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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크고 작은 교회가 주님의 교회로 숲을 이뤄가야”감신대 왕대일 교수 ‘교회 변혁’의 길 제시 - 이대로 가다가는 ‘박물관’ 된다
양승록 기자  |  dsr123@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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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1호] 승인 2018.11.07  05:3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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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교회든 개척교회든 탈 성전화
해야-교회 존재 양식 달라져야

중세기까지 이어져 온 수도원 운동
되살려야

목사 안수자 모두가 담임자 하려
하지 말고…목회자 중심에서
부교역자를 전문화해야

 

   
▲ 왕대일 교수

“한국교회가 숲을 이루어야 한다. 지금까지는 개체 교회들이 각각 약진하고 경쟁하는 방식으로 생존했지만 이제부터는 나무와 나무가 함께 하는, 큰 나무와 작은 나무가 공생하는, 그러기 위해서는 조림(造林) 방식으로 교회변혁을 설계하고 실행해야 한다.”

서울 서대문구 감리교신학대학교 연구실에서 만난 왕대일 교수(구약학, 64)는 최근 한 세미나에서 한국교회가 나가야 방향을 이렇게 제시했다.

왕대일 교수는 미국의 복음주의교회 형태는 복음 플러스 자본주의가 함께 하는 형태로 발전했는데 이것이 오늘 우리 한국교회에 고스란히 잔재해 있다고 말했다.

●● 성전·교회의 의미 제대로 살려야

오늘날 대형교회 문제가 많지만 사실 근본적으로 들여다보면 소형교회, 개척교회, 중소형 교회 목회자나 지도자의 마인드가 비슷하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주님의 교회로 바로 세워나가기에 힘을 기울이기보다는 전도 많이 해서 교회 커지는 것에 더 연연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얘기했다.

왕대일 교수는 사도행전 7장에서 들었던 스데반의 설교나 이사야 66장의 예언은 각각 자기 시대의 신앙공동체에 쏟아낸, 그 신앙공동체의 존재양식이 변혁되어야 한다는 일갈(一喝)이었다고 말한다.

“그들이 목이 메도록 소리 높여 외친 것은 현실주의에 붙들린 성전보다는 ‘그 날에’ 완성될 성전을 보라는 것입니다. 그 내일의 성전이 있기에 오늘의 성전에 매여 있는 자들을 향해서 그것은 혼합주의의 온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꾸짖었습니다. 무엇을 외쳤는가? 사람이 만든 집보다도 하나님이 지으실 ‘처소’를 외쳤습니다. 이스라엘 신앙공동체가 광야 교회의 유산을, 하나님을 위한 처소라는 유산을 이어가지 않는다면, 그런 공동체가 이 땅에 있어야 될 이유가 없다고 꾸짖었습니다.”

그랬기에 이사야는 성전의 진정한 실체를 종말론적으로 조망하는 방식으로 당시의 성전종교가 거듭나기를 소망했고, 그랬기에 스데반은 그 종말론적 비전에 기대어 아예 “지극히 높으신 이는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아니하신다”고 설파했는데, 실상 오늘의 교회는 성전종교에서 자유로울 수 있겠느냐고 왕대일 교수는 말했다.

스데반이 예루살렘의 교회를 유대성전종교로부터 떨어져나가게 했듯이 오늘의 한국교회는, 그 규모가 대형교회든 개척교회든, 탈(脫)성전화, 탈(脫)성전종교화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교회의 존재양식이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교회가 성전을 짓지만, 그 성전은 성전종교의 성전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 교회는 흩어져야 하고, 각 지역사회나 분산된 각 계층에 세워지는 공동체여야 한다는 설명이다.
 

●● 어떻게 함께 숲을 이룰 수 있을까

그렇다면 교회 변혁을 어떻게 이룰 수 있을까.

서두에서 말한대로 ‘한국교회가 숲을 이뤄야 한다’는 것이 그가 내놓은 해법의 큰 틀이다. 교회가 각자의 경쟁 방식으로 생존해 온 것이 사실이지만 이제부터는 생존을 넘어 숲을 이뤄서 함께 가야 한다는 것이다.

큰 교회 안에 여러 공동체들을 연합체 형태로 두듯이 작은교회도 작은 교회들끼리 연대하여 디아코니아를 공동으로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담임목사 중심의 교회가 현 체제인데, 이를 존중하면서 변혁을 이뤄가야 한다고 왕대일 교수가 제시한 것은 ‘교회 안에 여러 명의 목사들이 공동으로 목회하는 구조’를 갖추자는 것이다.

전도사, 강도사, 목사, 선교사만이 아닌 수도사 등도 같은 교회를 더불어 섬기는 목회생태계를 구축해야 할 것을 강조한다. 신학교를 나와서 목사고시를 패스 했다고 해서 모두가 꼭 담임목사가 되어야 한다고 고집해서도 안 되고, 평생을 한 공동체에서 달란트대로 전문화된 한 파트에서 목회하다가 은퇴하는 트랙도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회사에 들어간 사원들이 모두 다 나중에 그 회사의 대표가 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고 왕 교수는 반문한다.

그렇게 되려면 현재의 부교역자 시스템을 단지, 담임목사를 보좌하는 정도로 만족하지 말고 각자의 파트에서 전문화된 이들이 포진해서 사역할 수 있도록 ‘수평적 구조’로 나아가야 한다고 제시한다.
 

●● 초기 유산 수도원 운동 되살려야

또 루터의 종교개혁 시절 무용화시켰던 ‘수도원(수도사)’ 운동도 부활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기독교 중세기 1500년대까지의 유산 중 소중한 수도원 운동은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헌신한 수도사들이 기도, 노동, 묵상 등 주님과의 사귐에 온전히 함께 하며 평생 살아낸 귀중한 삶인데 가톨릭을 개혁한다면서 이런 유산을 버리는 우를 범했다는 것이다.

“루터 자신도 수도원 운동이 필요하다고 봤습니다. 현재 목회자들에게 맡겨진 상당수의 일은 교회를 세우고 관리하고 행정하고 설교하는 등 분주하다보니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기도하는 삶을 상당히 많이 잃어버렸습니다. 그것을 살려내야 합니다.”

말씀을 말씀 그대로 읽고, 묵상하고, 깨닫고, 기도하며 갖춰갔던 영성의 흐름을 잃어버리고 성경 말씀이 ‘설교의 도구’로서만 사용되고 있는 현실도 문제라고 왕대일 교수는 안타까워했다.

숲을 이루기 위해서는 큰 교회들이 많은 부분을 내려놔야 할 것을 강조했다. 목회자가 이름을 내며 앞세우거나 지분을 챙겨야 한다는 생각이나 권력을 행세하려는 것 등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교회’라는 거대한 숲으로 가는 동행자로 여기며 작은교회를 북돋워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게 해서 ‘교회’라는 신앙공동체 모두가 사이즈에 상관없이 하나님의 지체로서 연대를 강화해 나간다면 작은교회 역시 자긍심을 갖고 자신들의 특징을 살려 나갈 수 있지 않겠냐고 왕대일 교수는 제시했다.

왕 교수는 교회 수가 너무 많고 목사후보생을 배출하는 신학교가 너무 난립되어 있다면서 “한 교회가 한 교회건물을 세우고 짓고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교회가 연대하여 함께 교회를 세우거나 교회건물을 짓고 공유하며 유지하는 형태로 존재방식을 변혁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 변혁하지 않으면 박물관으로 전락할 수도

현재 한국교회는 목회자가 은퇴해서 노후도 책임져 주지 못하는 실정인데, 신학교를 졸업하고 교단이 목사 안수를 줬으면 목회과정과 노후도 책임질 수 있는 틀을 하루빨리 갖춰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교회가 설립 되려면 현재는 대부분의 교단들의 규정에서는 교회 건물이 있어야 하는데, 앞으로는 건물이 없어도 ‘신앙공동체’로 모이는 교회는 크든 작든 인정해줘야 하는 부분도 고려해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현실적으로는 꼭 필요하지만 도입, 실현까지는 먼 이야기처럼 들리는 목회 구조인 것 같다고 하자 왕 교수는 “만약 교회가 변혁되지 않으면 한국교회 200주년이 될 때는 지금보다 더 나빠져 박물관으로 전락해버릴 수도 있다”면서 어렵더라도 “교회가 다함께 한 공동체로서의 모습(숲)으로 나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은준관 교수 등 각 교단의 4명의 교수들이 연합으로 ‘새바람교회’ 목회를 교수직을 수행하면서 했고, 그 뒤를 이어 왕대일 교수를 비롯해 다음세대가 한 적이 있었다. 4명의 교수들은 한 달에 한 번 설교하고, 대표목사로서 행정을 함께 수행하기도 했다. 물론 사례 없이 진행했고, 모범적인 실험적 목회를 했다. 지금도 여전히 후배들이 맡아서 하고 있다.

“그때 현장 목회자들의 애환을 조금이라도 실감했지요. 저희 교수들은 교수라는 직업을 갖고 있었지만 저희 교회 옆에 3천명 모이는 교회가 있었는데, 그때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을 경험하면서 우리 제자들도 고스란히 그런 감정을 느끼겠구나 생각했습니다.”

그의 그런 용감한 지적과 제안은 그가 평생 목회자 후보생을 가르쳐온 것과 더불어 그의 선배인 은준관 교수와 타 교단 교수 등이 실험적으로 설립한 교회에서 10여 년간 설교목사로, 공동대표 목사로 현장에서 사역하면서 느꼈던 안타까운 부분이 배어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왕대일 교수는 오늘날의 한국교회에 만연한 빈익빈 부익부 현상, 각개 전투식 목회 현장을 보면서 많이 안타깝다며, 이를 각 교단마다 심도있게 풀어나가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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