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로펜의 아시아(AD 610~1625) 징기스칸 제국_ 4

“너희가 집정관 이야기를 꺼내니까 내 마음이 홀가분하다. 서로가 권력 욕심이 없다는 뜻 아니겠느냐. 그러나 세상이 어디 그러느냐. 너희들 넷이야 서로 양보하고 존중할 마음이 넉넉하지. 그러나 너희 자식과 손자의 때로 이어지면 우애 넘치는 가정의 신의를 장담할 수 없는 거다.”

▲ 영화 징기스칸의 한 장면

징기스칸은 온 힘을 다해 두 손으로 허공을 휘젓는다. 예수이가 평소 징기스의 습관을 잘 알고 있기에 측근들에게 게르의 전면을 모두 열어젖히도록 명령했다.

“대 칸의 명이시다. 게르를 모두 활짝 열어라!”

징기스의 머리 부분만 가리어진 채 게르는 활짝 열렸다. 주변의 군사령관들은 물론 제국의 상층부 인물들이 징기스를 중심하여 빙 둘러서는 형국이었다. 큰아들 주치가 큰소리로 징기스를 불렀다. 아버지가 자기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듣는다는 절박한 마음이었다.

“아버지! 이 못난 자식이 장자로 태어났으나 오늘 이 시간부터는 세 동생들을 아버지 모시듯이 정성을 다하고, 아버지께 세계 제국을 반드시 이루어 바치겠나이다.”

주치의 우렁찬 선언에 좌중은 찬물을 끼얹듯 조용하고, 징기스가 실눈을 뜨고 주치를 바라본다. 다시 미소 지으며 오른손가락을 들썩거린다. 주치를 가까이 부르는 표시였다. 예수이가 주치의 어깨를 붙들고 징기스에게로 다가간다.

“아버지!”

주치가 징기스의 무릎 아래 엎드려 아버지를 부르자 다른 아들들도 무릎을 꿇고 아버지 징기스를 크게 부른다.

징기스가 안간힘을 쓴다. 그의 얼굴이 붉게 물들고 눈을 크게 더 부릅뜬다. 수부타이가 징기스의 우측으로 와서 서고, 장군들이 좌우로 도열한다.

주변이 웅성거린다. 수부타이가 외친다.

“서하의 이 현을 잡아 대령했나이다. 대 칸에게 한 약속을 배반하고 오히려 도발한 자의 결말을 어떻게 처리할지 대 칸의 하명을 기다리나이다.”

그때, 깜짝 놀랄만한 일이 일어났다. 징기스칸이 상체를 일으킨다. 이틀동안 사경을 헤매던 그가, 자식들과의 단 한마디 대화를 나누지 못한 날들이 이틀인데 징기스칸이 상체를 일으키고 침대에 바르게 앉는다.

“이현! 나를 보느냐?”

징기스칸의 칼칼한 목소리다. 소리에 힘이 실려 있었다. 이현 서하의 왕이 어찌할 바를 모른다. 그때 수부타이가 이현에게 호통을 친다.

“너의 속마음을 대 칸께 아뢰리라!”

“아, 네네. 대 칸이시여. 이 좁쌀만큼도 못한 놈이 죽을죄를 저질렀나이다. 다시는 배신하지 않는 대 칸의 충신이 되겠나이다.”

이현이 울부짖으며 엎드리자 징기스칸은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뒤로 넘긴다. 수부타이가 징기스칸의 몸을 편히 눕혔다.

징기스칸의 시대가 끝났다.

툴루이가 일어난다. 그는 예수이로부터 받아든 서판을 두 손으로 받들어 높이 들었다.

후계자가 우구데이다. 하지만 몽골인들의 전통은 막내 아들이 상속자가 된다. 한 종족의 가문으로는 툴루이, 세계제국을 목표하는 징기스칸은 아직도 마상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인류 최초, 그리고 최대 제국을 징기스칸은 네 아들들에게 상속했다. 대 칸 징기스를 제외하고는 어느 누구도 징기스의 위상을 독점할 수 없었다. 네 아들 모두가 대 칸이다, 서두르지 마라, 자중지란을 일으키면 모두 망한다, 우리는 지금 절호의 기회를 맞이하고 있다.

서유럽이 지금 우리를 부르고 있다. 징기스칸은 아들들 넷만 이끌고 양전협 계곡에서 한나절을 보낸 일이 있었다. 그의 병세가 더는 전쟁터에 나설 수 없음을 그는 직감했다.

“막내야!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잘 알지? 너는 네 어미요 내 사랑하는 보르테를 가장 많이 닮았어요. 그런데 말이다. 우리가 초원지대에 만족했다면 왜 내가 너희들 문제로 고민하겠느냐. 유럽이 우리를 부르고 있다. 우리가 가서 도와야 해. 저들은 지금도 프레스터 존(prester John)을 기다린다. 유럽의 우리 형제 그리스도인들은 이슬람 종교에 휘둘리면서 야만인 대접을 받고 있다. 우리가 빨리 가서 십자군 전쟁을 끝내고 유럽인들을 우리의 드넓은 아시아로 불러와야 한다. 이 거대한 일을 해내려면 너희들 넷이 똘똘 뭉쳐야 해. 이 늙은 아비는 너희들의 아름다운 선행을 지켜보는 영원한 푸른 하늘로 남아 있겠다.”

“아버지, 곧 쾌차하십니다. 약한 말씀 하지 마세요.”

주치가 한 말이다.

“아버지, 몽골 제국이 세계 제국으로 우뚝 서려면 저 옛날 로마가 집정관 제도로 운영되던 때가 있었다고 파울로 선교사가 귀 따갑도록 말해주었었죠.”

“그래, 나도 안다. 그건 호랑이 담배 먹을 때 이야기다. 지금은 세계가 다르다. 너 우구데이는 그래서 순진한 거다.”

우구데이가 얼굴을 붉힌다.

“술 한 잔 더 마시거라.”

징기스는 셋째 아들 우구데이 앞으로 마유주를 가득 담은 잔을 넘겼다.

“아닙니다. 아버지가 털고 일어나실 때까지는 입에 대지 않을 겁니다.”

“허, 형님! 그 말 책임질 거예요.”

툴루이가 어릴 때처럼 혀를 낼름거리면서 우구데이를 놀린다.

“너희가 집정관 이야기를 꺼내니까 내 마음이 홀가분하다. 서로가 권력 욕심이 없다는 뜻 아니겠느냐. 그러나 세상이 어디 그러느냐. 너희들 넷이야 서로 양보하고 존중할 마음이 넉넉하지. 그러나 너희 자식과 손자의 때로 이어지면 우애 넘치는 가정의 신의를 장담할 수 없는 거다.”

“아버지, 가능합니다. 제국의 법 제도를 공정하게 집행해 간다면 모든 만사를 문제 없이 이룰 수 있습니다. 우리들은 유럽의 교황제도를 따라서 종교와 정치 관계를 조정하고, 또 이슬람법을 첨가하여 잘 꾸려갈 수 있으리라고 봅니다.”

“그래, 주치 네 말이 설득력이 있구나. 아무튼 모든 것이 서로 신뢰하는 거다. 너희는 내 살과 뼈 그리고 영혼이니까. 나는 너희들을 믿는다.”

이렇게 말하는 징기스의 모습이 예전 같지 않았다. 어딘지 모르게 슬프고 쓸쓸한 듯한 모습이었다. 인생무상, 인생이란 어쩔 수 없는 것일까. 그가 육중하면서도 재빠른 모습으로 그의 백마에 올라 대군을 지휘할 때면 천지가 진동했었지.

툴루이는 징기스의 병든 모습을 세 사람 형들과는 또 다른 생각을 하면서 조심스럽게 바라보았다. 아버지는 가세요. 우리들의 영원한 푸른 하늘이 되세요. 아닙니다. 내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아버지 징기스칸은 우리들의 푸른 하늘입니다. 스키다이가 북방 초원의 주인이었을 때, 흉노가 한무제에게 쫓기면서 흑해 북방 너머 게르만의 욕망을 좌절시키려고 훈족이 되었을 때, 그리고 이제는 몽골 초원의 떠돌이들이 세계역사의 주인이 되고자 했을 때, 바로 지금 그 지도자는 징기스칸이 틀림없는데 병든 몸으로 내 앞에 있나이다.

툴루이는 아버지 징기스 앞에 등을 내밀었다.

“아버지, 내 등에 한 번 엎히세요. 제가 이 막둥이가 아버지를 등에 엎고 효도하고 싶나이다.”

툴루이는 징기스 앞에 엉거주춤 앉아 있었다. 두 손을 뒤로 열고 기다렸다.

“아버지, 어서요!”

그러나 징기스칸은 웃기만 하고 그냥 서 있었다.

툴루이가 대 칸 징기스의 운명을 온 세상에 알렸다. 그는 징기스칸의 장례 집행 위원장이었다. 가정사로 말하면 상주였다. 그는 징기스칸, 몽골족의 영원한 푸른 하늘인 징기스칸을 몽골의 신으로 모셔야 했다.

징기스칸은 과거의 존재가 아니었다. 초원의 부족과 정주민의 충돌을 피하고 두 문명권을 과오 없이 만나게 했으며, 그래서 그에게 세계제국의 주인의 명예를 역사는 안겨주었을까.

막내아들 툴루이가 이끄는 징기스칸의 장례절차는 역사 속에 묻힌다. 1227년에서 1229년 우구데이가 징기스칸의 뒤를 이어 제2대 대 칸으로 등극하는 과정, 큰 아들 주치가 징기스칸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는 불확실한 역사 이야기가 중복되면서 몽골역사는 혼선을 일으킨다. 왜 대 칸의 승계가 2년이나 미루어졌는가? 그 과정에서 툴루이의 의문사까지 끼어들면서 팩트(fact)가 흔들린다. 한편의 소설이면서도 흔히 하는 표현으로 팩션(faction)으로 분류해야 하는 정사에 기준하는 역사소설로서의 제한을 스스로 인정하게 된다.

셋째 아들 우구데이는 심하게 말해서 술꾼이다. 술을 너무 즐긴다. 술 때문에 대범하다는 평을 듣기도 하고 술 때문에 더 이상의 성공을 할 수 없는 한계를 인정해야 했다.

몽골 전통의 상속자인 툴루이와 골육책으로 선택된 우구데이 사이의 갈등은 툴루이의 의문에 찬 죽음으로 제2의 징기스칸 시대를 열어야 한다.

쿠릴타이를 거듭 미루면서 과도기 2년을 버티던 툴루이가 무너진 것이다. 우구데이의 인내가 한계에 이르렀을 때, 제2대 대 칸의 시대가 열렸다.

툴루이의 죽음은 몽골사(비사)에서는 우구데이의 통치를 원활하게 하려는 희생에서 결단한 것으로 미화되었다. 이 또한 듣기 좋은 말이고, 징기스칸의 지명을 받은 우구데이의 리더십에도 문제는 있었다. 그는 술을 이겨내지 못했다.

우구데이와 툴루이 한계가 있다. 우구데이는 징기스칸의 서면상 후계자이고, 툴루이는 몽골인 전통과 관습의 후계자였다. 징기스칸의 조상이 하늘이 되어 떠난 후에도 우구데이는 대 칸의 취임식을 못하고 있었다. 차일피일 시간은 흘렀다.

우구데이의 경쟁자가 또 모습을 드러냈다. 러시아는 물론 동유럽을 집어삼킨 징기스칸은 나머지 서유럽 점령을 아들들에게 남겨두었는데 바로 그 유럽의 길목에 징기스칸의 큰아들 주치가 일군 갚착칸국이 가로막는다.

주치가 이루지 못한 꿈을 주치의 둘째 아들 바투가 떠오르고 있었다. 그가 징기스칸의 용모, 성품은 물론 대부분의 장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더구나 징기스칸의 오른팔인 수부타이가 바투를 지키고 있었다.

우구데이는 서쪽의 바투와 동쪽의 툴루이가 자신의 걸림돌이었다. 어느날 유럽 원정을 서두르는 자리에서 툴루이가 송나라를 먼저 제압하자고 우겼다. 그들은 각기 속내가 달랐다. 바투로서는 징기스칸의 유업달성이 먼저이고, 툴루이는 북송과 남송 모두를 장악하게 되면 중국 본토족인 한족을 먼저 제압할 뿐 아니라 자기 고유 지분 확장이 되기 때문이다.

그들은 적당히 발효된 마유주를 마시면서 낮밤을 지새우면서 저마다의 셈법을 계산하던 어느 날 아침, 비틀거리면서 먼저 자리를 떠난 막내 툴루이가 길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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