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절, 그때 우리들 교회는 용감했었다. 타종교나 미신자들과도 한 몸처럼 오로지 잃어버린 나라 찾기에 생명과 재산을 내던졌었다.

오늘도 3.1절 그때처럼 암울하고 답답한 일들이 많다. 그저 살고자 하니 목숨을 내던지고 예수 다시 배우고 싶다. 그때를 떠올리며 몇가지 생각을 적어본다.
 

첫째, 교회의 정치행위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가 새 대표를 선출했다. 대표회장이 정치력이 있는 분이라 혹시 이 단체가 정치세력화 하면 어찌하는가, 하는 걱정이 있다.

정·교 분리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교회 소속 신자들이 정치 하고, 사회운동을 할 수는 있으나 “교회”는 아껴두어야 한다. 이것이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불문률이리기도 하다. 미국의 남북전쟁 때도 교회가 통째로 동원된 일이 없었다.

왜냐하면 프로테스탄트 교회는 교회 자체가 교회 정부(church government)이기 때문이다. 교회는 독자적인 정부기능을 갖는다. 교회가 성장하고 깨어있으면 교회 이름으로 정부정책 대안을 제시하고, 비판하고, 감독도 할 수 있다.

교회는 그래서 하나님의 지상나라인 것이다. 한국교회는 교회노릇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 또 정치력을 발휘해 정부를 감시 감독하며 정부의 윤리성도 높여주기 위한 일종의 “복수정부” 같은 역할로 도움을 주면 된다.

교계 연합단체는 정치적인 정치기술이 아닌 교회 연합과 통합정신을 이끌어내서 한국교회의 수준을 높이는 데 수고를 해 주면 좋겠다.

현재 정부는 윤리성이 빈약하고, 곳곳에 아마추어 냄새를 풍기고, 경제나 정치를 실험실이나 연습장 연습용으로 가볍게 여긴다. 더 많은 말을 할 수 있으나 말로써가 아니라 한국교회 신자들은 관용과 아량의 힘을 기르고, 정권은 편 가르기에 몰두해도 교회는 인류 모두의 축복을 일구어내야 하기 때문에 너그러운 아량을 가지고 연민하는 것이면 된다. 어느 특정단체만이 아니라 모든 연합기관이 오늘처럼 불안한 때에 바람직한 수고를 해야 한다. 고질적인 분파나 분열에 바쁜 한국교회의 기질을 바꾸어내는 데 서로 노력해야 할 것이다.

또 정치를 할 사람들은 담임하고 있는 교회도 사임하고, 목사직까지 반납하고 나가서 정치를 해야 한다. 교단이나 교회 깃발 들고 나가서 정치판을 만드는 일은 삼가, 또 삼가야 한다.
 

둘째, 오늘 그리스도인이 할 일

신자의 모범을 이루는 일이다. 예수의 십자가 다섯 개 흔적을 내 몸에 이루는 일이다. 성 프란시스가 그토록 소원했던 십자가의 다섯 개 상처! 예수님을 체휼하는 신앙이다.

다시 또 말하지만 머지않아 대한민국은 북한의 공산당들과 일상에서 만나는 삶으로 나가게 되어 있다. 이전에는 반공, 나 공산당 싫어요만으로 가능했으나 이제는 부득이 문이 열리게 될 것이다.

며칠 후 트럼프와 김정은이 베트남 하노이 회담 결과에 따라서 울고 웃을 일이 아니다. 우리는 그 요란한 북한의 방사정포나 지대공 핵미사일 등에 놀라지 말자. 죽고 사는 것은 본디 하나님 손 안에 있는 것이다.

우리가 백여 년 동안 배운 그리스도인의 생명법을 총동원해 우리도 살고 우리 주변의 비 그리스도인들도 감동시킬 수 있는 묘약은 십자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셨던 예수를 아는 믿음이다.

진수를 드러내자.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 영원히 죽지 않으리라 하신 말씀을 붙잡고 우리 믿음의 심연 깊은 곳에서 주님을 먼저 만나는 일이다.

더 쉽게 말하면 삼위일체 하나님, 그 하나님의 성령께서 내 안에 계심으로 우리는 이미 삼위일체 그 보좌 안에 있는 몸이다. 성도의 존귀는 하나님 보좌의 존귀이다.

두려워 할 일 아니다. 공산당 골수, 북한 공산당 70년 수명을 가진 그들의 노련한 힘도 천년의 역량을 최소한 물려받은 우리 성도들을 당해낼 수 없다. 우리는 그들을 설득하고 또 감동시킬 수 있다.

그들은 공산당만을 사랑한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교회는 물론 교회를 파괴하려드는 세력들까지 품어 감동시킬 능력을 예수께로부터 배웠다. 우리를 따르지 않은 자들을 위한 넉넉한 분량의 피, 예수 십자가의 은혜를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마음껏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북한이 열리고, 그들이 핵무기 자랑을 할 수도 있고, 우리가 철석같이 믿었던 유엔군 미군이 순차적으로 언젠가는 철수한다 해도 그것이 두려움이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북한 김정은 세력보다 중국을 더 경계해야 하고, 일본 또한 쉬운 상대로 보지 않아야 한다. 우리는 그들보다 더 잘 준비된 예수의 사람들이 있다.
 

셋째, 3.1운동 100주년 기념 묵상

단단히 준비해야 한다 부디 모세의 율법과 메시아 예수의 복음을 구분해 “만유 사랑”, 편 가르기 사랑이 아닌 내 자식 내 교회가 더 사랑스러운 수준에서 벗어나야 한다. 한국교회가 이슬람 문제 다루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곧, 언젠가는 머지않은 어느 날 골수 공산당 출신 북한 사람과 부딪치며 살아가게 될 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를 생각해본다.

예수의 복음은 대상이 따로 없다. 나를 반대하지 않는 사람은 다 나를 위한 사람이다. 함께 살아가기 훈련해야 한다. 너그러운 마음을 준비해야 한다. 자기 우월감에 취해서 예수를 십자가에 매달아 죽여버린 그 당시 유대인들.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다고 했고 그때 예수의 손과 발에 철못을 박던 유대인들을 곰곰히 생각하면서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은 편견과 아집의 함정에 빠지지 않아야 한다.
지금 북한은 그들의 외교력과 거짓된 술수까지 총동원해 도널드 트럼프의 목을 물고 있다. 도사견의 용맹으로. 오는 28일 늦은 시간에 발표문이 있겠으나 한국교회는 그것과 관계없이 나라와 교회 지키기 연속기도에 들어가야 한다. 설마, 하지 말자. 거듭 말한다. 설마는 벌써 늦었다. 자신감이 있고 자기 관리가 잘 된 사람은 미신 같은 “설마”에 자기 목숨을 거는 도박을 하지 않는다.

지금 우리에게는 기도의 시간이 조금은 모자란다. 한국교회의 준비가 약간 모자란다. 그래서 우리의 발은 동동, 심장은 쾅쾅, 안타까운 마음이다. “…아버지여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이 내게서 비켜갔으면 좋겠나이다” 하시던 때의 예수님 심정 같다면 참람한 것일까.

가슴이 탄다. 혀가 갈라지는 듯 마른 침 삼켜가며 기도하는 수밖에 없다. 기도 외에는, 진실로 진실로 기도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우리에게 이제는 십자가뿐이다. 우리들의 예수께서 갈릴리와 예루살렘 오가시며 복음 전하시다가 서둘러 십자가를 선택하셨다.

다른 길이 없어서였을 것이다. 오늘 한국교회도 다른 길이 없다. 십자가 세례를 통해서 죽어도(죽더라도) 다시 사는 법 익히고, 어떤 경우에도 비굴하지 않을 믿음을 넉넉하게 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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