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탐구(탐색)

공관복음 역시 마찬가지라 할 수도 있겠으나 요한복음은 전체 배경이 철저하게 유대와 이스라엘의 구체적 역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물론 그가 살고 있는 역사적 현실을 간과하지 않는다. 헬레니즘의 전성기를 이루고 있는 지중해 인접국들, 특히 그리스와 로마의 정치, 역사, 문화의 현실을 충분히 인정한다.

그래서 그의 글, 요한복음서는 “헬레니즘 유형의 아류”라는 평가를 받기도 할 만큼인 측면도 있다. 특히 18세기 계몽철학기의 미친 바다의 용왕님들처럼 기세를 올리던 계몽기 사상과 철학, 그리고 그들의 좌파, 더 극심한 좌파인 18세기 이후 무신론 철학자들까지 가세해 요한복음을 하나의 소일거리로 삼으려 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다. 요한복음의 언어와 사유의 구조를 헬레니스트(Hellenist)들이 파악을 못했기에 그들은 요한복음 기록자의 테크닉에 속아버린 것일 뿐이다.

요한복음 기록자는 대단한 심술꾼(?)이기도 하다. 부정적 표현이 아니라 자기 보호본능의 차원에서 자기를 감춘다 함이 더 신사적인 표현이라고 하자. 요한복음 기록자는 이 글 이 책이 예수만큼 수준 가까이 다가간 사람, 자기 삶을 매듭짓기 위해서는 십자가 죽음이라도 감수할 용기가 있는 사람에게만 그 속마음을 열어줄 극한의 비밀한 순정을 지닌 여인 같기도 한 내용을 간직하고 있다.

요한복음 21장에 가면 베드로가 예수님이 자기의 말년 신수를 말씀해 주니까(요 21:18~19) “…이에 베드로가 그를 보고 예수께 여짜오되 주님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삽나이까”(요 21:21) 그때 예수께서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요 21:22)는 기록이 있다.

다른 제자들이 예수와 베드로의 대화내용을 과장해 소문내기를 이 사람, 곧 예수께 사랑받는 제자가 예수 다시 오실 때까지 죽지 않을 것이라고 소문을 내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내가 올 때까지) 죽지 않겠다는 말이 아니라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고 주님이 말씀하신 것이라고 해명해 주는 내용까지를 기록하고 있다.

요한복음 마지막 대목에서 요한복음 저자가 예수 올 때까지 죽지 않을 것이라는 말과 말들 사이의 에피소드 같은 내용 속에 요한복음 저자는 아주 중요한 비밀 하나를 감춰두었다. 그것이 무엇일까? 이렇듯 능수능란한 요한복음 저자의 솜씨를 놓치지 않으면 중급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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