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로펜의 아시아(AD 610~1625) 징기스칸 제국_ 3

차가다이가 뛰어 들어온다. 예수이가 징기스의 뜻을 담은 상자를 열었다.
그 순간, 징기스가 눈을 뜬다. 예수이와 눈을 맞춘 후 징기스가 고개를 끄덕끄덕 그의 턱이 미세하게 움직인다. 예수이가 상자에서 꺼낸 석판에는 ‘우구데이’라고 기록돼 있었다.

▲ 몽골군의 전투 모습

대칸을 눕혀놓은 큰 침상이 평균치보다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이를 안타까이 지켜보는 집사 한 사람 몽쿠가 집사장 젬부에게 조심스럽게 속삭인다.

“집사장 어른, 저거 보세요. 대칸의 침상이 마룻바닥을 스치고 있네요.”

“그래, 그렇구나….”

집사장 젬부도 다 알고 있었다. 사실은 벌써 사흘째 대칸 징기스의 목숨은 하늘과 땅을 널뛰기하듯이 생사를 넘나들고 있었다. 네 아들도 이틀 밤을 꼬박 지새운 뒤로는 긴장감이 풀리고 있었다. 징기스의 아내 예수이만 꼿꼿한 몸자세가 흐트러지지 않았다. 징기스의 본처 보르테가 살아있을 때부터 대칸의 곁을 지키는 여인이다.

징기스가 소리친다. 보르테…, 보르테…. 두 손을 들썩이면서 보르테를 부르고 있었다.

“집사장님, 저기!”

몽쿠가 손가락으로 징기스칸의 침상을 가리킨다. 침상이 바닥에서 한 뼘 이상 올라가 있었다.

대칸의 병세가 위기를 넘기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목숨이 위태로운 상태가 되면 몸이 무거워지는 것인가. 우스개라 할지 모르나 집사장 젬부는 징기스칸의 생사를 오가는 지난 3일 동안에 분명히 보았다. 산 자의 몸무게와 죽은 자가 다를까. 그는 대칸의 침상이 방바닥에서 한 뼘쯤 떠오르는 것에 안도했다. 내가 언제 그랬더냐는 듯이 병상을 치고 일어날 수도 있었다.

징기스칸의 사람들은 전부터 징기스의 건강에 대해서는 모두가 인정해온 터였다. 징기스는 전쟁터에서 일생을 보냈으면서도 금번 서하 공격전 중에 삼복의 열병에 쓰러지기 전에는 단 한 번도 피곤하거나 무리한 전투과정을 거치면서도 자리에 누워본 일이 없었다.

기억도 생생한 1203년 북방 초원의 최강자인 케레이트 옹칸 토그릴과 싸우다가 패한 일이 있었다. 징기스는 너무 분한 나머지 눈보라치는 몽골의 겨울 벌판에서 천막도 없이 밤을 지새웠을 때에도 그의 몸은 거뜬했었다.

징기스는 키가 크고 단단한 체격을 가졌다. 전해오는 여러 기록들은 대개가 일치했는데, 인상이 좋고 몸이 크며 이마가 넓고 수염이 긴 평온할 때를 기준했을 때는 천하를 호령하는 무장과 달리 안온한 풍모였었다.

다시, 징기스가 더 큰 목소리로 보르테를 부른다. 잠시 너부러져 쉬고 있던 아들들이 벌떡 일어날 만큼이었다. 주치가 징기스의 곁으로 왔다.

“아버지! 저예요. 제가 여기 있어요.”

주치가 징기스의 곁으로 다가와서 아버지의 두 손을 모아 쥔다. 징기스가 눈을 뜨고 주치를 한동안 바라본다.

“그래, 너로구나. 네 어머니를 만났다. 너를 잘 지켜주라 하더구나.”

징기스가 주치의 손을 당겨 잡고 그의 손목에 힘을 준다. 주치는 아버지 징기스와 눈을 맞춘다. 징기스는 고개만 끄덕이며 더는 말하지 않았다. 말을 할 기운이 없을까. 그보다는 둘째 차가다이, 셋째 우구데이, 막내 툴루이가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는데 무슨 말을 하는가.

그러나 징기스는 여덟 살에 혼약을 맺고, 혼인 후 평생을 살다가 사별한 보르테를 잊을 수가 없었다. 보르테의 첫아들이 주치인데 후계를 망설일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징기스의 사랑하는 아내 보르테는 메르키트족 출신이다. 메르키트족과는 징기스의 선대에도 시비가 컸던 종족간의 불화가 있어온 터였다. 결혼 초에 메르키트족의 침공을 받은 징기스의 가솔들이 피신하는 과정에서 보르테가 늙은이들을 먼저 피난시키려다가 정작 자기가 탈 말이 없음을 뒤늦게 발견했다.

꼼짝없이 메르키트족에게 잡혀간 보르테는 남의 집 첩살이를 하는 수모를 당하다가 징기스의 구출작전에 의해 찾아왔다. 그때, 보르테는 임신해 있었다. 임신과 출산 과정을 생각할 때 보르테가 낳은 첫아들 주치는 메르키트족 씨앗이라고 징기스도 인정했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사랑하는 아내, 정실이요 첫 부인인 보르테가 낳은 아들을 기꺼이 자신의 첫아들로 인정해왔다.

보르테가 은원관계에 있는 메르키트의 자식을 낳았고, 이름 없는 군졸의 첩 노릇까지 했던 아내 보르테이기는 하지만 징기스는 평생 동안 그녀를 존중했다. 보르테 말고도 징기스에게는 4명의 황후들이 있었으나 보르테는 제1 황후의 위엄을 지키면서 가문은 물론 몽골족이 대제국이 된 후에도 제1궁인 보르테가 전쟁터에 나간 사내들을 제외한 제국의 후방 지휘부를 책임졌었다. 전투의 결정적 순간에도 징기스칸은 보르테의 충고나 전략을 기꺼이 받아들여 왔다.

툴루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밖으로 나갔다. 그는 성깔을 부리고 있었다. 징기스가 주치의 손을 계속 붙잡고 있는 것을 부자간에 묵시적 언약을 주고받은 것일까 하는 듯했다.

“주치는 안 돼, 저 자식은 황금가문의 씨가 아니야. 도무지 형들은 이해할 수 없어요. 지금 무엇들을 하는 거야.”

툴루이가 서슬 퍼런 모습으로 고함을 지르자 우구데이와 차가다이가 뛰쳐나와서 막내 툴루이의 입을 틀어막으려 들었다.

“형들도 정신 차려, 아버지는 아버지고 우리는 우리란 말이야.”

두 사람 형들이 툴루이를 달래지 못했다. 주치가 뛰어와서 우구데이를 붙잡는다.

“아우야, 아버지가 위독해 생사를 다투고 있는데 자식들이 뭐하는 거냐. 나는 아니다. 나는 어려서부터 다 알아. 나와 너희들의 어머니가 배앓이를 해서 우리를 낳을 때 나도 너희와 같은 어머니를 배 아프게 하면서 세상에 나온 것은 사실이잖아. 이놈들아, 그리고 우리 아버지, 징기스칸이 어떻게 우리들 네 놈의 아비만 되느냐? 아버지의 그 무거운 짐을 형제들이 잘 이어갈 준비를 하고, 아버지 세상에 계시는 동안에 아버지의 덕망, 그 용맹, 또 차별 없는 인간미, 우리가 지금까지 정복한 나라만 해도 50개가 넘는다. 저 많은 나라들을 이끌어갈 창조적 지도력이 없으면 대칸의 후계자가 되는 그게 바로 불행인 거다.”

주치의 말에 세 사람 모두 말이 없었다. 수부타이가 주치를 불렀다. 수부타이는 아들들이 자기 역할을 하지 못한다고 나무랐다. 그렇다고 주치를 두둔할 수도 없다. 현재 주치에 대한 징기스의 호감과 연민을 잘 알고 있기에 그렇다. 수부타이 자신도 주치를 후계로 징기스에게 제안한 일이 있기는 하지만 그게 쉽지 않다. 한 사람이 감당하기에는 제국이 너무 크다. 이 제국을 통치할 수 있는 사람은 징기스칸뿐이다. 아닌 경우는 네 명의 자식들이 서로 욕심내는 날이면 징기스칸은 불행한 역사의 죄인이 되고 말 것이다. 수부타이가 끼어들어서 될 일이 아니었다.

저녁때가 되자 징기스의 병세가 다시 위기를 맞이했다. 침상이 방바닥에 거의 붙어있었다. 네 아들 중에 툴루이가 소리쳤다.

“아버지, 제게 주신 김에 아버지처럼 도량이 넓은 놈으로 낳아주시지 왜 저는 마음이 옹졸합니까. 아버지 저는 성품이 잔인해서 제국을 통솔하기에는 적격이 아니라고 하셨지요. 아버지 말씀이 옳아요. 아버지 좀 더 1년만 더 평소처럼 가르쳐 주시면 다시 배울 게요. 아버지….”

툴루이는 징기스칸의 잔인한 성품과 관대한 성품의 양면성을 자기가 함께 갖추지 못했음을 알고 있었다. 영웅은 바로 이 두 개의 상반된 성품을 동시에 가질 때 성립된다. 징기스칸의 친화력은 다른 사람에 대한 아량이나 포용력과 그 개인의 서민적인 생활에서 잘 드러난다. 징기스칸이 드넓은 제국을 통치하면서도 지도력을 지속적으로 유지한 것은 그는 그 많은 정복의 땅만큼이나 넓고 부드러운 그의 마음자세에 있었다고 전해온다.

징기스는 그의 기마군을 교육하면서도 항상 넓은 아량을 가질 것을 강조했다. “너희들의 마음이 어느 만큼 넓으냐에 따라서 너희 전투마가 얼마나 멀리 달릴 수 있는지가 결정된다”고 늘 말했다.

징기스는 그의 경쟁자이기도 했던 케레이트의 옹칸이 왕위에서 쫓겨나는 수모를 당했을 때 떠돌이가 되어 쫓기는 옹칸을 맞이해 신변을 보호해주고, 군사를 직접 몰고가서 반란군을 진압한 후 옹칸에게 다시 왕좌 찾아준 일이 있었다. 그때 징기스가 자기 참모에게 “남을 해치는 마음은 없애되 남을 해치는 자는 반드시 막아야 한다”고 했던 말이 역사 위에 떠돌고 있다.

징기스의 아량 중에 그의 친화력의 백미는 그가 대칸 곧, 대왕의 신분이면서 전쟁을 수행하는 경우는 더욱 더 부하들을 챙겼다는 것이다. 호레즘을 정복한 뒤, 1222년 경 징기스는 힌두쿠시 산맥에 그의 군대와 더불어 머물 때였다. 어느 순례객과 대화 중에 “나는 고비사막 북쪽 황량한 몽골 야생지에서 태어났고, 늘 꾸미기를 싫어하여 단순한 생활을 좋아했고, 옷도 소치기나 말치기와 같은 누더기에 만족했지요. 음식을 먹어도 목동들과 같이 먹고 하급 전사들과 같이 생활해왔어요. 전투가 벌어지면 늘 맨 앞에 서서 적들과 싸웠고, 나는 백성들을 갓 태어난 내 아들들처럼 돌보고 병사들을 내 형제들처럼 아꼈죠. 전쟁이 끝나면 백성과 군사들을 모아 함께 먹고 마십니다. 지금 나는 대 제국의 지배자가 되었다는 말을 듣고 있지만 사치를 멀리하고 소박하게 살아가고 있지요.” 이는 징기스가 남긴 일화의 기록 중 한 부분이다.

징기스칸의 특별한 점은 전쟁 중에는 장군, 장수, 사병, 심지어 노무병들까지도 그와 한 가족처럼 가까이 지낸다. 일단 전쟁이 끝나면 충분한 휴식과 보상도 잊지 않는다.

“아버지, 일어나세요. 서하가 완전히 굴복했나이다. 서하에 대칸의 깃발을 꽂았나이다. 서하의 이현을 아버지 앞에 무릎 꿇리기 위해 압송해오고 있습니다.”

주치가 흥분한 목소리로 외쳤다. 징기스의 숨이 끊어질지도 모르는 한순간, 또 순간의 위급함을 느끼면서 소리쳤다. 징기스가 눈을 뜨려고 애를 쓴다. 천하의 징기스칸이 눈 뚜껑이 무거워서 애를 쓰고 있었다. 미간을 찡그리기도 하다가 머리를 약간 흔들어보기도 했다. 한동안 그러다가 더는 애쓰지 않고 입가에 미소만 남겨두었다.

예수이가 징기스칸 옆에서 일어선다. 차가다이가 보이지 않는다.

“둘째는 어디 나갔소?”

징기스칸의 아내 제5 황후 예수이가 근엄한 목소리로 주변을 다시 살핀다. 수부타이가 예수이에게 조그마한 상자를 넘겼다. 이는 징기스칸이 선택한 후계자의 이름이 들어있는 문서상자다. 네 아들과 장군들이 합의해 결정하면 그에 따르되 내 목숨이 다하는 시간이 오면 이를 공개해도 좋다는 징기스의 명령이었다. 차가다이가 뛰어 들어온다. 예수이가 징기스의 뜻을 담은 상자를 열었다.

그 순간, 징기스가 눈을 뜬다. 예수이와 눈을 맞춘 후 징기스가 고개를 끄덕끄덕 그의 턱이 미세하게 움직인다.

예수이가 상자에서 꺼낸 석판에는 ‘우구데이’라고 기록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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