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로펜의 아시아(AD 610~1625) 천년여행 [ 235 ] / 사제 왕 요한 42

“소그디아나 상인들은 단순한 장사꾼들이 아닌 것 같아요.
마치 그들이 세계 역사를 책임지는 것처럼 책임감 있는 말을 많이 하더라고요.
그들 소그디아나족은 알렉산드로스의 후예들이 중앙아시아에 대제국을 건설하고
아시아 전체와 주변 나라들의 종교나 문화,
또 알렉산드로스 사상(헬레니즘)을 전파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더군요.”


 

▲ 내몽골에서 만난 아이들. 천진스러워야 할 아이들의 얼굴이 왜 이리 가지각색일까.

젤메. 늙은이가 나타나서 내가 너의 아버지라고 했을 때도 그 말이 믿어지지 않았다.

“이 애가 정신이 돌아오지 않는가보구나. 테무진 이거 어찌 된 거냐?”

노인의 얼굴이 울상이다. 수부타이가 자르치우다이 노인을 얼싸 안으면서 위로한다. 저 사람이 젤메라는 이름만 가졌지 아버지의 아들이 아닐 수 있다. 아버지는 젤메 형을 찾아온 것이 아니라 테무진 님을 찾아왔고 지금 만났는데 뭘 걱정하느냐고 아버지를 위로하고 있다. 그때 젤메가 다가와서 늙은이를 껴안았다. 수부타이도 젤메를 껴안으며 말했다.

“젤메 형, 친형이든지 아니든지 간에 내 형님과 같은 이름이고 나보다 나이가 많은데 우리는 형제입니다. 어찌 우리들뿐이겠소. 이 초원의 땅 천지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내 부모이며 형제 아닙니까.”

테무진은 무릎을 쳤다. 

“수부타이, 너는 내 아우가 분명하다. 너는 나의 어린 시절을 모른다. 나는 내 아버지 예수게이가 어린 때의 나를 잃어버리신 일이 있었다. 나는 10년 이상을 다른 부족의 노예로 살아왔다. 그것도 편하지 않았다. 지금은 내가 내 조상을 찾았고, 내 종족의 태양이신 카불 칸 증조할아버지를 우러르면서 살아간다. 우리가 족보를 말하면 무엇하느냐, 서로가 형제야. 너는 눈빛이 좋다. 그 불타는 듯한 눈, 나는 너의 그 눈을 보았다. 내가 너를 가르치마. 나를 따르거라.”

수부타이는 테무진의 억센 팔에 끌려서 밖으로 나왔다. 부하들에게 말을 가져오라고 했다. 말 두 마리가 테무진 앞으로 달려왔다. 이끄는 마부가 없는데도 두 마리가 나란히 달려와서 테무진 앞에 나란히 선다.

“수부타이, 너 이 말을 타라.”

“형님, 저는 말을 타보지 않았어요.”

“뭐, 네 나이 몇 살인데…, 아냐 걱정 마. 내가 가르쳐 주지.”

울상이 된 수부타이는 마지못해서 말 잔등 위에 올랐다. 테무진이 수부타이가 탄 말을 얼싸안고 얼굴을 두 손으로 비벼주다가 갈기를 쓰다듬어 주는 등 애무해주었다. 말은 힝-힝 하는 콧소리를 내면서 테무진을 주목하여 바라본다.

“어서 올라 타 봐, 걱정 말고….”

테무진은 수부타이가 탄 고삐를 잡고 한바퀴 돌면서 수부타이의 자세를 잡아주었다. 말과 행동을 같이 하면 된다고 일러주었다. 그들은 말을 타고 주변을 서너 바퀴 돌았다. 차츰 먼 거리를 달려보기로 했다.

저녁 시간에 테무진은 참모들을 모두 불렀다. 오늘밤은 파울로 선생을 모시고 공부하는 시간이었다. 장차 몽골족이 초원의 리더십을 발휘하여 세계 역사에 기여할 수 있다고 귀에 딱지가 안도록 파울로에게 혼자서 듣기만 했던 내용을 참모들에게도 가르치기로 했다.

젤메는 부친과 정을 제대로 나눴는지 늙은 자르치우다이의 손목을 꼭 잡고 있었다. 테무진은 젤메와 눈을 맞추며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젤메의 눈두덩이가 부어 있었다. 자식, 실컷 울었구나.

십여 명의 장정들과 여인들도 함께 모였다. 파울로는 테무진과 함께 앞으로 나섰다.

“오늘은 역사 공부를 합니다. 우리들은 대대로 이 초원에서 살아오면서 말이나 소 등 짐승들을 기르며 살고 있으니까 정착민들 눈에는 우리를 짐승 비슷한 것들로 취급했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우리가 역사를 배워보면 정착민들보다 우리가 더 앞섰다고 내게 말씀해주신 내 선생님이 계십니다. 아시죠?”

“네, 압니다. 파울로 선생 장군님이죠.”

“뭐, 선생님은 맞는 말이지만 어떻게 장군이야. 장군이라고 하려면 여러분과 내가 먼저지, 안 그런가?”

“맞습니다.”

파울로 혼자서만 맞다고 하고 정작 테무진 부하들은 입을 다물고 있었다.

“좋다. 내 말을 안 듣겠다는 뜻인데, 그럼 선생님이 강의해 주세요.”

파울로가 일어섰다. 테무진의 얼굴은 강렬한 자신감에 차 있고 그 눈빛은 이글거리는 파란 불빛이었다.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가면 나올 수 없는 흡인력이 넘쳐나고 있었다.

“여러분, 저는 로마제국의 대학에서 역사를 공부하다가 십자군 전쟁에 참여했습니다. 수년 동안 전투를 하면서 세월을 보냈죠. 그런데 아시아의 땅에 사제왕이 있다고 십자군 진중에 널리 퍼졌고, 장군이나 황제는 물론 기독교의 교황들까지 동방아시아의 땅에 네스토리우스 교파의 기독교인 칸(왕)이 이끄는 강력한 왕국이 있다고 했어요. 그런데 그 왕국이 어디며 왕이면서 사제인 그 당사자는 도대체 누군가를 확인하고 싶어서 중앙아시아까지 와서 사제왕이 분명하다 싶은 인물을 제가 만났습니다.”

파울로는 이 대목에서 잠시 말을 끊었다.

“어서 말씀해 주세요. 그 왕이 누굽니까?”

“네, 말씀드리죠. 카라 키타이 왕국 아시죠?”

“아, 키타이….”

“누군가가 키타이를 알고 있었다. 그래요. 중원에서는 거란국 또는 요나라로 불리는 그 나라가 여진족(금나라)에게 망한 후 서쪽으로 옮겨서 서요 또는 카라 키타이 왕국을 다시 일으켰죠. 지금은 중앙아시아 지역의 최강국입니다. 바로 그 나라의 카간(칸, 왕)에 오를 태자이신데 그분이 지도력으로 보나 신앙의 자세로 볼 때 십자군이나 서양에서 찾고 있는 사제왕의 자격이 분명했어요. 그런데 그분이 몽골의 테무진을 보고 싶다고 하잖아요. 본인이 직접 오고 싶다는 걸 제가 대신 와서 지금 여기 있는 테무진, 장차 몽골은 물론 아시아와 세계의 별로 등장할 이 분을 모시고 있습니다.”

와, 와 하면서 사람들이 박수를 치고 꽹과리를 두드리기도 했다. 테무진이 나섰다.

“역사 공부는 제가 하겠습니다. 여러분, 정착민들, 특히 중원의 한나라시대부터 흉노, 돌궐, 훈, 우리들 몽골, 또는 위구르 등을 북방 초원의 미개인들로 만들어버렸지요. 더 옛날에는 우리들 초원 종족들도 수렵이나 정착농 생활을 했고, 그들 정착 농경을 하는 이들도 초원생활을 했겠지요. 그런데 초기 흉노족이 한나라 유방과 전쟁을 했고, 다음은 우리의 형제들인 돌궐과 위구르족이 당나라 그 이전부터 대륙인들과 경쟁을 했지요. 그런데 훈족은 초기 흉노와 동일 종족이라고 했고, 그 다음은 뭐더라, 파울로 선생이 다음을 해주세요.”

“네, 강의 잘 하셨어요. 저보다 잘하십니다. 그래요, 훈족에 대해서 말씀 드리죠. 훈족은 서로마제국을 멸망시킬 무렵 유럽 국가들을 파괴하고 점령했어요. 500년 대 무렵 아틸라 라는 훈족의 칸이 유럽을 꼼짝 못하게 했으나 그들 세력이 분산되어 유럽에서 추방당했는데 그들의 후손이 헝가리 국을 세웠답니다.”

“그 부분은 좀 더 자세히 해주면 좋겠어요.”

테무진의 청이었다.

“저로서는 더 이상의 내용은 말씀드리기가 어렵습니다.”

파울로는 뒷머리를 한 손으로 긁으면서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유럽 역사에서도 훈족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었다.

“그 부분은 제가 이동 상인들로부터 들은 말이 있습니다.”수부타이의 부친 자르치우다이가 대화에 뛰어들었다.

“무슨 말씀이세요. 이동 상인이라뇨?”

“아, 이동상인은 소그디아나 상인들을 말합니다. 그들은 10여 명씩 집단으로 먼 거리를 다니기도 하는데 우리들 우랑카이족 촌락에 와서 머무는 때가 많아요. 우리 대장간에서 말안장이나 말발굽 쇠나 휴대용 단검들 주문을 많이 하지요. 그 상인들은 위구르족들과 절친하답니다. 그들이 신앙하는 마니교 신앙을 위구르인들도 믿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서로를 잘 압니다. 또 그들은 문자가 발달해 있어서 기록으로 된 초원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하더이다.

“아, 그런가요? 저도 공부 좀 해야겠네요. 그럼 그들이 훈족 이야기를 하던가요?”

“네.”

하더니 자르치우다이는 대장인 테무진을 곁눈으로 바라본다.

“숙부님, 뭘 망설이세요. 지금은 공부시간입니다. 아시는 것이 있으면 말씀하세요.”

“네, 좋아요. 소그디아나 상인들은 단순한 장사꾼들이 아닌 것 같아요. 마치 그들이 세계 역사를 책임지는 것처럼 책임감 있는 말을 많이 하더라고요. 그들 소그디아나족은 알렉산드로스의 후예들이 중앙아시아에 대제국을 건설하고 아시아 전체(중국과 인도 포함)와 주변 나라들의 종교나 문화, 또 알렉산드로스 사상(헬레니즘)을 전파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더군요.”

“아하, 그 사람들 보통 장사꾼이 아니구나. 여러분, 이 시간 내 머릿속에는 우리 몽골도 하루빨리 문자를 만들고 인간 사회를 평등하게 살게 하는 운동을 해야겠어요.”

테무진이 흥분하고 있었다.

“대장님, 지금 훈족이 누구냐를 말하다가 빗나간 것 같은데요. 그 다음으로 문자 만드는 문제를 토론하죠.”

“알았습니다.”

테무진이 자리에 앉아서 곁에 있는 수부타이의 등을 토닥여주고 있었다.

“네, 이 늙은이가 잘못 말했군요. 훈족 이야기인데 그들은 중원 사람들이 흉노족으로 보는 초기 우리들의 선조들과 같습니다. 초원지대는 단순한 부족이 아니고 서쪽 바다에서 우리들의 바이칼 바다까지 오고 가던 스키타이족들과 함께 뒤섞인 유럽과 아시아의 혼성 종족입니다. 훈족은 유럽인 몽골인, 투르크인의 조상들과 함께 혼혈 연합세력이라고 하더군요.”

“바로 그래요. 우리는 아시아의 북방 초원을 하루속히 통일하여 세계가 서로 형제가 되어 사는 나라를 만들어야 합니다.”

테무진은 자리에서 두세 번 일어났다 앉았다를 반복하면서 안절부절이다.

“테무진 대장님, 오늘따라 왜 그렇게 흥분하세요.”공부시간이 끝나고 파울로가 조용히 테무진에게 묻는다.

“나도 모르겠소. 우리도 소그디아나 상인들처럼 세계를 누빌 준비를 하고 싶소.”테무진의 눈에서 파란 불이 뿜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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