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틴 루터 종교개혁은 혁명이었소. ‘혁명’을 순진하게 리모델링 정도면 되겠지, 하면서 덤벼들었다가 가톨릭과 ‘30년 전쟁’(1618~1648)을 치르고 나니까, 아뿔싸! 유럽 전체가 전쟁의 아수라장이 되었다. 개혁, 절대왕정, 내 국가 세우기, 민족, 자유, 이성, 신비, 그리고 길 잃은 유럽의 가톨릭, 가톨릭보다 오히려 프로테스탄트가 갈 바를 잃었다. 예수가 주신 역사의 리더로서의 “지휘봉”을 잃었다.

길 잃은 유럽교회 주변에서 칼 마르크스가 일어나 예수가 못다 한 인류 구원은 내가 할 수 있다고 했던 것이 유럽의 사회주의, 결국은 러시아 볼셰비키 공산당 혁명이었다. 19세기 유럽의 타락한 기독교가 공산당을 역사 위에 불러냈다. 그러므로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라. 십자가의 예수로 하자. 한국교회가 아무리 용쓴다고 북한 공산당 이기기가 쉽지 않다. 북한 공산당은 “붉은 왕조” 이다. 붉다는 것은 빨갱이, 곧 공산당을 말하고, 왕조는 조선왕조의 근거였던 “왕권신수설”인데 봉건왕조나 고대 사회에서 있었던 왕조이다. 북한은 단순한 공산정권이 아니다. 왕조의 전승을 이어받아서 북한 주민들에게 절대복종, 자발적 복종의 동의를 얻어낸 상당히 난해한 세력이다.

예수의 십자가, 십자가를 통해서 태어난 그리스도인 집단만이 당해낼 수 있다. 카타콤 시대처럼 말이다. 정석대로 해야 한다. 적당히는 안 된다.

구약 신명기 11장에 보면 “너의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다 너희에게 준다” 했고, 여호수아 1장에도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땅은 다 너희 것”이라는 말씀이 있다. 이 말씀은 우리의 구체적 행동을 말한다. 발바닥은 우리의 이력서이다. 우리는 피땀 흘리고, 죽기까지 예수와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예수만큼 가난한 삶으로 우리와 마주하는 이들과 나누다보니 내 것이 따로 없는 삶으로 생활방식을 만들어가야 한다.

교회가 먼저 진실한 모습을 보여야 교회를 믿는다. 교회 신자가 1천만 명인데 지금 우리 국민들 가슴에 쌓인 근심, 또 그것이 원한으로 바뀐 모습을 보았는가. 이제 동학혁명 때 희생자 보상, 또는 배상을 하라지 않던가. 이게 모두 우리 국민 가슴에 쌓인 원과 한의 무게다. 교회는 지금 무엇을 먼저 해야 하는지 발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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