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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가 예수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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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8호] 승인 2019.05.14  17:3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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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테스탄트 기독교의 교리적 맹점이 있다. “믿습니다”의 확대가 마치 예수의 경지에 도달이라도 된 듯이 착각하는 부분이다. 또 “믿고 천당”이라는 전도문에서 볼 수 있듯이 한 순간 기적처럼 천당과 지옥이 바뀌기라도 한 것인 양 오만스러운 신자의 모습에서 당황하게 된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신자를 “용서 받은 죄인”이라고 표현하여 신자가 신앙의 내면 성장 과정을 설명하려 든다. 그런데 여기에 또 문제가 있다. 단계적 신앙을 말하려 들다가는 “믿음으로 구원받지 행위로 구원받는 것 아니다”면서 목덜미를 잡으려 한다.

바로 여기에 “언어의 한계”가 있다. “언어”라는 방법은 도무지 진리를 표현하기에 매우 불편한 도구라는 결론이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인간이 동물과 다른 부분이 자기 생각을 언어로 표현할 수 있고, 또 그 언어로 상대의 언어와 교감하고 마음 속 뜻을 전달하는 데 있기는 하다.

불완전하기는 해도 기독교가 말하는 “믿음” 또는 “믿습니다”에는 일상어(세속어)와 계시어(가치 언어)의 차이로 의미를 분류하기도 한다. 특히 로마서 3장에 등장하는 “믿음”이라는 동사, 형용사, 부사, 명사형들의 언어는 대개가 “계시어”이다. 이때 계시어라는 의미는 예수의 죽으심의 은혜 또는 속량들을 표현하는 믿음이라는 표현법은 세속 속에서 내가 너를 믿는다, 너의 행동의 윤리적 상태를 믿는다에서 사용하는 언어가 아니고, 기독교 고유의 도그마를 해설하면서 사용하는 언어로서 계시어가 로마서 3장 등에서 나타난 바울의 믿음에 대한 표현법이기도 한다.

단순히 신뢰하는 행위가 믿음이지만 바울 선생의 교리언어는 예수께서 나를 대신하여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서 지금 현재 내 안에 살고 계시는 현재 완료상태를 아주 쉬운 표현으로 믿습니다 논법으로 처리한다.

그러니 이 모든 표현법에 주석을 달 수도 없으니 어찌하는가? 단칼로, 믿습니다가 구원이라 하면서도 그게 표현의 완전일 수도 없으니 믿습니다로 내가 당장 에수라도 된 것인 양 설치는 것을 우선 삼가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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