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치 않게 ‘생활비 40만원’에 대해 이야기는 하는 두 사람 이야기를 듣게 됐다.

“한 달에 40만원 갖고 살 수 있어요. 그것으로 충분해요. 먹고 공과금 내고, 최소한 할 수 있는 것은 할 수 있어요.”“생활비로 40만원 가지고 어떻게 살아요. 그거 가지고 살라고 하는 사고가 잘못된 거지요.”

한 사람은 고전을 연구하며 글을 쓰는 사람, 또 한 사람은 은퇴목회자다. 누가 목회자일 것 같은가? 전자라고 대답할 사람이 아마도 더 많을 것이라 생각하겠지만 오산이다.

한 달에 40만원 갖고도 살 수 있다고 자신 있게 이야기 하는 사람이 고전 평론가다. ‘청빈’이 기본이었던 시절이 바로 옛날인가 싶다. 어느새 세속의 흐름에 휩쓸리어 최소한 몇 백만 원은 있어야 은퇴해도 살 수 있다고 생각하기 일쑤니 말이다.

목회자들이 몇십 년 전만해도 돈에 대해 입에 올리기를 꺼려했던 것을 볼 수 있는데, 요즘에는 당연시 여기고, 가능한 한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많아진 것 같다. 세월이 참 많이도 변한 것 같다.

고전 평론가는 어떻게 해서 40만원으로 생활비가 가능하다고 하는 것일까. 큰 집에 살고, 맛있는 걸 찾아다니고 좋은 것을 사기위해 쇼핑하는 시간에 고전을 읽고 낭독하고, 함께 나누고, 그렇게 살기를 희망하다 보면 그렇게 많은 돈이 필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성직자와 일반인의 이야기가 비교되면서, 어떻게 두 사람의 가치관이 정 반대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면과 생활로 말하는 고전평론가에게서는 인간의 본질, 실체를 깊이 탐구하면서 길어올리는 깊은 우물의 맛이 느껴진다.

아! 내 내면에도 둥둥 떠다니는 기름기로 꽉 차 있는 것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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