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는 외형역사가 1885년 출발이다. 그때 제물포항 부활절 아침 아펜젤러와 언더우드가 대한제국 선교사로 왔다. 그런데 아펜젤러의 감리교단은 기감과 예감 하나씩 교단이 둘이다. 그런데 언더우드의 장로교단은 공식 250여 개 교단, 비공식까지면 300에서 400여 개 교단으로 나뉘어 있다. 이쯤 되면 모든 “대한예수교장로회”가 한 번쯤 존재론적 자기 검토가 있어야 한다. 왜 그런가? 과연 예수에게서 교파를 300개 이상 나누어서 살림해도 되는 것인가? 아마, 이 부분에 있어서는 합동과 통합이 크게 책임을 져야 하고, 기장이나 예장의 고신파가 또 함께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복음은 책임이다.

안셀무스의 과장된 대속론이 복음의 미신화를 재촉했으나, 정확하게 말하면 예수의 골고다 십자가는 자기 자신과 인류 모두를 향한 책임감에서의 죽음도 있다.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복음을 전한다는 선한 명분이라고 해서 무조건 (모든) 교회의 책임이 무죄가 되지 않는다. “대한예수교장로회”가 왜 많은가? 그 간판을 걸면 교회가 더 쉽게 만들어지기 때문이라면 그런 목회는 밥벌이 이상의 의미가 없다.

한국의 모든 교단과 교회들이 이 정부의 국가주의, 사회주의적 경제선호 등 좌파시도에 많은 빌미를 주었다. 지금 한국사회는 정부의 좌파적 경제운용 등 좌경화로 기울면서 저소득 서민이나 중·소 상공인 등 가난한 사람들이 얼마나 불안해하고 있는지 한국교회는 아는가? 성장지향형 교회주의자들 교회 목사들은 알고 있는가? 우리 사회는 서구 기독교가 마련한 자유민주주의적 경제와 사회로 안정된 국가의 앞날을 기대하려면 한국교회 교파주의들이 생각을 바꿔야 한다.

지금 당장 “대한예수교장로회” 간판을 건 300여 개 장로교단에게 호소하노니, 가장 빠른 시간 안에 교단들 통폐합 등의 방법으로 구조조정을 하라. 가능한 일이 아닐까? 러시아가 소비에트 연방으로 바뀌는 혁명 직전까지 러시아 정교회는 99.9%가 기독교였다. 공산화 되어 70여 년 살아오면서 교회들은 없어졌고, 혁명과정에서 2억여 명이 죽어갔다는 사실을 아는가. 한국교회가 자유대한민국에게 지금 가장 소중하게 바치는 선물은 교단들의 구조조정을 통한 교회 혁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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