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상훈
한국생명의전화 원장

손끝이 미치지 않는 높은 곳에서 살다가 가을의 끝자락이 되면 땅에 떨어지는 낙엽을 본다. 사람들 마음 밭에 하나둘씩 내라는 낙엽조차 의미 없이 떨어지지 않는다. 외로운 마음에는 다정한 친구가 되어주고, 상처 입은 마음에는 사랑의 시를 읊어준다. 낙엽은 긴 겨울을 지내면서 차가운 대지를 덮어주고, 그 속에서 새봄의 희망을 싹트게 한다.

주변에 떨어지는 낙엽 그 자체는 아무 의미가 없다. 그러나 낙엽을 바라보며 느끼는 경험은 사람마다 다르다. 낙엽을 보며 우리는 허무를 느낄 수 있고, 감사와 희망을 느낄 수도 있다. 그 낙엽에 대한 각 사람의 해석이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가 접하는 이 세계와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행복하게도 혹은 불행하게도 살 수 있는 것 같다.

“조현병으로 종종 환청이 들리는 K양은 살아야 할 의미가 없어 죽고 싶다고 했다. 고시 준비생으로 무기력하고 종종 환청이 들려 공부에 집중이 안 되어 힘들다고 했다. 자신의 정체감을 신앙에서 찾아왔는데, 이제는 교회 설교를 포함해서 사람들이 하는 말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자기 마음을 몰라주는 가족들이 별로 위로가 되지 않아서 힘들고, 인터넷이나 뉴스에 조현병 환자라는 낙인을 찍는 것을 볼 때도 너무 낙심이 된다고 하였다. 약물치료도 받고, 인지치료도 받았지만 큰 변화가 없었다. 그리고 이제는 나아질 수 있는 근거를 찾지 못해 당장 지금 죽어도 이상할 것 같지 않다고 했다.”

K양과의 상담일지 일부, K양은 지금 조현병이란 감옥에 갇혀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자신은 무기력하고 환청도 들리고, 약물치료, 인지치료를 모두 받아도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고 마음 문을 닫아 놓고 있다. K양은 주변 사람들이 도와주어도 변화되지 않을 것이라는 신념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것 같다. K양이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그 굴레에서 한 발짝만 밖으로 나와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다면 어떨까. 그리고 자기 밖에 있는 산과 들, 하늘과 바다를 바라보며 아름다움을 느껴 보았으면 좋겠다.

K양을 도울 수 있는 길은 먼저 의사의 처방대로 약물치료를 하면서 스스로의 의지로 안 되는 것들에 대해 계속 치료를 해야 한다. 그리고 인지치료를 병행해서 꾸준하게 치료받으면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자기의 신앙적인 정체감을 찾기 위해 신앙 상담을 받았으면 한다.

그리고 마지막 한 가지 길은 너무 지나치게 자신의 조현병 증상에만 주의를 기울이기보다는, 다른 것들을 향해 관심을 돌렸으면 좋겠다. 나는 K양이 떨어지는 낙엽에 대해 이런 저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는 것과 자신의 증상에 희생자가 아니라 그 증상에 도전할 수 있는 인간 도전의 힘이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기를 바란다. 이 세상은 내가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필자는 K양을 상담하면서 한국교회의 모습을 바라보게 되었다. 한국교회는 자기 안에 갇혀서 밖으로 한 걸음도 나가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신자들은 한국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한 채 정체감의 혼돈과 회의감에 빠져 있다가 결국 교회를 떠나고 있다. 필자는 한국교회가 싸워야 할 대상은 한 몸인 지체들이 아니라 밖에 있다고 생각한다. 먼저 안에서는 사랑으로 하나 되고, 밖에서는 그 하나 된 힘으로 세상을 이겨내야 한다. 새해에는 한국교회가 세상을 섬기고 보살피며, 생명을 살리는 일에 마음 모아 하나님의 나라를 성큼 앞당기는 성숙한 생명 공동체가 되기를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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