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제자들 몇몇과 함께 거닐 때, 바리사이들이 달려와서 “선생! 따르는 자들이 적은가?”라고 걱정 반 비웃음 반으로 시비했던 때가 있었다. 그때 예수 가라사대, “좁은 문으로, 좁은 문으로…”였다. 좁은 문이 좋다. 인생 백년 공부해야 예수의 계신 곳 문턱 넘을까 말까 정도인 줄 알아야 한다.

한국교회와 함께 60여 년 동행해보니 전 같지 않고 요즘은 너무 서두는 사람들 때문에 어지럼증이 생길 지경이다. 목회도 그렇다. 제자 열둘 붙잡고, 그들을 가르쳐보려고 애쓰시던 예수님을 생각해보라. 복음서를 자세히 읽으면 교훈을 주실 때는 언젠가는 제자들만 따로 부르셨다.

산상수훈을 주실 때(마 5장 참조)를 보자. 그때 예수는 군중들과는 먼 거리에 있었고 제자들 열둘과 함께 속삭이듯이 말씀하셨다. 변화산 이야기를 보라. 그때는 열둘 중 셋(베드로, 요한, 야고보)만 따로 부르셨다. 그때 교훈은 특별히 더 중요했었으니까. 열둘 중 셋을 따로 부르시던 예수의 영재 교육법이었다.

제자들과 동행보다는 하나님과 일대일의 시간이 필요할 때는 홀로 감람산 벳바게나 그 밖의 은밀한 기도처를 찾기도 하셨다. 마지막 떠나실 때는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일러줄 말이 있는데 너희가 깨닫지 못해 가르치지 못했노라”(요 16:12 참조) 하시고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이라고 그 다음 13절에 여운처럼 남기시지 않던가.

하나님의 가르침은 너무 너무 세미해서 땅바닥에 귀를 기울여야 겨우 들리는 법이다. 목사가 목회하면서 신자 만들기에 허겁지겁하는 경우는 주머니 생각이 더 많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신자 하나 얻기 위해 더 노력해 보라. 한국교회가 예수를 바로 깨달을 날이 오려면 신자 30여 명 가르치느라 내 인생 100년 다 바쳤네, 하는 목사들이 많이 나와야 한다.

지금 한국교회를 보시라. 그리고 목회자들일 경우, 프로테스탄트 원리를 바로 알면 “자비량 목회”가 더 집중력, 성공의 가능성이 있음을 희미하게나마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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