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 승 준 작가

남자들만 꾸는 악몽이 있다. 제대했던 군대를 다시 들어가는 꿈이다. 소리 지르면서 몸부림치다 깨면 꿈이다. 그게 꿈이란 걸 안 순간 입가에 미소가 돈다. 비로소 안심이다. 군인이 된다는 건 그만큼 막중한 책임감과 부담감을 지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군대를 가는가? 내 나라를 내 힘으로 지키는 것은 국민으로서의 의무 이전에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신성한 소명이다. 성경에 나오는 위인들 중 제 나라를 사랑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모두가 애국자였다. 눈에 보이는 조국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눈에 보이지 않는 천국을 소망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조국을 침략한 적을 맞아 싸우는 일은 살인을 저지르는 게 아니다. 어느 누구도 여호수아를, 기드온을, 다윗을 살인자라고 부르지 않는다.

‘양심적 병역 거부’가 뜨거운 감자다. 이는 종교적 신념이나 양심상의 이유로 병역과 집총(총을 잡는 행위)을 거부하는 행위를 말한다. 주로 여호와의 증인들이 이에 해당한다. 병역법에서는 정당한 사유 없이 입영하지 않으면 3년 이하 징역형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헌법재판소는 이미 4차례에 걸쳐 합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그런데 지난해 헌법재판소는 단서 조항을 달아 대체복무제를 병역의 종류로 규정하지 않은 것은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다고 결정했다. 이에 따라 대법원은 현역병 입영을 거부해 기소된 사람에게 무죄 취지 판결을 내렸다. 국방부는 대체복무제를 도입할 예정이라고 한다. 양심적으로 군대에 가지 않아도 처벌받지 않는 길이 열린 셈이다. 젊은이들이 군대에 가지 않으려고 여호와의 증인 신자가 되는 걸 막을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제 나라 군대를 가지 않으려는 청년들이 많아지고, 정부에서 인기몰이를 위해 이를 합법화한다면 어떻게 튼튼한 자주국방을 이룰 수 있겠는가?

군대에 가지 않으려는 젊은이, 이런 아들을 두둔하는 부모, 어떻게 하든 복무 기간이 짧고 좀 더 편한 곳에서 군 생활을 하려고 애쓰는 사람들, 이들 중에 기독교인들은 없을까?

한강변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에는 윌리엄 해밀턴 쇼, 한국 이름 서위렴 대위가 잠들어 있다. 그의 아버지 윌리엄 얼 쇼는 미국 감리회 선교사로 1921년에 내한해 평양 광성학교 교사로 봉직했고, 만주와 해주에서 교육과 전도 사역에 몰두했다. 1922년 평양에서 태어난 쇼 대위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입대해 미 해군 중위로 전역했다. 그는 진해 해군사관학교에서 생도들을 가르치는 등 초창기 해군 건설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이후 목회자의 딸과 결혼한 그는 가족을 데리고 미국으로 건너가 하버드대학에서 박사 학위 과정을 밟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한국에서 전쟁이 발발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는 이미 군 복무를 마치고 결혼까지 한 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전에 참전하기 위해 미 해군 대위로 다시 자원입대를 하게 된다. 이 무렵 부모님께 보낸 편지에는 그의 애틋한 심정이 잘 담겨져 있다.

“지금 한국 국민들이 전쟁 속에 고통당하고 있는데, 이를 먼저 돕지 않고 전쟁이 끝난 다음 평화가 왔을 때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제 양심이 도저히 허락하지 않습니다.”

6.25전쟁 발발 이후 위기에 몰려 있던 한국군이 비로소 승기를 잡게 된 것은 연합군의 인천상륙작전 덕분이었다. 맥아더 장군을 도와 작전 참모로 전투에 임했던 쇼 대위는 작전 성공 후 곧바로 미 해병대에 자원하여 서울탈환작전에 참가한다. 9월 22일 아침, 쇼 대위는 동료들과 함께 은평구 녹번리 인근에서 작전을 수행하다가 공산군 매복조에 저격당하고 말았다. 서울 탈환을 일주일 앞두고 장렬하게 산화한 쇼 대위는 양화진 묘지에 안장되었다.

만약 병역 의무를 마친 내 아들이 다른 나라 전쟁에 나가기 위해 다시 입대한다고 하면 나는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윌리엄 해밀턴 쇼의 묘비에는 이와 같은 말씀이 새겨져 있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요한복음 15장 1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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