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승호 / 홍성사 편집팀

츠타야서점, 기노쿠니야서점과 더불어 일본의 대표적인 서점으로 손꼽히는 마루젠(丸善)서점(2015년 쥰쿠도서점과 합병하여 현재는 ‘마루젠쥰쿠도서점’)이 올해 창업 150주년을 맞는다. 설립자는 하야시 유테키(早矢仕有的, 1837~1901). 의학도였던 그는 18세의 젊은 나이에 고향에서 개업의가 되었지만, 후에 게이오의숙(慶應義塾)에서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 1835~1901)에게 서양 학문을 배우고 무역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후 두 사람은 ‘각별한 동지’로서 거의 반평생을 새로운 사회의 실현을 위해 분투했는데, 공교롭게도 같은 해 같은 달에 세상을 떠났다.

하야시는 1869년 요코하마에서 마루야상사(丸屋商社)를 창업, 서양 서적과 약품 및 의료기 수입 판매를 시작했다. 이후 점차 사업을 확장하며 일본 최초의 현대적 회사로서 면모를 갖추어갔다. 타이프라이터, 만년필, 잉크, 문구, 화장품을 비롯하여 신문명을 상징하는 많은 물건들이 마루젠을 통해 수입되거나 제조·보급되었다. 특히 잉크와 만년필은 ‘먹과 붓’을 대체한 것 이상의 상징적인 의미가 큰데, ‘창업 150주년 기념 문구류’에도 옛것을 재현한 특별한 제품들이 눈길을 끈다.

대중적으로 그리 알려져 있진 않지만, 마루젠 출판의 역사도 서점만큼이나 오래되며, 의미 있는 발자취를 남겨왔다. 의학서적을 비롯하여 화학·건축·토목 등 주로 이공계 출판물의 시리즈와 자료집·편람 등을 통해 해당 분야 학문의 저변을 다지는 데 기여했다. 1897년 3월 창간되어 오늘까지 이어지는 〈마나비노 도모시비〉(學の燈, 오늘날 이름은 ‘學磴’)는 일본에서 가장 오랜 사보(社報)로, 서구 문화 수용에 큰 역할을 하는 한편 각 분야의 대표적인 학자·작가·언론인 등이 참여하여 본격적인 학술에세이집으로 자리매김했다.

마루젠은 일제강점기 우리나라에도 서양 문물의 창구 역할을 했다. 이광수의 소설 〈무정〉의 주인공 이형식의 모습에서 그 단면을 엿볼 수 있지만, 좀 더 생생하게 느껴지는 것은 김교신 선생을 통해서다. 1932~1933년, 선생은 마루젠(오늘날의 소공동 롯데호텔 앞 도로변에 경성지점이 있었다)에서 웰스(H. G. Wells)의 《인류의 노동과 부와 행복(The Work, Wealth and Happiness of Mankind)》, 《Septuagint》(70인역 헬라어 구약성경), 《대영백과사전》 및 《자전(字典)》 등을 구입했는데, 이들 책을 주문하고 배송 받고 대금을 지급한 일, 마루젠에 들른 일 등이 낱낱이 기록되어 있다(홍성사에서 해역판과 영인본으로 각각 간행한 《김교신 일보(日步)》(2016)와 《성서조선 제4권》2019 참조).

9월 말 오후에 들른 마루젠의 도쿄 마루노우치점과 니혼바시점은 여전히 활기가 넘쳤다. 연속 강연과 다양한 전시 등이 열리고 있고, 시간의 흔적이 아로새겨진 기념품 코너도 예사롭지 않은 물건들이 시선과 발길을 모은다. 니혼바시점의 카페에서 하야시라이스(창업자 하야시가 손님 접대를 위해 만든 데서 유래했다고 하는데, 다른 설도 있다)를 먹으며 안내지를 통해 ‘일본 근대의 역사’로 일컬어지는 마루젠의 역사를 다시 돌아보았다. ‘메이지 시대의 맛’이라고도 하는 하이라이스의 약간 시큼한 맛에 갸우뚱해하다 문득, 1935년 늦가을 도쿄 기행 당시 기독교서점 교분칸(敎文館)과 이곳 마루젠에서 성서주석들을 구입한 김교신 선생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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