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빈민촌에서 밥퍼, 장학사업, 의료지원 등 힘껏 돕는 사진작가 양 철 수

자기만족뿐인 봉사로 가정 깨어지는 아픔…
18년간 필리핀 빈민촌에서 가난한 이들과 함께 살며 나눔 실천

밥퍼, 장학사업, 의약지원, 심장병 어린이 수술 등 힘껏 감당,
“약자의 편에 서서 나를 내어주는 것, 예수님이 보여주신 길”

  

▲ 양철수 사진작가

삶과 죽음의 갈림길, 10월 8일 이대목동병원에서 알렉시스(2세, 여아)는 “1차 수술 후 많이 회복됐다”는 소식에 기뻐했지만 알렉산더(3세, 남아)는 “가망 없다”는 진단을 받았다. 심장병을 고치기 위해 필리핀에서 한 가닥 희망을 안고 찾아온 한국인데, 입술이 파랗다 못해 검은 색을 띠는 알렉산더를 품에 안은 엄마의 마음은 무너졌다.

경남 창원에서 새벽부터 이들 일행을 인솔해 병원을 찾은 양철수 사진작가(67, 창원생명교회 집사)도 눈앞이 캄캄해졌다. 이미 수술 시기를 놓쳐 가망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검사를 강행한 것은 욕심이었을까. 의료진에게 “아이를 얼마나 더 내 품에 안을 수 있겠냐”며 눈물로 범벅된 얼굴로 묻는 아이 엄마를 바라보는 양 작가의 눈가에도 눈물이 고였다.

필리핀 빈민촌 사람들과 함께한 18년의 세월, 언제쯤이면 가난한 사람들의 삶이 나아질지, 그들이 하나님이 부여하신 인간 존엄을 맛보는 날이 과연 올 것인지…. 양 작가는 그날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 가난한 삶에 앵글 맞추다

관광지로 유명한 필리핀이 양 작가를 끌어당긴 것은 맑고 파란 바다도, 천혜의 자연풍광도 아니다. 필리핀 바콜로드 시 빈민촌에서 배고픔에 시달리며 자신들의 삶을 지켜내는 것조차 버거운 사람들의 현장이 18년 전 한국을 떠난 양 작가의 종착지였다.

필리핀 빈민촌 사람들의 가난한 일상을 찍은 사진들을 모아 지난해 ‘양철수 사진집 1, 2권’ <KINGDOM 필리피노의 삶과 희망>, <on the STREET 거리에서>(대장간)를 펴냈다. 사진을 찍기 위해 그들을 찾아간 것이 아니라 그들과 바닥에서 같이 나뒹굴며 자연스럽게 셔터가 눌러졌다고 해야 할까.
 

▲ 머리에 상처 난 아이에게 양철수 작각가 약을 발라주고 있다.

거리에서 구걸하며 자신의 빈손을 응시하는 노인의 쓸쓸한 눈빛, 맨 돌바닥에 누워서 깊이 잠든 엄마와 어린 아들, 직접 기른 담뱃잎을 피우는 노인의 깊은 주름, 바닥에 주저앉아 어디선가 얻은 빵을 허겁지겁 먹는 소녀… 오랜 세월 이어진 가난과의 사투가 벌어지는 곳이다. 그의 사진엔 단지 가난의 비참함만 담긴 것은 아니다. 생계를 돕기 위해 삼삼오오 모여 연필 대신 칼을 들고 조개 까는 어린 소녀들의 해맑은 웃음, 다 헤어진 옷을 걸치고도 친구들과의 놀이가 마냥 즐거운 아이들, 쓰레기더미에 맨발로 서서도 카메라 앞에서 당당한 포즈 등 아이들을 통해 필리핀의 희망을 담았다. 거리에서 만난 필리피노의 초상권은 돈을 주지 않고 3불 정도의 밥 한 끼로 치른다. 3불 가량의 한 끼 값은 성인 하루의 일당이다.

양 작가의 사진작업은 물속에서 시작됐다. 군대에서 스쿠버 다이빙을 배우면서 수중사진을 찍었고, 제대 후 잠수업체에서 줄곧 수상인명구조, 시신 인양 등의 일을 했다. 이후 스쿠버 다이빙 관련 사업을 하면서 봉사단체를 구성해 수상인명구조 일을 병행했는데, 사업보다 봉사에 치중하면서 가정이 깨어지는 아픔을 겪었다.

가정도 지키지 못하면서 남을 위해 봉사하는 것은 가식이요 자기만족의 이기적인 모습이라는 생각에 모든 것을 정리하고 혈혈단신 필리핀으로 떠났다.

목적지는 필리핀 바콜로드 시의 빈민촌 마을. 이곳에서 다시 봉사를 시작했다. 이번에는 멀찍이 서서 도움을 건네는 것이 아닌 삶으로였다. 지금까지 그곳 사람들과 엉켜 살며 일주일에 두 번 밥퍼, 장학사업, 의약 지원 등의 도움을 주고 있다. 심장병 어린이 수술을 다섯 번째 진행했고 내년에도 두 명의 아이가 새 생명 얻기를 희망하며 한국을 찾는다.

“스쿠버 다이버로 필리핀을 다닐 때는 호화리조트 안에만 있고 관광지 중심으로 다니다 보니 몰랐어요. 어느 날 거리를 돌아보는데 리조트 밖은 전혀 다른 세상이었어요.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이 거리에 널려있었어요.”

19살 때 현직경찰을 통해 히로폰 판매책으로 활동하다 12년 동안 옥살이 한 청년은 출소 후에도 동네사람들에게 피해를 준다는 이유로 마을 한가운데 만들어진 철창에서 9년 동안 갇혀 지내고 있었다. 그에게 매달 약과 쌀을 구입해주었고 그가 자유를 얻고 마을 사람들과 어울려 살 수 있도록 도왔다. 한 여성은 어린 시절 의붓아버지로부터 성폭행 당한 후 길거리에 버려져 짐승처럼 쓰레기통을 뒤지며 지내다 또 다른 거리의 사람들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양 작가는 그가 정신병을 앓는 것을 알고 수소문 끝에 부모를 찾아 정신병원에 입원할 수 있도록 했다. 부모의 돌봄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배고파 길거리를 방황하고, 추위와 배고픔을 잊기 위해 본드를 마시며 길바닥에서 잠 자는 모습을 길거리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충격이 컸다. 그동안 나는 무엇을 보며 살았는가, 아니 무엇을 보려 하지 않았는가에 대한 물음이 끝없이 치솟았다. 당장 움직여야 했다.

“필리핀은 400년 가까이 외세의 침략으로 식민지국가로 전락했으며, 1946년 7월 4일 미국 정부를 모태로 민주공화국이 수립됐습니다. 1960~70년대에는 대한민국보다 잘 사는 국가였지만, 위정자들이 부정부패로 부를 축적하고 국민의 생활을 돌보지 않아 40%의 국민들이 하루 한 끼를 걱정하며 생활하고 있습니다.”

필리핀에서 봉사하던 중에 자신에게 영어를 가르쳐 준 교사와 새롭게 가정을 꾸리게 됐다. 한국에서 중고물품을 들여와 판매하며 번 돈으로 필리핀 빈민촌 사람들을 돕는 데 충당했고, 필리핀 사람들의 일상을 찍은 사진을 SNS(페이스북 계정 ‘Chul Soo Yang’)를 통해 알림으로써 자연스럽게 모금이 이뤄졌다.

그렇게 필리핀에서 12년을 살다가 임파선암이 발병해 가족 모두가 귀국, 한국에서 수술하고 완치됐다. 현재는 양 작가의 고향인 경남 창원에 터 잡고 살면서 사단법인 천사보금자리 창원·필리핀 지부를 맡아 필리핀을 오가며 봉사를 계속하고 있다. 필리핀에는 목회자인 처제가 봉사와 나눔에 적극 협력하고 있다.

“넉넉하거나 여유로운 형편이라서가 아니라 나의 마음이 이끄는 대로 필리핀 땅에서 사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가슴아파하고 괴로워하고 분노하며 그들에게도 행복한 내일이 올 것이라는 믿음 하나로 함께해 왔습니다. 그저 한 사람의 구경꾼이 아니라 그들의 가슴에 엉겨있는 가난과 슬픔을 사진으로 대변하려 했고, 밥을 굶는 아이들을 위해, 수술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약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사진을 찍었습니다.”
 

▲ 밥퍼 나눔에서 식사를 기다리는 아이들.

# 가난 속 희망이 꽃 피다

양 작가는 고정적인 수입이 없어 기초생활수급자로 살고 있다. 필리핀에서 고등학교 영어교사였던 아내가 원어민 강사 훈련 받고 영어 방문교사와 가정에서 영어교습소를 운영하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또 필리핀에서 중고품 매장을 계속하며 나눔에 보태고 있다. 넉넉지는 않아도 두 아이와 함께 네 식구가 생활하기는 불편함이 없지만 필리핀 사람들을 돕기 위해 당장 필요한 부분들을 메우다보니 가정의 살림은 수시로 ‘펑크’가 난다.

심장병 어린이 수술을 위해서는 검사 비용만 7백만 원에 수술비가 3천만 원 가량 필요하다. 검사와 수술은 대부분 모금과 NGO, 기업의 후원으로 이뤄지고, 아이와 보호자인 가족의 항공료와 체류비용은 모두 양 작가 가정이 감당한다.

알렉시스와 엄마 이산밸리(34)는 지난 해 6월에 한국에 들어와 양 작가의 집에서 함께 지내며 1차 수술을 받았고 이번에 병원에서 경과가 좋아 11월에 2차 수술 날짜를 잡았다. 알렉산더와 엄마 조이스 안(26)은 수술비 지원할 곳을 찾지 못한 상황에서 한국에 왔다. 검사비부터 모금했지만 필리핀 사람들이 십시일반 모아준 220만원뿐, 시간을 더 지체할 수 없다는 판단에 또 양 작가 가정에서 검사비를 감당하기로 하고 무작정 병원을 찾은 것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수술 불가’, 이미 심장 기능이 약해져 수술할 경우 생명을 잃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아들을 살리기 원하는 엄마의 간절함을 외면할 수 없어 힘들지만 다른 병원에서 재검을 받아볼 계획이라고 했다.

힘겨운 중에도 나눔을 지속할 수 있는 힘은 예수님이 보여주신 행적이었다.

“가난한 자들, 약자의 편에 서서 나를 내어주는 것, 예수님이 보여주신 길이었어요. 예수님이 아니면 이 길을 걸을 수 없었을 겁니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많았지만 양철수 작가는 그렇게 절망과 희망의 사잇길에서 예수님의 뒤를 밟아왔다. 앞으로 필리핀 가난한 아이들을 돕기 위해 현지에 교회와 학교를 건립해 희망의 불씨를 살려갈 수 있기를 소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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