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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부림치는 갈망의 시간에도 운다나의 신앙 나의 예수 >6<
조효근/본지 발행인  |  dsr123@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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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9호] 승인 2019.10.28  18:4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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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방을
의식하기 전에
믿음의 사람들, 예수의
이름으로 사는
성도들은 오늘 오후에
천지개벽이 있다 해도
당황하지 말고
자기 본분을 지켜내야 한다.
절박한 시간,
내게는 눈물과 탄식뿐이다.
어찌하여 이토록
숨이 막힐 지경이 되었나.

 

미처 생각지 못했다. 체제는 언제나 변할 수 있는 것이다. 1799년 “프랑스 대혁명”이 완성기 직전에 공산주의 통치도 잠시 시도 했으나 당시 유럽의 중심지에서는 수준이 맞지 않았다. 그러나 사회주의 이데올로기는 독일의 천재 칼 마르크스의 등장으로 이론을 확보했고, 뒤늦은 20세기 초 제2의 유럽세력인 러시아에서 실험되었다. 공산주의.

나는 들소리 운영 과정에서 교과서적인 단계로 한국교회의 개혁기를 내다보았다. 한국교회의 변화와 상승 발전을 위하여 “들소리”가 있다고 확신했기에 변화의 속도를 의심하지 않았다.
 

1. 2017년 변칙변화의 충격

개혁이나 개화가 늦었기에 언제나 쫓기기는 했으나 한국교회는 그래도 예쁘게 성장한다고 자신해 왔었다. 그런데 2017년 이른바 좌파운동이 일정한 선을 뛰어 넘으면서 우리는 사회변화의 속도를 따라 잡을 수 없었다.

지금도 우리는 2017년 정세변화의 충격을 수습하지 못했다. 우리 사회의 요구가 급박했던가 보다. 광화문 네거리에서 김정은 찬가를 불러도 무사하고 주한 미국대사관 담장을 경찰이 지켜보는 데서 뛰어 넘어가도 큰 탈이 없다.

정신 차리지 않으면 큰 망신을 당하게 되겠다. 러시아 공산혁명이 일어났을 때 러시아 정교가 그들 인구의 99%를 차지했는데 그들 러시아는 공산체제를 70여년을 지속했다. 지금 공산당 지배는 끝냈다고는 하지만 러시아는 아직도 서유럽식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마련하기가 쉽지 않다.
 

2. 내가 사랑하는 한국교회를
   어떻게 도울까?

어느 신자가 한국교회의 자식 된 도리로서 교회를 사랑하고 아끼지 않을까마는 내게 있어서도 교회사랑의 마음이 애틋하다. 앞서 말했듯이 나는 지금도 43년 전 떠난 내 가족과 따로 살고 있다. “들소리” 사무실과 내 골방을 오고가면서 수도자 신분을 유지하고 있다.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다. 초심을 따라서 팔십 살 고개 언덕을 숨 가쁘게 바라보면서 모든 것들 앞에서 순응하기로 했다.

나의 소중한 날들 내 수명이 얼마쯤 남아 있는지는 모르지만 소중한 시간인 줄로 알고 있다. 백발이 영광인 줄을 요즘은 조금 알고 있다. 어느 누구나 마찬가지겠으나 인생 7,80살 고개 넘기가 마냥 쉬운 것 아니다. 100세 시대를 말하지만 그것은 요즘 태어난 사람들의 기준이고 나처럼 해방 전에 태어나서 해방기와 6·25동단기, 그리고 나라 금고에 100달러($)도 없었다던 50년대에 초등학교를 다녔던 사람들은 대개는 고달프게 살아서 잔병도 많이 달고 산다고 볼 때 내 지금의 나이는 날마다 감사제를 주께 올려야할 만큼이다.

내가 사랑하는 한국교회, 내 아버지의 교회를 위하여 내가 선물하고 싶은 것이 있다. 나는 어떻게 해서 60년대 초부터 세계교회사를 공부했고 70년대 초부터 대학에서 40년 동안 세계교회사 강의를 하게 되었다. 그래서 세계교회사, 또 세계사의 흐름을 조금은 안다.
 

3. 한국교회를 “만인제사”의
   기반 위에 세우고 싶다

내가 세계교회사 공부 중에 전공이라고 할 부분이 “만인제사 신학”인데 이에 따르면 한국교회는 잘 하면 세계 각국 역사 중에서 가장 탁월히 교회, 예수의 다음 세기를 이어갈 재목들이 많이 나올 확률이 있다.

유대-이스라엘의 역사를 보아도 그들은 북조 사마리아가 앗수리아에게 망하고 그들이 신 바벨로니아에게 망한 이후에 등장한 “회당시대”를 통해서 그들은 “만인제사” 신학을 만들고 발전시켜 고집쟁이 세례자 요한이 예수를 메시아로 발견한다. 그때 등장한 예수그리스도는 인류사를 상승시켰듯이 대한민국의 역사도 이스라엘사와 비슷하다.

나는 기독교 역사의 제3기 주요국가인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것을 축복 중에 축복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내 사랑하는 삼 남매와 아내를 가까운 먼 곳에 두고 살면서도 기죽지 않으면서 밤마다 주님의 침실에 뛰어들어 동숙하면서 새날을 여는데, 주요 지점에서 헌신하기를 원하고 있다.

한국인은 여성성향의 샤먼과 남성성향의 텡그리즘의 복합적 미신의 토양에서 태어났다. 남성 텡그리즘은 중앙아시아로, 아나톨리사와 발칸반도까지 갔으나 샤먼은 바이칼 호에서 수직으로 남하하여 대한민국 남쪽에 자리 잡고 있다. 이 샤먼의 기질을 잘 활용하면 기독교를 만인제사형 신앙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추후 설명 예정).
 

4. 만인제사를 오해 말자

우리 한국교회 일부는 “만인제사론”을 교회파괴론으로 오해하는 이들이 있으나 결코 그런 지식은 옳지 않다.(그들은 대개 워치만 니를 잘못배운 경우다) 만인제사장의 국어사전적 의미는 모든 개인이 제사사장 자격을 갖는다가 되지만 성경, 곧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만인제사는 홀로 제사권을 확보하는 그 당사자의 영적 순결과 또 그 수준에 이르는 덕망(德望)까지를 말한다. 신앙의 영적 완성도에 따라서 부여해야 하는 복된 명예가 만인제사장이다.

만인제사 또는 만인제사장은 신앙의 높은 차원의 완성도를 지향하는 언어표기이다. 예수께서 너는 하나님의 완전(온전)하심같이 온전(완전)하라는 말씀의 또 다른 표현이 ‘만인제사’이다.

어떤 사람들은 지금은 만인제사시대니까 목사만 설교하고, 목사만 성례집전하고, 목사만 직업적 사례를 받는 것 아니라고 훼방을 놓는다면 이 같은 행위를 하려드는 이는 망령된 짓이 된다. 모든 믿는 자들이 예수 앞에서 낮아지고 또 낮아지는 신앙의 열매와 그 덕성을 가져야만 만인제사장론인 것이다.

나는 지난 주간에 제3개혁의 진원지가 들소리다 라고 했는데 들소리만이 아니라 모든 성도와 교회가 세워진 그 자리마다 만인제사의 또는 제3개혁의 진원지라고 자부할 수 있다.

만인제사론에 이르면 종교와 정치의 한계에서 자유롭고 만인제사 경지에 오르면 가톨릭이나 각 지역의 정교(동방정교)와의 관계도 자유롭고, 만인제사의 기준에 이르게 되면 유대인이나 이슬람 사람들을 복음의 깊은 수준으로 이끌 수 있고, 또 비폭력의 인격수준에 오를 수가 있음을 말한 바 있다.
 

5. 체제 승부도 신사적으로 하자

“남북관계”의 미묘성과 역동성을 쉽게 헤아릴 수는 없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 이후 줄곧, 북한과의 일반적 관계가 없었기에 모든 것이 낯설기는 하지만 좌파 세력이 너무도 쉽게 북한과의 우호관계를 유지하려드는 데서 대한민국 교회는 지금 당황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정부의 예고성 단계 없는 정치 행위가 한국교회를 당황하게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남북관계는 대한민국 정치현장에서 사회주의 정당정책을 앞세우는 정당들이 일어나서 먼저 국민들의 표심을 조금씩 자극하면서 점진적인 방법이 아닐까 했는데 갑자기 어느 날 “안녕하셨습니까?”하면서 안방으로 뛰어들어 서두르니까 혼란스럽고 두렵다.

더구나 북유럽식 사회주의 국가도 아니고, 중국이나 러시아를 종종 비교하고 베트남식 관계도 만만하지만 북한은 다르다. 절대주의 체제를 유지하는 북한과의 관계는 결코 서둘다가는 자칫 동티가 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우려가 있다.

우리들이 가끔 농담으로 하는 말, “밤새 안녕하셨습니까?”가 일어날 수 있는 처지가 되었다. 그래서 우리 한국교회는 갑작스러운 남북관계가 조심스럽다. 좋은 자질을 가진 대한민국 교회가 북한의 일반인들과 만나거나 공산당 당원을 만나도 당황하지 않을 마음의 여유가 먼저 필요하다.
 

6. 북한은 특수한 체질이다

 북한은 단순 서유럽 정치철학의 산물인 공산주의가 아니다. 전체주의, 절대주의, 조선조 왕정체계, 그것도 연산군폭정 등이 뒤섞인 체제이다. 단순한 접근보다 내부 훈련을 통한 세련된 접근이 필요하다. 전혀 경험해 본 일이 없는 체제에의 접근보다는 황석영 씨 소설 제목처럼 “사람이 살고 있었네” 수준은 별도로 훈련을 쌓은 사람들 세계이고 착한 양떼들처럼 순수한 한국교회 신자들은 예비 절차가 필요하다.

이런 표현이 적절한지는 몰라도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순결한 마음을 많이 준비해야 할 것 같다. 예수께서 하신 말씀이지만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순결한 경지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뱀은 뱀처럼 상대하고 비둘기는 비둘기식으로 만나라는 것은 아닐 것이다. 사람의 성품(성정)속에는 뱀과 비둘기 같은 극단의 양면성이 있으니 어느 순간, 또 어떤 돌발 상황에서도 대처할 수 있는 양면성을 동시에 대처할 수 있으라는 뜻일까.

상대방을 의식하기 전에 믿음의 사람들, 예수의 이름으로 사는 성도들은 오늘 오후에 천지개벽이 있다 해도 당황하지 말고 자기 본분을 지켜내야 한다. 절박한 시간, 내게는 눈물과 탄식뿐이다. 어찌하여 이토록 숨이 막힐 지경이 되었나. 나는 늘 오늘 우리들의 처지가 BC587년에 일어났던 유대-이스라엘의 바벨론 포로기와 마주친다.

1517년 16세기 종교개혁이 일어난 이후 서유럽의 기독교 역사를 살펴보면 피와 눈물, 죽이고 죽는 편 가르기, 혁명 또 전쟁으로 이어오는 500여년이 바벨론 포로기에서 예수 등장기 500여년과 쌍태둥이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오늘의 세계 기독교 역사를 살펴보면 어느 곳이 특별히 안전하거나 만족한 나라들이 없다. 한국의 교회는 지금 역사 속에서 단 한 번도 구경해 본 일이 없는 아주 고약한 북한지역과 마주치고 있다. 자존심만 하늘 꼭대기까지 높은 북한, 절대로 경쟁자 또는 나 보다 더 잘난 놈은 용납지 않는 30대 중반의 용맹과 열정의 덩어리인 김정은 위원장장의 비위를 맞추면서 공생하거나 동행하기 어려운 때에 우리 한국교회는 그들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살아남아야 하고, 선으로 악을 제어해야 하고, 복음으로 탕평해야 하기에 지금 눈물과 탄식의 기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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