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탐구(탐색)_39 요한복음 2:1~12

요한복음 2장으로 간다. 이른바 “표적의 장” 출발점이다. 2장부터 12장까지를 표적의 장, 13장부터 20장까지를 영광의 장(죽음의 장)이라고 언제부턴가 학자들이 명명했다.

표적의 장은 예수가 구약이 요구하는 메시아이며, 영광 또는 죽음의 장은 에수가 메시아 자신이심을 위한 죽음의 절차요 또 그것은 곧바로 영광이라 하여 표적과 죽음, 표적과 영광으로 표현한다.

이렇듯 요한복음은 단순명쾌하다. 메시아이심의 표적과 그 인증으로 죽음이요 영광인데 영광의 또 다른 증거는 부활이기도 하다.

2장 앞부분(요 2:1~12)에 “가나 혼인집 이야기”가 등장한다. 사흘 째 되던 날, 가나의 혼인잔치에 예수와 제자들 그리고 예수의 모친이 거기 함께 있다. 그런데 혼인집 잔치가 무르익어갈 무렵, 잔치집의 상징인 포도주가 떨어졌다.

문제의 시비가 생겼다. 잔칫집에서 예수의 가정이 어떤 위치에 있을까? 느닷없이 예수의 모친 마리아가 예수에게 “잔칫집에 포도주가 떨어졌구나”라고 했을까. 그녀의 말에 예수의 반응이 즉각 나타났다.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였다.

당시 유대인의 잔칫집 환경을 우리는 잘 모른다. 대개 유대인의 혼인잔치는 일주일동안 계속된다(삿 14:12). 여기서 잠깐, “사흘째 되던 날”(요 2:1) 세례자의 세례 받은 날부터일까, 아니면 나다나엘을 주께서 부르시던 날부터일까? “가나”가 어딜까?에 대해서도 의미가 있으나, 성경을 읽는 한국인 정서로는 어머니의 말씀에 아들인 예수가 “여자여!” 했으니 궁금해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존칭의 뜻과는 상관이 없다. “어머니”라는 뜻까지는 아니겠으나 그렇다고 무례한 말은 아니다. 그보다는 모친 마리아가 어찌하여 예수께 포도주가 떨어진 내용을 서둘러서 말했을까가 더 궁금하다.

이에 대해서 어떤 학자들은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의 신분에 대한 호기심 이상의 관심을 가졌으리라고 본다. 예수의 태중, 출산 후 어릴 때, 특히 누가복음 기록의 열두 살 예수가 예루살렘에서 어른들과 나누던 대화, 또 그의 안부를 걱정하는 모친에게 답변하던 당돌함은 물론 그때 마리아는 예수의 모습에서 비범함을 보았을까?(눅 2:41~52) 복음서 중 유일하게 기록한 누가의 기록, 또 요한복음 저자만의 기록인 가나 혼인집의 마리아와 예수의 관계는 분명히, 어떤 신비에 가까운 감정이 흐르고 있음을 본다.

1. 이어서 등장하는 본론(요 2:4~5)

모친 마리아는 예수의 언행에서 느낀 바가 있었다.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요 2:4).

마리아는 예수의 이 말에 극도로 긴장했을 것이다. 그녀가 포도주가 떨어진 것과 예수와의 관계를 상상했었는데, 예수의 언어에는 바로 그 징조에 관한 말이 튀어나온 것이다. “여자여”라는 호칭에서도 마리아는 느낀 바가 있었다고 여겨진다. 분명히 어머니와 아들 관계의 언어가 아니다. 객관적 언어 또는 공적인 언어다. 공적이란 말은 비슷할 뿐 언어로서의 적중률은 약하다. 아무튼 예수가 여자여, 라고 했을 때는 자기의 사명(삶)에 대한 분명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내 때”라는 표현 속에도 충분한 의미가 들어있다. 자기 사명, 메시아로서의 사명을 암시하는 표현이다. 여기서 “내 때”는 “시간”보다는 “상황”의 의미를 닮고 있다. 이 잔칫집에 예수의 방문을 일상생활의 연속이 아니라 분명히 메시아가 시급하게 할 말이 있다는 요한복음 기록자의 의지가 담겨 있다. 본문 12절 이후 13절 이하를 보라. 4복음서 모두가 쓰고 있으나 마태, 마가, 누가는 책의 마지막 부분이지만 요한복음은 공생애 출발점에서 등장한다. 성전청결 부분(요 2:13)은 다음으로 미루고 지금 내 때가 이르지 않았다 하면서 기다리는 예수를 주목하자. (어머니) 마리아가 하인들에게 명령한다.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2. 명하신 대로만 하라

“내 때가 아직”이라 하셨는데 웬 하인인가? 마리아는 예수의 시대(때) 관리에 대한 요구를 터득하신 것일까? 예수는 하인들에게 돌 항아리 여섯에 각각 물을 채우라 하셨다. 항아리마다 물을 채우되 가득, 가득씩 채우라. 하인들이 물을 채우니까 예수는 하인들에게 다시 말씀하셨다.

그 물을 연회장에게 가져다 주거라, 하인들은 예수의 말씀을 따라 물을 떠다가 연회장에게 주었다. 연회장은 깜짝 놀란다. 포도주였다.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포도주 빛깔, 그리고 그 향, 놀란 연회장이 이어가는 잔칫집은 처음보다 나중이 더 즐거웠다.
 

3. 비밀을 알고 있는 하인들

항아리가 여섯이라고 예수 말씀하셨으니 하인들의 눈에는 일곱이었다. 하인들은 알고 있었다(요 2:9). 물이 포도주 되는 비밀은 “하인들만” 알고 있었다. 물 항아리가 일곱이었다. 여섯이 일곱으로 바뀌었다.

어느 학자는 일곱 번째 항아리는 예수라 하였다. 여섯은 물이요 일곱은 포도주인가? 여섯은 율법이요, 일곱은 십자가의 피, 곧 은혜요 축복이고 사랑과 용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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