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곡됨의 결과가 사회의 비난과 지탄의 대상으로 교회와 목회자가 올라서 있어 매스컴에 오르내린다는 것이 마음을 아프게 한다.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게 하는 자들이 된다는 것이다. 
 

▲ 이종덕 
비전북하우스 대표

주일학교에서 사역할 당시 성경퀴즈 대회 같은 행사를 참 많이 했었다. 여러 가지 에피소드들이 발생했는데 두 가지 에피소드가 기억에 생생하다. 그 중의 하나는 중등부에서 있었던 에피소드이다. 선생님의 질문이 “예수님을 잡으러 온 대제사장의 종의 귀를 베드로가 쳐서 떨어뜨렸는데 그 종의 이름이 무엇인가?”였다. 학생들이 알지 못하고 어려워하자 선생님이 힌트를 주신다. “요한복음 18장에 나와 있습니다.” 학생들이 성경을 막 찾더니 한 학생이 손을 번쩍 든다. 선생님이 손을 번쩍 든 학생을 가리키자 그 학생이 크게 대답을 한다. “말고라입니다”(요 18:10). 학생들이 “우와~”라고 함성을 지르자 선생님은 “땡” 하면서 부연 설명을 해 주었던 기억이다. 

또 하나 이것은 일반적으로 돌아다닌 이야기인데 주일학교의 성경퀴즈에서 정답은 ‘예수님’하면 거의 맞는다는 에피소드였다. 아이들이 성경퀴즈에서 정답을 거의 예수님으로 한다는 것을 눈치를 챈 것이다. 그래서 정답이 다름에도 정답을 ‘예수님’이라고 한다는 에피소드였다. 사실 우리가 대제사장의 종 ‘말고’라는 이름까지 꼭 기억해야 할 필요성까지를 논하기는 그렇지만 행여 성경을 잘못 가르치거나 잘못 알고 있을 때 우리가 받을 수 있는 영혼의 상처는 상상하기 어려운 수준에까지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요 근래 강의안 검토를 부탁해 와서 한 번 보았는데 긴장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성경을 위에서 말한 에피소드처럼 ‘예수님’으로만 몰고 간다는 인상을 너무 짙게 받았기 때문이다. 차이가 있다면 글을 쓴 사람이 목사님이라는 것인데 성경의 단어와 문장구성에 있어서 하나님 쪽에서 해석이나 설명을 하는 것보다 사람의 편에서 해석을 하고, ‘목회의 편리’를 위해서 성경을 해석하고 문장을 구성했다는 것이었다.  

전에도 그런 원고를 많이 보아왔고, 그런 책으로 나온 책들도 많이 보았다. 그런 설교도 가끔 경험해 보았다. 그러한 왜곡됨의 결과가 사회의 비난과 지탄의 대상으로 교회와 목회자가 올라서 있어 매스컴에 오르내린다는 것이 마음을 아프게 한다. 그러한 행위들은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신 5:11)의 말씀처럼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게 하는 자들이 된다는 것이다. 

이번에 책을 하나 썼다. 몸에서 살이 빠지는 경험을 했다. 삶에서의 답을 찾아가는 내용인데 결국은 답이 성경이다. 앞에서 ‘정답:예수님’과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그 객관성이나 사실성을 확보하기 위해 각종 성경과 책과 자료들을 뒤지고 확인하고 또 확인하고 하느라 그랬다. 물론 사람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하나님 쪽에서 바라보는 시각으로 정리했다. 우리 삶의 답이 성경이기 때문이다. 

성경을 연구하거나 책을 쓴다는 것은 정말 중요한 일이다. 책의 내용은 글 쓰는 이의 주관적 경험이라 할지라도 그 내용에는 객관성이 확보되어 독자가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엄청난 내용의 양을 미사여구를 총 동원하여 표현하고, 아름답게 디자인한 책이라고 할지라도 객관성이나 사실성이 희박하여 독자들의 동의를 받지 못한다면 양서라고 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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