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 승 진
(사)한국기독교출판협회
사무국장

해마다 7월이 되면 서울이 한차례 들썩인다. 바로 성소수자로 일컬어지는 게이, 레즈비언 등과 그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축제(퀴어축제)가 열리기 때문이다. 특히 2016년부터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 사용을 허용하면서 소란이 더 커진 듯하다.

퀴어축제를 바라보는 시각에는 중간지대가 없다. 실상 관심 자체가 없는 사람들이 절대 다수이지만, 드러난 소수의 지지자 혹은 반대자들의 경우 모두 극단적인 편이다.
 
일단 지지하는 사람들은 이것이 ‘인권’의 문제라는 주장이다. 이미 스스로 성적 정체성의 혼란으로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사회적 권리마저 차별받으면 안 된다는 주장이다. 그러한 측면에서만 보면 차별금지법도 나름 일리가 있다. 하지만 거기서 더 나아가 동성 간 혼인등록이나 자녀입양 등의 가족구성권을 요구한다는 점과 ‘혐오금지’를 외치면서 자신들의 주장에 반대하는 이들을 향해 극단적인 혐오를 보인다는 점이 더 큰 문제다.

반면 반대자들의 경우 대체로 다수의 지지를 받고 있으면서도 이를 잘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즉 제대로 된 접근방법조차 연구하지 않고 그저 ‘에이즈’나 ‘남성며느리 또는 여성사위’ 등의 공포조장이나 종교적 정죄의 반응으로 일관한다. 더 심각한 것은 퀴어축제가 지난 15년 간 서울시내 곳곳에서 개최되어 왔음에도 정치적 입장에서 공격의 수단으로 삼으려는 치졸함까지 보인다는 데 있다. 물론 필자의 마음을 무겁게 하는 진짜 이유는 그 반대자들이 대부분 ‘기독교’의 이름을 내세운다는 데 있다.

나는 이성애자이고 하나님께서 주신 가정을 정말 소중히 생각한다. 즉 전통적인 가정과 궤를 달리하는 동성가정의 구성에 대해 개인적으로 반대한다. 하지만 그것을 종교적 관점에서 바라보면 반대 이전에 고려해야 할 것들이 더 많아 보인다.

성경에서 간음한 여인을 두고 고소하는 사람들과 예수님이 나눈 대화(요 8:3~11)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예수님은 단 한순간도 간음을 두둔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다시는 범죄하지 말라”고 당부하셨다. 하지만 동시에 모세의 율법을 빌미로 개인의 고통을 고려하거나 이해하는 대신 죄보다 죄인을 더 혐오하고, 심지어 그를 핑계 삼아 예수님을 공격하려 했던 이들을 향해 준엄하게 꾸짖으셨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동성애를 필두로 한 성소수자 문제에 대한 접근은, 특히 기독교인의 경우 이러한 예수님의 본을 좇는 것이 절대 필요하다.

그것은 성적 정체성의 혼란으로 성소수자들과 그 가족들이 겪어온 고통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두 번째로 죄는 미워하되 죄인은 긍휼히 여김으로써 사랑의 용서를 실천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매일 하는 이런 저런 거짓말, 미움, 증오, 사기, 폭력들이 동성애보다 나은 근거가 어디 있나?
마지막으로 단호하게 자신의 의사를 밝힐 수 있는 권리를 요구해야 한다. 성소수자들의 말대로 사회적 차별을 금지하자는 데 동의할 수 있지만, 그것이 사회의 또 다른 구성원들의 의사표현의 자유(언론출판의 자유)를 구속하는 데 이르러서는 안 된다는 거다. 퀴어축제를 찬성할 자유가 있듯이 그것을 반대할 권리도 주어져야 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보다 중요한 것은 기독교인들이 동성애에 대한 반대자로서가 아니라 이성간 결혼을 통해 아름다운 가정을 일구는 신앙인으로서의 본을 보이는 것이, 온 사회가 그것을 인정하게 하는 것이 더 좋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혐오는 또 다른 혐오를 불러올 뿐이다. 우리도 그들도 마찬가지다. 반면, 온전함은 변화를 불러온다. 그리고 오직 사랑만이 온전함에 이르게 한다.

<복음인in 들소리>는 하나님의 교회다움을 위해 진력하는 여러분의 후원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동반자로서 여러분과 동역하며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함께 하겠습니다. 샬롬!

후원계좌 : 국민은행 010-9656-3375 (예금주 복음인)

저작권자 © 복음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