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조년
한남대 명예교수

기독교가 우리 역사와 사회에 공헌한 바는 두 말할 필요 없이 매우 크다. 반면 일제로부터 해방된 뒤, 남북으로 갈라진 때로부터는 사회에 부정의 영향을 준 것도 매우 크다. 기독교 세력이 확장되면서 긍정과 부정의 영향은 어느 것이 더 크다고 쉽게 말할 수 없을 만큼 되었다. 기독교의 일부이긴 하지만 아주 강력한 세력으로 특히 민족통일과 한반도 평화창출의 차원에서 볼 때 그 문제는 매우 심각하다. 반공, 멸공의 논리와 실천에 있어서는 누구보다 앞장서서 매우 철저하고 일관되게 실천하였다. 철천지원을 풀 수 없는 원수로서 도저히 용납할 수 없으며, 화합과 화해할 수 없는 견고함 역시 다른 것에 비교할 수가 없다. 물론 그렇게 되고 실천해 오는 이유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공산정권이 세워지는 과정에서 신앙의 자유를 빼앗기고, 재산과 삶의 터전을 탈취 당하는 숙청과정에서 겪은 무섭게 치가 떨리는 경험이 생각과 삶에 깊이 박혀 있는 것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고향과 일가 식구들을 잃거나 생이별을 해야 했던 반인륜스런 쓰라린 경험을 지워버리라 말할 수는 없다. 그러한 것들은 세월이 흐른다고 하여 사라질 수 있는 것DL 아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할지라도 변함없이 그 모양으로만 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무엇이 계기가 되어서든지, 그러한 상황을 뛰어넘는 커다란 전환의 경험이 이어야 한다.

이때,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할’ 뿐만 아니라,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의 말씀을 믿고 따르는 기독인의 차원에서 생각할 때 이야기는 심각하게 달라질 것이다. 물론 개인의 삶 속에서 이 계명을 철저하고 깊게 실천하는 기독인이 많은 것은 매우 다행스럽고 존경할 일이다. 그러나 그 실천이 민족과 국가 또는 종파의 차원에서는 정반대로 나타나는 것이 문제다. 살신성인의 자리에 들어갔다고 하는 사람에게서도 아주 자주 집단의 광기에 휩싸여 사는 것을 종종 본다. 거기에서는 사랑과 화해와 용서가 들어갈 틈이 없다. 적대세력을 소멸시키는 것 외엔 다른 대안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공생, 공존의 길이 용납되지 않는 듯이 보인다. 그러면서도 사랑하라, 원수를 사랑하라는 계명은 살아 있다.

정권은 바뀌게 돼 있고, 국가체제 역시 변할 수 있다. 아니, 끊임없이 변한다. 그러나 그 안에서 사는 사람들의 삶의 원리와 원칙은 다른 체제에 사는 사람들과 별다른 차이가 없다. 그 체제에 사는 사람들도 사랑하고 우정을 나누고 넉넉하게 먹고 입어야 하며 아늑한 보금자리에서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 필요없는 겉의 조건들 때문에 불안하고 불평스러우며 생존의 위험의식을 가지면서 살아서는 안 된다. 그것을 위해 인도주의 차원에서 북쪽 주민을 돕는 것은 매우 칭찬할 일이다. 이 부분에서는 진보측에 속한다는 기독교 집단보다 보수측에 속하는 기독교 집단에서 더 많이 관여하고 있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나는 그것을 좀 더 높고 다른 차원으로 전환시키고 진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류의 평화를 위하여서.

다시 말하면 지금 한반도를 중심으로 상당히 많은 기류가 달라지고 있음을 느낀다. 물론 현실로 달라진 것은 없다. 그것을 다르게 변화시키자 하는 맘의 표현과 약간의 움직임이 보인다. 이것은 북한이나 남한이나 마찬가지다. 사회 일각에서는 한반도의 평화를 만들기 위한 여러 가지 움직임들이 끊임없이 있었고, 지금은 좀 더 자세하고 깊이 있게 활동한다. 남북한의 정상들이 회담을 하였고, 지금은 북미간의 정상회담을 준비 중이다.

이러한 회담들이 성공하고 좋은 선언이 나온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현실로 실천되기까지는 언제나 넘어야 할 산들과 건너야 할 물들이 앞을 가로막을 때가 참으로 많다. 지금은 저 말한대로 될 것인가에 대하여 서로가 확신할 수가 없다. 그러나 될 것이라고 믿어야 한다. 그러면 그 믿음의 자리로 가게 돼 있다. 이 단계에서 기독교가 해야 할 중요한 일이 있다. 대북관계에 대한 대전환이 있어야 한다. 여기에는 진보나 보수의 차원을 넘어서 기독교라는 한 틀 안에서 공동으로 함께 달라져야 한단 말이다. 사랑을 실천하는 일이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을 실현하는 일이다.

그러기 위하여 기독교는 반공이데올로기를 극복해야 한다. 북쪽에 대한 적대감정을 극복해야 한다. 이것은 이쁘고 밉고를 넘어서 복음을 실천하는 면에서 무조건 기독교가 원수 사랑의 자세로 크게 변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전쟁 상황을 끝내기 위하여, 평화롭게 살 수 있는 길을 위하여 한국의 기독교는 진보와 보수가 함께 종전협정과 평화협상을 지지하고, 북측의 체제를 인정하는, 그렇게 하여 핵이 없는 평화로운 한반도를 만드는 기틀을 쌓아나가면 좋겠다. 조건 없이 원수를 사랑한다는 입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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