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D일보를 펴서 늘 읽던 ‘3.1운동 역사현장’ 제14화를 읽었다. 민족 대표들이 내란죄로 몰려 감옥생활이 어려웠다. 고등계 형사들이 온몸을 발가벗겨 놓고 가죽 채찍으로 매질하기, 코에 고춧물 붓기, 시멘트 바닥에 무릎 꿇리고 구둣발로 짓밟기, 손·발톱 찌르기와 뽑기 등 악랄한 고문을 했다.

어느 날부터 민족대표들이 극형에 처해진다는 얘기가 나돌아 감옥을 공포분위기로 몰아넣었다. …고문에 못 이겨 민족대표들 중 서서히 허물어져갔다. 어떤 대표들은 공포감에 싸여 대성통곡을 하거나 벌벌 떨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고문을 당하거나 취조 받는 시간이 아닌데 공포에 휩싸인 이 모습을 본 만해 한용운이 공포에 떨며 울고 있는 몇 사람에게 인분(똥) 세례를 퍼부었다는 대목을 읽으면서 웃다가 울다가를 거듭했었다.

죽을 각오도 없이 3.1 만세운동에 나섰으며, 그것도 민족 대표였던가. 공포감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극형을 말하는 일경들이 멀리서 지켜보는 자리에서 울고 벌벌 떠는 그 모습을 신문내용에서 읽으면서 웃었다. 또 그 못난 독립운동 대표들 머리통에 인분세례를 퍼부어 못난 민족의 초라한 꼴을 못 봐주겠다는 만해 선생의 추상같은 기개가 너무 자랑스러워서 부러움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왜 이럴까? 하나님은 한국교회에 오늘은 무엇을 요구하실까?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던 때가 공생애 겨우 3년차, 그 나이 33살로 기록되어 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6장 12절에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리라”는 말씀을 하셨다. 이는 시간이 모자랐다,는 뜻이 아니지만 그러나 제자들과 겨우 3년이라는 짧은 시간도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왜 그렇게 빨리 십자가 죽음을 선택하셨을까? 상황. 피할 수 없는 선택의 시간, 하나님의 시간이었다고 본다. 그럼 우리 한국교회의 시간은 언제일까? 북한과 게임을 한다. 조금은 무모하지만 지난 70년 동안 못 보았던 발상이 분명 있다. 그렇다면 진보정부가 모험을 걸 때, 후방에서 교회와 자유대한민국의 백성들이 죽을 각오로 지킬 것은 지키면 된다. 옥쇄(玉碎)의 각오로….

<복음인in 들소리>는 하나님의 교회다움을 위해 진력하는 여러분의 후원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동반자로서 여러분과 동역하며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함께 하겠습니다. 샬롬!

후원계좌 : 국민은행 010-9656-3375 (예금주 복음인)

저작권자 © 복음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