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을 공부할 때
꼭, 조심해야 할 언어는 헬라,
헬라사상, 헬레니즘
사상사의 발전과정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헬라와 그리스가
동의어가 되겠으나 헬라
사상은…

 

1. 사상적인 접근법

1절에서 18절까지 읽어본다. 거급 읽어본다. 무심코, 매우 안정된 마음제세로, 또는 청정한 마음자세로 읽어본다. 모든 개개인들마다 그들이 평소 지니고 있는 소양, 인품, 수양, 수련, 자기 학문의 성격이 있는 사람들은 긴장하기도 할 것이다.

아마 많은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전후좌우의 가닥을 헤아려 문장의 균형을 잡아 보려다가도 힘이 달리는 것을 느끼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이 내용의 가치를 유행에 따라서 가두려 하는 자신감을 가진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먼저 헤아려야 할 예의는 이 기록자의 입장에 서서 이 글을 바라볼 필요가 있겠다. 이 사람은 요한 그룹의 한 사람, 또는 “요한”이라는 이름으로 “예수”를 찾아 나선 사람이다.

그의 이름이 “요한”이다. 요한은 헬라시대에 유대인 사회에 뛰어든 이름이다. “예수”는 히브리 고유의 이름이다. 가까이는 모세의 수제자인 요수아, 여호수아에서 보듯이 히브리인들의 전승 속에서의 이름이다.

그러나 요한복음을 공부할 때 꼭, 조심해야 할 언어는 헬라, 헬라사상, 헬레니즘 사상사의 발전과정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헬라와 그리스가 동의어가 되겠으나 헬라 사상은 아리스토텔레스에서 뛰쳐나간 알렉산드로스에서 출발한다. 알렉산드로스는 마케도니아 왕세자였을 당시 그리스의 뛰어난 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를 가정교사로 삼아 공부했다. 그는 전쟁터에서도 그의 말안장 밑에 스승의 철학책을 두고 짬이 날 때 꺼내서 읽었을 만큼 상당한 수준의 철학도였다는 말이 전해온다.

헬라, 헬라 사상은 마케도니아와 고대 페르시아 간의 전쟁하는 시대까지의 용어이고, 헬레니즘이라면 전기 헬레니즘은 BC 2백년 경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유대교 학자 70인이 모여서 히브리어 성경을 코이네 헬라어로 번역할 때까지다. 그때 유대교 학자들이 번역한 구약성경은 70인 경 또는 셉뚜아진따(septuaginta)를 주로 사용하던 이방기독교 시대(디아스포라시대와 바울 등의 시대)와 카타콤 시대(AD 67~313)까지가 전기 헬레니즘 시대이고 후기 헬레니즘 시대(AD 330~787, 1054) 니케아 7차 공의화나 동·서 로마 결별기까지를 후기로 본다.

그러니까 “요한”이라는 이름으로 복음서를 쓴 사람은 세베데의 아들이 초고를 썼고, 이후 본격 활동은 예루살렘 성전 파괴(AD 70)와 집필 시작은 유대인들이 신흥 예수운동이 자기들의 유대교와는 종자가 다르다고 판단하고 암니아회의(AD 90년)에서 예수를 믿고 따르는 자들을 모두 회당(시네고그)에 쫓아냈을 때부터 AD 100년 전후로 지금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요한복음서가 세상에 나왔을 것으로 이해하면 좋다.

그래서 요한복음 저자는 “요한”이라고 하자는 대개의 합의가 이루어지거나 묵인 아래 우리들은 요한으로 부르고 있다. 장황한 설명을 한 것은 요한복음과 헬레니즘의 관계 때문에 참고로 설명한 것이다.
요한복음 1장 1~18절까지 읽으면 헬라사상적 세계관이 어느 만큼 간여했음을 본다. 특히 헬레니즘을 맹신하는 이들은 1장 1절의 “로고스”라는 어휘에 감격해 매달리는 현실을 무시할 수 없어서 우리는 요한복음 공부 초입에서 이렇게 망설이듯 여러 논리를 펴는 것이다.

헬레니즘의 어느 시기 사상으로 볼까? 이는 마땅히 AD 100년 경 완성된 복음서이니 시대를 지목할 수 있다. 우리는 헬레니즘 전성기이기도 한 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를 쥐락펴락할 때의 동로마식 헬레니즘과 70인경 만들던 시기의 조심스럽고 외경스러운 마음으로 요한복음을 상대하던 시대사상을 구분해야 해석상의 과오를 최소화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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