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 500+1주년, 위클리프 및 틴데일 저서(5권) 출판 기념 세미나-10월 24일 홍성국 교수 발제

▲ 홍성국 교수(평택대)

영국의 위클리프와 틴데일의 종혁 개혁 활약상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한국교회에 잘 알려지지 않은 이들 두 인물의 개혁운동을 말하고 있는 책 5권이 출판, 오는 24일 오전 10시 30분 서산성결교회에서 출판 기념 세미나가 개최된다.

한국교회에 제2의 종교개혁이 요구되는 시대에 필요하다는 판단 아래 진행된 번역 및 출판 작업은 평택대 홍성국 교수와 이 대학 박사 코스에 참여하고 있는 15명의 초교파 현장 목회자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영우회(회장 신방호 목사, 사무총장 오선택 목사)의 노력으로 한국에서 빛을 보게 된 것이다. 크고 작은 교회에서 목회하는 이들이 십시일반으로 후원에 참여했다.

한편 책 서문과 이날 세미나에서 홍 교수가 발제할 두 인물은 독일의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과는 별개로 영국 종교개혁의 중요한 역할을 어떻게 감당했는지 소개한다. 성직 매매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했던 위클리프, 성경을 원어에서 영어로 번역하여 자국민이 쉽게 읽게 함으로 교황의 교리 문제를 올바로 인식하여 순수한 기독교를 추구하는 운동들이 가능하게 했던 딘테일 등 두 인물에 대한 홍성국 교수의 이야기를 옮겨본다.


“성직자들은 재물, 권력,  명예 소유해서는 안 된다”

▲ 위클리프

위클리프(John Wycliffe, 1320~1384)는 누구?  
그의 종교 개혁 운동은 영국에서 시작하여 보헤미아의 후스를 통하여 유럽 대륙으로 옮겨간다. 로저스 박사는 후스 운동의 전체는 보헤미아의 위클리프 주의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점을 제시했다. 더 나가서 후스의 신학 체계 전체는 위클리프에게 빚졌다. 후스는 그의 가르침을 높이므로 목숨을 잃었다. 후스가 1415년 콘스탄스 공의회에서 이단으로 정죄 당하여 화형당할 때 위클리프도 역시 이단으로 정죄당하고 그의 무덤을 파서 그 뼈를 불태워버리라는 결정이 내려진다. 그 후 약 1 세기가 지나서 루터의 종교 개혁 운동이 유럽에서 촉발되었고 확장되어 영국에까지 이어졌다. 루터는 후스의 글과 위클리프의 글을 손에 쥐고 있었고 그들의 개혁적 신학 사상은 그의 글들을 통해 이어진 것이다.
위클리프의 글들이 많이 퍼지지 못한 것은 인쇄술이 없었기에 모두가 필사해야만 하고 많은 시간과 작업이 필요하며 그렇게 된 자료들도 모두 고가이기 때문에 일반 대중이 접하기가 힘든 상황이었다. 그가 라틴어 성경에서 영어로 번역한 성경 역시 그 같은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위클리프의 글들을 번역하면서 중세 교회의 상황에 대해서 많은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의 글이 나온 후 즉 종교 개혁의 씨가 뿌려진 후 100여년이 지나서 여러 가지 지정학적 여건이 마련되고 종교 개혁이라는 결실이 가능해졌다. 그런데 100여 년 전에 위클리프가 공격하였던 교황권, 수도원 운동, 그릇된 교리, 특히 성직 매매와 같은 것들이 종교 개혁 당시에도 그대로 변함없이 이어졌고 더욱 악화되었다는 사실을 보게 되었다. 인간의 타락성이 종교라는 탈을 쓰고 많은 사람들을 공포로 몰아넣고 착취하고 저주하고 죽음에 처하는 끔찍한 일들이 자행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접하게 됐다.


“정의에 빗대어 현대의 교회와 사회
 전반에서 발생하고 있는 거룩한 직책에서의  
 거래가 어떻게 나타나는지
 직시할 필요가 있다.”

 

 

+ 논설의 예: 성직매매

위클리프의 논설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것은 성직자들에 관한 다양한 논설들이다. 요점은 성직자들은 이 세상적인 재물이나 권력, 명예들을 소유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들의 직책은 성경을 부지런히 연구하고 맡겨진 성직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당시의 성직자들, 예를 들면, 사제들, 주교들, 대주교, 추기경, 수도원장, 수도사, 혹은 그 외의 성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본연의 책무에서 이탈하여 이 세상 것을 소유하고자 한다고 비판하고 있다. 특히 그가 가장 핵심적으로 비판하고 있는 것은 성직의 모든 영역에서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성직은 다만 영적인 직책을 맡은 사람들만이 아니라 하나님이 위임한 모든 영역에서 종사하는 사람들 모두가 성직에 있다는 것이다. 그의 당시의 사회 전반에 걸쳐서 자행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직책을 통한 거래 즉 성직매매라는 것이다. 위클리프는 다양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거래에 대해 강력하게 질책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의 많은 글들 중에서 이 부분을 주의 깊게 보아야 할 것이다.  성직매매의 타락에 의해서 하나님의 집에서 평화로운 질서를 지혜롭게 유지하는 큰 능력을 나타내는 성령의 계획이 좌절되는 것이다. 성령을 저항함으로써 성직매매는 은혜로운 질서를 파괴시키고 결과적으로 평화를 분쇄하는 것이다. 성직매매는 나병과 같은 것으로서 그 질병 자체의 성격과 질기게 오래가는 특성으로 인해 오늘날 하나님이 자주 시행하지 않는 기적을 제외하고는 고침을 받을 수 없다. 더 나가서 그 질병의 전염성 때문에 교회는 그것을 피하려고 많이 애써야만 한다.

하나님을 모독하는 죄가 얼마나 크냐에 따라서 더 혹독하게 심판을 받아야하는 게 성직매매와 같은 죄다. 그러므로 성직매매 자는 짐승과 노예가 시장터에서 값싸게 팔려나가듯이 싼 값으로 은혜와 의를 팔아먹을 뿐만 아니라 할 수 있는 한 가장 의로운 그리스도를 수치스럽게 먹어 삼켜 버린다. 그리스도를 파는 것에 대해서 파리시안은 성직매매 자들은 장로들에게 죽을 몸 안에 거하는 진리를 비밀리에 판 가룟 유다를 능가하여 성자와 성령을 함께 판다고 적시했다.

교회에 생명을 주기 위해 성령은 가난과 순교의 환난이라는 물 밑에 숨겨져 있었으나 교회가 기부를 받은 후에 그 명예는 팔려고 내놓아졌고 사랑은 마태복음 24:12에서 그리스도가 예언한대로 꺼져버린 것이다. 이 같은 위험에 대해 세속의 지도자들에게 자주 성경이 증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또한 쉽고 안전하고 순조로운 길을 그들에게 제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 신은 현세의 재물의 먼지와 자기 자신들의 유익에 대한 욕구로써 하나님의 방향에 눈이 멀게 하였으므로 어리석게도 그것을 마비시킨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을 향해 싸우는 마귀의 방향을 향해 그들은 머리를 들이대고 달려가서 유익과 명예를 찾는다. 결국 성직매매는 교회의 선택받은 자들 중 많은 사람들이 실망스럽게 죽은 사람처럼 되게 한 이유가 된다.     

+ 성직매매의 현재의 예

정의에 빗대어 현대의 교회와 사회 전반에서 발생하고 있는 거룩한 직책에서의 거래가 어떻게 나타나는지 직시할 필요가 있다. 먼저 교회 안에서의 성직과 관련된 거래는 어떤 것이 있을까? 먼저, 담임 목사 청빙 과정에서 발생하는 거래는 너무나 심각하게 나타나는 것으로 보인다. 후임하려고 하는 목사가 그 교회의 유력한 장로들에게 뇌물을 쓴다든가, 세습을 한다든가 혹은 위장된 세습을 한다든가, 치리목사와 결탁한다든가, 힘 있는 목사를 동원하여 정치적으로 해결하든가, 전임자에 대한 권리금을 지불하는 등이 있다.

다음, 목회와 관련된 거래가 있을 수 있다. 담임목사가 임의로 교회 자금을 유용한다든가, 안수기도하면서 과도한 돈을 취한다든가, 직분자를 세울 때 과도하게 많은 돈을 교회에 바치게 한다든가, 헌금 많이 하는 성도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보이고 더 큰 발언권을 준다든가, 외부 강사에게 과도한 사례비를 주고 역으로 품앗이 한다든가, 기복사상을 강조함으로 교회의 확장을 기한다든가, 담임 목사가 목회에 전념하지 않고 교단 정치 내지는 세속 정치에 몰입한다든가, 설교에서 진리의 선포를 회피한다든가, 목사직의 힘으로 성적 추행이나 폭행 등은 성직매매에 해당되는 것이다.

이 같은 거룩한 직책 내에서의 거래는 비단 교회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세속의 사회 내에서도 무수하게 발생한다. 예를 들면, 법관이나 판사들이 정당한 판결을 하지 않고 정치적 눈치를 본다든가, 정치인들 중에서도 거룩한 직책에 있지만 그 직책의 권세를 이용하여 백성들의 삶을 잘 보살피지 않고 오히려 피폐하게 만든다든가, 학생들을 잘 가르쳐서 훌륭한 시민으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게 할 교육자들이 그 본분을 이탈하여 정치권에 발을 들여 놓고 큰 권세를 추구하려는 노력 역시 거룩한 직책에서의 거래라고 볼 수 있다.

위클리프는 “개혁을 위해 전 교회를 항상 통치하는 하나님은 그들을 움직일 것이다”라고 하면서 세속의 통치권의 회복을 예언했다. 위클리프의 글들에서 오늘날의 한국 교회에서의 현 상황을 비춰볼 수 있는 거울의 역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말하자면 제 2의 종교 개혁이 요구되고 있다는 작금의 현상에서 앞으로 나아갈 선험적인 길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KJV의 성경 90%에  틴데일의 영어번역 그대로 유입”

▲ 윌리엄 틴데일

틴데일(William Tyndale, 1484~1536)은 누구?  
순교 사화를 쓴 존 폭스는 틴데일을 가리켜 영국의 사도라고 불렀다. 그렇지만 틴데일이 영국의 종교 개혁가라는 사실 조차도 인지하지 못했고 그를 단지 성경을 영어로 번역하다가 순교당한 사람으로만 알려져 왔던 것도 사실이다. 루터(1483~1546)와는 동시대 사람이었지만 그의 본격적인 종교 개혁 활동은 1525년 헬라어에서 영어로 신약을 번역하여 출판한 때부터이다. 그러나 이때는 이미 루터의 종교 개혁 운동이 활발하던 때였다. 우리가 그의 생애를 일별해 보면 1521년 까지는 옥스퍼드 대학과 케임브리지 대학에서의 수학에 매진했다. 1521~1523에는 가정교사로 1523~1524까지는 런던에서 영어 성경 번역을 시도했다. 그러나 그 같은 꿈은 영국 내에서는 실현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대륙으로 건너가서 본격적인 각종 논술들을 저작 출판하여 고국의 동포들에게 읽히고 더 나가서 그의 글들이 왕실에서 읽히게 되는 사역을 감당했다.  당시의 영국 내에서 루터를 이단으로 규정하고 루터주의에 대해 어느 정도 극렬하게 반대하였는지를 이해할 때 이 두 종류의 글들이 영국의 종교 개혁에 미치는 영향들이 무엇인지 명료해지는 것이다. 루터주의는 영국 내에서 그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와 동시대 인물인 틴데일의 등장과 함께 영국의 종교개혁 운동이 전개되었다. 일단 이단으로 치부된 루터주의를 따르는 틴데일로 영국의 정치권과 종교권에서 인식하였기 때문에 그에 대한 반대는 루터에 대해서보다 더욱 강렬했다. 그러기에 그는 고국으로 돌아갈 수 없었고 피신하면서 고국의 종교개혁을 위해 노력하였고 마침내 이단으로 정죄당하여 객지에서 1536년 종교 개혁 지도자로서 유일하게 화형 당하여 순교했다.   


신약 성경을 헬라어로부터 영어로 번역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최초의 번역판은 1525년에 출간되었다.
그는 이어서 모세 오경과 요나서를 히브리 원어에서 영어로 번역했다.

 

+ 후대에 미친 영향

 

1) 영국 내의 정치적 종교적 영향-헨리 왕은 “그리스도인의 순종”과 “고위 성직자의 행위”를 읽었고 그것을 통해 로마교황청의 고위성직자들의 문제를 알았으며 로마교황청과의 연결고리를 끊어야 한다는 성경적 논리를 발견했다. 그 성경적 논리는 그가 로마의 교황청과의 고리를 끊게 되는 결정적 요인이 되었다. “1534년에 그는 교황과 로마의 영국교회에 대한 주관을 단절하고 영국교회의 수장으로 선언했다.” 쿨터는 다음과 같은 언급을 이어 같다: “랭거의 세계사 대백과 사전에서 우리는 다음의 약술을 볼 수 있다: ‘1534년 수장 법은 왕과 그의 후계자들을 영국교회와 성직자의 보호자이며 유일한 수장이라고 지명했다. 수장에 대한 서약을 거부하는 자는 반역죄로 다스린다. 그에 따라서 토마스 모어는 1535년에 교수형을 당했다.’”

이 같은 정치적 행동은 영국의 종교개혁의 결정적 시작이 되었다. 그 후 헨리 왕은 영국의 전 교회에 큰 영어성경을 비치하도록 했다. 영국이 로마 교황청과 분리하여 독립적 종교체제를 갖춤으로 말미암아 금과 같은 국가 자산이 교황청 교회의 모금과 국가의 교황청에 대한 지원이 중지됨으로 과도한 재정 지출이 차단되었다. 그 같은 상황은 국력 신장으로 이어지고 16세기 말부터 시작된 영국의 해외 확장 정책이 가능해진 것이다.

 2) 성경 번역의 영향- 어떤 교만한 성직자가 ‘우리는 하나님의 법이 없어도 교황의 법만 있으면 더 나은 것이다’라고 주장하는 말을 들은 틴데일은 ‘나는 교황과 그의 법을 무시한다. 만일 하나님이 내 생명을 보존시킨다면 머지않아 나는 경작하는 소년이라도 당신보다도 성경을 더 잘 알 수 있게 할  것이다’고 대답했다. 그런 후에 유럽으로 건너가서 신약 성경을 헬라어로부터 영어로 번역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최초의 번역판은 1525년에 출간되었다. 그는 이어서 모세 오경과 요나서를 히브리 원어에서 영어로 번역했다.

이 번역판은 성경원어에서 영어로 번역되어 출간된 최초의 성경이다. 이 번역된 영어성경이 영국으로 유입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모국어로 신약성경을 읽으므로 지금까지의 로마 교황청의 위장된 교리들의 오류를 발견하기 시작했다. 위기의식을 느낀 런던 주교 턴스탈은 모든 성경과 책들을 구매하여 바울성당 앞에서 불사르게 했다. 그가 큰돈을 지불하고 구매한 신약성경의 대금이 역으로 틴데일의 손으로 들어가고 재정난을 겪고 있었던 틴데일에게 단비와 같은 역할을 했다.

이 번역본에서 독자에게 보내는 메시지가 있는데 거기에 왜 성경을 모국어로 번역하는 것이 필요한지 그리고 단순한 눈을 가지고 영적 건강과 영생에 말씀의 성경을 부지런히 읽으라. 회개하고 믿는 사람은 새 생명을 가지게 되었음을 확신하고 하나님을 순종하라고 권하고 있다.   

기독교 전파의 결정적 요인이었던 영어성경은 1611년에 완성된  KJV (King James Version)이었다. KJV의 번역과정에서 틴데일의 신약 영어성경의 90%가 구약의 80%가 그대로 유용되었다는 점은 우리가 쉽게 간과하는 사실이었다. 그것은 KJV 번역에서 틴데일의 영어성경이 유입되었다는 언급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틴데일의 영어성경의 영향력에 대해서 주의 깊게 인지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역사상 최초로 원어에서 영어로 번역된 틴데일의 신약성경과 구약 성경의 일부는 끊임없이 대륙에서 출판되어 바다를 건너 영국으로 유입되었고 이 영어성경은 누구라도 읽을 수 있는 문체와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로마 교황의 의식주의에 눌려서 물질적으로 그리고 영적으로 수탈당하여 피폐해진 영국민에게 영적인 생명력을 불러일으키는 놀라운 진리의 선포였던 것이다.   

 3) 영문학에 끼친 영향- 쿨터에 따르면 “그의 영어에 대한 철저하고 강력한 지식에 의한 성경의 번역은 오늘날의 현대영어에 토대를 만든 것이다. 영어의 힘과 아름다음을 세운 것은 세익스피어가 아니라 윌리엄 틴데일이다. 그는 셰익스피어(1564~1616)보다 두 세대 전에 살았다. 셰익스피어는 하나님의 은혜로 틴데일이 영어성경의 번역을 통해 세운 토대위에서 세워졌다.” 셰익스피어가 전 세계에 미친 문학적 영향력과 영어 자체의 아름다움의 옷을 입힌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너무나도 아쉽게도 그에게 영향을 끼친 영어가 틴데일이 번역한 영어성경임을 주지하거나 인식한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4) 청교도 운동의 탄생- 영국의 종교개혁은 완전히 로마가톨릭의 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했지만 로마 교황권 하에 있지 않았기에 완전한 종교 개혁을 추구하는 청교도 운동이 일어나게 되는 계기가 마련될 수 있었다. 이 운동은 결국 새 대륙으로의 이주로 이어졌고 그것은 새로운 세계 질서와 세계 복음화의 전초기지로서의 미국의 탄생에 결정적 영향을 주었다.

5) 세계 선교에 미친 영향- 영국에서 둥지를 튼 종교개혁 운동은 이어지는 영국의 세계 확장 정책과 함께 기독교의 세계 선교가 가능하게 만든 것이다. 해 질 날이 없는 대영제국의 영향력은 단지 정치 군사적 뿐만 아니라 기독교의 전파와 문화 전반에 걸쳐서 퍼져나갔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영어는 국제어로서의 위상을 가지게 되고 영어성경은 기독교 전파에 있어서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한 것이다. 기독교 전파의 핵심적 요인인 영어성경은 다름 아닌 1611년 제정된 KJV이다. 이미 본 바와 같이 이 KJV의 신약의 90%와 구약의 80%가 틴데일의 영어번역이 그대로 유입되었다는 사실은 비록 간접적이지만 틴데일이 세계선교에 미친 영향이 얼마나 큰가를 짐작케 한다.

<복음인in 들소리>는 하나님의 교회다움을 위해 진력하는 여러분의 후원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동반자로서 여러분과 동역하며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함께 하겠습니다. 샬롬!

후원계좌 : 국민은행 010-9656-3375 (예금주 복음인)

저작권자 © 복음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