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국의 장로교회들이 루터의 종교개혁 500주년은 그렇게 크게 기념했으면서도, 교회주의 종교개혁 500주년은 별로 주목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신기하네. 생각해 보게. 한국 장로교의 뿌리는 개혁주의 신앙이 아니던가? 사실 루터의 사상보다는 부쩌, 칼빈, 불링거, 그리고 내가 전개했던 사상이 오늘날 장로교 신학과 신앙의 원류가 아니겠는가.”

우병훈 교수(고신대학교, 교의학)가 울리히 츠빙글리와의 가상 대화를 <좋은 나무>에 발표한 내용에서 츠빙글리가 한 말이다. 우 교수는 올해 츠빙글리 종교개혁을 기념하는 해인데, 별로 주목하지 않다는 것이 신기하다고 말한다.

우 교수와 츠빙글리와의 ‘가상 대화’는 50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그 시대 속으로 들여다보기도 하고, 지금 츠빙글리가 보는 부분은 무엇인지를 볼 수 있게 한 흥미로운 내용으로 전개된다. 여기서 츠빙글리는 종교개혁이라고 하면, 16세기 당시의 로마 가톨릭 교회의 부패들을 척결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교리 개혁’, 곧 성경의 핵심 가르침을 말하고 있다고 한다. 루터의 위대성은 로마서를 통해서 ‘이신칭의의 교리’를 회복했다는 데 있다고 말한다. 교회개혁이 다만 외적 제도나 관행의 개혁에 그쳐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중세에도 그런 것을 개혁하려는 시도는 많았지만 루터가 교회의 역사에 개혁자로 남은 것은 교회의 내면, 정신, 곧 교리를 개혁했기 때문이라고.

츠빙글리는 루터가 1517년 10월 95개조 논제를 비텐베르크 성곽 교회당에 걸기 전부터 이미 성경을 복음적으로 묵상하고 있었다면서, 루터와는 결이 다른 개혁자의 길을 걸었다고 말한다. 루터가 ‘죄인인 내가 어떻게 의로우신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면 츠빙글리의 젊은 시절 질문은 “하나님의 주권과 의가 어떻게 하면 이 세상에 편만하게 될 수 있는가?”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츠빙글리는 복음은 반드시 공적인 영역에서도 영향력을 드러내야 하다고 생각했다는 것.

츠빙글리는 칼빈이나 불링거보다는 더 현실 정치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길 원했고, 어떤 전략을 취하든지 간에 중요한 것은 복음이 가지는 공공성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입장을 늘 견지하고 있었다고 한다. 복음의 공공성을 논할 때 복음이 정치에도 영향을 미치도록 하는 것이 옳지, 오히려 복음이 정치에 이용당하도록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는 것이다.

취리히에서 사역하는 동안 츠빙글리는 단 한 번도 정치가로 활동한 적이 없었고, 시의회 조직에 ‘조언’을 하는 정도로만 했고. 설교 시간에 정치 현안에 대해 언급할 때도 복음의 증진’을 위해서 그렇게 한 것이지, 그 외의 정치 사안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한 적은 없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설교시간에 가령, 시의회는 복음적 설교를 막지 말아야 한다는 얘기를 자주 했고, 도시가 더 복음적으로 되기 위해서 정치가들도 노력해야 한다고 자주 말했다는 것이다.

복음의 공공성과 신자들의 윤리적인 삶에 그렇게 관심을 가지신 이유는 에라스무스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그 때문에 신학자들과 목회자들도 성경을 원전으로 읽기 시작했고, 무엇보다 츠빙글리는 교부들의 작품 역시 원전으로 읽어보니, 별세계였음을 알았고. 당시 교회가 가르쳐 주던 것들 가운데 엉터리가 너무 많다는 걸 알게 됐다고 한다.

원전으로 성경을 보면서 복음에 대해 눈을 뜨게 되었다고 츠빙글리는 말한다. 이것이 루터의 영향으로 종교개혁자가 된 것이 아니라고 그는 누누이 강조한다. 츠빙글리는 또 에라스무스가 가진 그 방대한 교부학 지식은 탄복이 절로 나오게 됐다고 한다. 교부들이야말로 기독교의 원류를 보여주는 이들이라는 사실을 나에게 확신시켜 주었다는 것이다.

종교개혁 502주년, 츠빙글리 500주년에 우 교수가 대화를 통해 만나게 해준 츠빙글리의 고백이 오늘날 성도들에게도 넘실거리길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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