 힘입니다. 기억해야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기억하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옵니까? 그리고 어디에서 다시 시작해야 합니까?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는, 예수님이 체포되어 있던 대제사장 가야바의 집에서 곁불을 쬐다가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고 도망갔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이전의 어부생활로 돌아가 동료들과 함께 디베랴 호수에서 고기를 잡고 있었습니다. 왜 베드로는 디베랴로 다시 갔을까요? 잊고 싶어서였을 것입니다.

자기 한 목숨 살겠다고 어려움에 처한 스승을 배반한 수치스러웠던 자신, 힘없이 십자가에 달려 죽은 예수를 잊고 싶어서 그러지 않았을까요? 그 베드로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이 다시 찾아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숯불을 피우고 식탁을 준비해놓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이 피우신 숯불 앞에서 베드로는 예수님과 함께 했던 최후의 만찬을 기억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부인한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를 기억했을 것입니다. 

조반을 먹은 후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세 번이나 반복하여 물으셨고, 베드로는 그때마다 “예, 사랑합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나를 사랑하느냐” 라는 주님의 물음은 “너는 나를 잊지 않았지?”라는 물음이며, “예, 제가 주님을 사랑합니다”라는 베드로의 대답은 “예, 제가 주님을 잊지 않았습니다. 앞으로도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고백입니다. 이 고백에는 예수를 버리고 도망갔던 것에 대한 회개의 의미도 담겨있습니다.

베드로의 회개와 믿음을 확인하신 예수님은 그에게 “내 양을 먹이라”며 사명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자기의 실패를 기억하고 돌이키게 하시기 위해 베드로를 다시 찾으셨던 것이고, 그렇게 하심으로써 실패한 베드로에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지난 4년간의 우리의 모습이 혹시라도, 하나님의 아들을 죽이려는 불의한 권력자의 집에 피운 불 곁에서 예수님을 배반하고 도망친 베드로의 비겁한 모습은 아니었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지금, 숯불을 피워놓고, 그 곁에 우리가 먹고 새 힘을 얻게 될 식탁을 차리시고 다시 부르시는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해야 합니다. 권력자 가야바의 집에서 곁불 쬐던 자리가 아니라 부활의 예수님이 디베랴호숫가에 피우셨던 숯불 곁의 식탁으로 우리의 발걸음을 옮겨야 합니다. 아니, 여러분은 이미 예수님의 식탁으로 오셨습니다. 주님이 베푸시는 식탁은 기억하게 하는 식탁입니다. 우리는 오늘 이 자리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이 주시는 떡을 먹음으로써 기억을 이어가고 다시 시작할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박인환 목사 / 화정교회 담임
* 4월 15일 고난함께, 생명선교연대 등이 주관한 세월호 참사 4주기 기억예배에서 설교한 내용을 요약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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