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위에 꽁꽁 둘러 싸매고 다니던 게 얼마 전인데 어느덧 훈훈한 기운이 돈다. 계절의 변화를 경험할 때마다 하나님의 섭리를 쉼 없이 따라가는 자연에 대한 경이와 인간의 연약함을 동시에 마주보게 된다.

부활절을 앞두고 예수께서 성도의 길로 제시하신 ‘자기 부인’을 묵상하는 시간을 갖고 있다. 다양한 신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교회들의 현실을 살피면서 드는 생각은 ‘자기 부인’은 너무도 어렵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되는 길이라는 것도 보게 된다. 이미 예수께서 끝끝내 이뤄내심으로 가능성을 여셨고, 그것만이 인류 구원의 길임을 제시하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자기 부인’을 전제한다.

하지만 과연 교회와 성도들의 삶에서 ‘자기 부인’은 얼마나 강조되고 있으며, 그것에 다가서려는 몸짓은 또 얼마나 진실하게 이뤄지고 있을까. 그리 긍정적인 대답을 내놓을 수가 없다. 복음의 핵심을 가르치고 함께 훈련해야 할 교회에서도 사용하는 호칭과 단어만 조금 다를 뿐 세상의 방식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는 지적이 높다.

명성교회의 세습 문제가 정기총회에서 불법인 것을 분명히 하고 바로잡을 것을 주문했음에도 불구하고 시간만 흘려보내고 있다. 한국교회를 대표한다는 연합기관이 아무렇지 않게 개인의 정치성향을 주장하는 도구로 활용되고 있는데도 내부에서 견제하는 움직임이 없다. 죽음을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고 찬양하는 자리에도 함께할 수 없어 ‘부활절 연합예배’가 서너 곳에서 드려질 예정이다.

이런 현실을 보며 ‘자기 부인’에 대한 한 성도의 말은 더욱 크게 남는다. ‘개인의 자기 부인, 교회의 자기 부인, 사회의 자기 부인, 나라의 자기부인…’, 그럼 결국 구원은 이뤄지는 것이 아니겠냐는 이야기다. 그래서 ‘자기 부인’은 예수님이 제시하신 탁월한 인류 구원의 길이라는 이야기.

‘자기 부인’, 당장 따라갈 수는 없어도 그것이 옳다고 믿고 나아가려는 움직임이 곳곳에 움트는 이 봄이 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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