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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 거리 두기와 대화하기
최경환  |  dsr123@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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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5호] 승인 2020.02.05  14: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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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과 과학을
서로 독립적인 영역으로
간주하고,
두 학문이 서로 교류하되
영역을 침범하지 않고
자기 영역에서의
문법에 따라
활동하길 바라는 이들이다.

이런 경우 신학자는
인접 학문을 무시하지도 않고,
그것과 통합하는
융합 신학을 하고자
하지도 않는다.

김정형 교수는
과학과 신학이
독립적인 두 영역으로서
서로 존중하면서
대화를 해나가고
궁극적으로는 (조심스럽게)
통합까지 시도할 수
있다고 보는 입장이다.”

 

최근 국내 학자들이 쓴 과학신학 혹은 창조신학 책이 꾸준히 나오고 있다. 우종학 교수의 <과학 시대의 도전과 기독교의 응답>(새물결플러스, 2017)에 이어 박영식 교수의 <창조의 신학>(동연, 2018)과 김기석 교수의 <신학자의 과학 산책>(새물결플러스, 2018)이 나왔는데, 이번에 김정형 교수가 쓴 <창조론>(새물결플러스, 2019)이 그 대열에 합류했다. 전통적으로 신학은 철학과 깊은 관계를 맺으면서 발전해왔는데 이제는 철학이 그 자리를 과학에게 내주어야 할 분위기다.
 

# 창조와 과학

사실 우리는 과학혁명 시대를 지나 지금은 명실공히 과학의 시대에 살고 있다. 과연 과학 시대에 걸맞은 신학이란 무엇일까? 어떤 신학자는 현대학문과 과학의 성과를 신학에 적극 반영하려고 시도하며 전통적인 신론과 기독론을 과감하게 변형하기도 했다. 힙한 신학자들은 자기만의 방식으로 창의적인 신학을 하나씩 만들기도 했다. 그런데 이와 다른 방식으로 응답하는 신학자들도 있다. 신학과 과학을 서로 독립적인 영역으로 간주하고, 두 학문이 서로 교류하되 영역을 침범하지 않고 자기 영역에서의 문법에 따라 활동하길 바라는 이들이다.

이런 경우 신학자는 인접 학문을 무시하지도 않고, 그것과 통합하는 융합 신학을 하고자 하지도 않는다. 김정형 교수는 과학과 신학이 독립적인 두 영역으로서 서로 존중하면서 대화를 해나가고 궁극적으로는 (조심스럽게) 통합까지 시도할 수 있다고 보는 입장이다.

김정형 교수의 <창조론>은 과학과 신학의 관계에 대한 일반적인 오해를 지적하면서(2장) 다양한 창조설의 스펙트럼을 소개해준다(3장). 이어서 현대 성서학과 신학에서 구속 중심의 이해에서 창조 중심으로 신학의 관심사가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4장과 5장). 이 책의 특징이 되는 6장부터 11장까지는 생명과학의 역사와 연구 성과를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다윈의 진화론과 그것이 가져온 세계관의 변화를 소개하고, 이어서 이런 변화된 세계관에 신학이 어떻게 적응하고 대응했는지를 소개한다. 그리고 과학을 포용하는 창조론을 제시한 대표적인 신학자로서 테야르 드 샤르댕(13장), 아서 피콕(14장), 볼프강 판넨베르크(15장)를 소개한다. 마지막으로 저자가 주장하는 “과학을 품는 창조론”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설명하는 것으로 책을 맺는다.
 

# 개념 정리: 창조설 vs. 창조론

김정형 교수는 현대과학을 수용하더라도 전통적인 기독교 신학과 신앙고백을 포기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두 영역이 서로 다른 범주에 속하기 때문이다.

이런 주장을 하려면 먼저 신학과 과학을 분리해야 한다. 그동안 다양한 접근법들은 신학과 과학을 결합하려고 시도했다. 과학으로 창조를 설명하려 하거나, 신학의 명제를 과학으로 입증하려 했던 것이다. 그 결과 이상한 신학, 이상한 과학이 나온 것인데, 김정형 교수는 이런 시도들을 ‘창조설’(creationism)이라고 명명한다. ‘젊은 지구 창조설’에서부터 ‘진화적 창조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창조설들은 모두 현대과학과 성서가 말하는 기원 이야기를 어떤 식으로든 조화시키려는 시도에서 나온 결과들이다. 창조와 관련된 신학적 주제를 우주, 지구, 생명의 기원과 역사 문제에만 초점 맞추다 보니 자연스럽게 과학과 신학의 접점을 고민하게 됐고, 그러다 보니 무리한 조합을 시도한 것이다.

반면, 저자가 말하는 ‘창조론’(the doctrine of creation)은 각자 다른 창조설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이 공통으로 고백하는 창조주 하나님과 그분의 창조 사역에 대한 교리를 말한다. 이 세상의 창조자가 누구이며, 그분이 이 세상을 창조한 목적이 무엇인지를 신학적으로 묻고 기술하는 것이 바로 창조론이다. 따라서 창조론은 창조설 논쟁의 수준과 다른 범주에 속하는 기독교의 오랜 교리 중 하나다(79쪽).
 

# 거리 두기

많은 그리스도인이 현대 과학의 눈부신 성과 이면에 뭔가 기독교 신앙과는 배치되는 무신론적 전제가 숨어있지는 않을까 두려워한다. 예를 들어, 요즘 고등학생들이 학교에서 배우는 ‘통합과학’은 빌 게이츠 재단이 지원하는 ‘빅 히스토리 프로젝트’와 유사하게 구성되어 있다. 빅 히스토리 프로젝트는 빅뱅부터 현재까지의 우주의 역사를 거대한 이야기로 집대성하여 제시하는데,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이거 하나님이 없다는 세계관을 은연중에 아이들에게 주입시키는 거 아냐?’라고 의심할 수도 있다.

이런 문제와 관련하여 과학이라는 것이 어떤 전제를 가지고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를 아는 것이 도움이 된다. 현대과학은 방법론적 자연주의(methodological naturalism)[1]의 전제 위에서 모든 가설과 실험을 진행한다. 즉, 과학 연구 과정에서는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개입을 고려하지 않기로 전제했다는 것이다. 만일 어떤 이가 과학 연구에 자신의 신앙적 관점이나 전제를 도입하겠다고 하면, 그것은 사이비 과학을 하겠다는 말이 되어버린다. 따라서 빅 히스토리 프로젝트든 진화를 확립된 이론으로 받아들이는 현대 생물학이든, 과학은 과학의 전제라는 한계 안에서만 성립한다. 우리가 흔히 간과하는 부분이 바로 이것이다. 즉, 현대과학은 방법론적 자연주의를 전제로 출발하기 때문에 신의 존재 유무나 창조론의 핵심 진리에 대해서는 아무 말을 할 수 없다는 점이다(387-390쪽).

이런 이유로 창조론 교리는 현대과학의 연구 결과에 따라 존폐가 결정되지 않는다. 인공지능 기술이 고도로 발전하고 새로운 생명과학의 연구 결과들이 나온다고 해서 창조론의 신앙 체계 자체가 흔들리거나 위협을 받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것은 범주를 혼동한 것이다. 창조론은 자연에 대한 탐구인 과학에 기반을 두지 않는다. 즉, 창조론은 과학적 연구의 결과로써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하거나 하나님의 창조를 입증하는 식으로 나온 교리가 아니다. 창조론은 창조의 주체와 창조의 목적을 다루는 교리다. 따라서 이 영역은 현대 과학이 탐구하는 영역과는 전혀 다른 범주의 영역이다.

만약 과학의 연구 결과를 통해 신의 존재 유무나 창조의 목적을 알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과학은 전제로서 방법론적 자연주의가 아닌 형이상학적 자연주의(metaphysical naturalism)를 채택한 것이다. 그것은 더 이상 과학이 아니라 세계관이고 신념이다. 리처드 도킨스와 같은 과학자가 ‘과학을 연구했더니 신이 없더라’라는 식의 주장을 하고 있지만, 그것은 이미 과학의 영역을 벗어난 발언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현대 과학을 두려워할 필요도 없고 두려워해서도 안 된다. 오히려 기독교 신학은 “변화하는 세계관과 적극 대화하면서, 그것을 기독교의 핵심 진리를 보다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매개 혹은 수단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302쪽).
 

# 대화하기

일단 이렇게 과학과 기독교의 창조론이 서로 다른 범주에 속하는 학문임을 이해하고 둘 사이를 떼어 놓으면, 불필요한 오해를 피할 수 있고 이상한 변종 신학도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어떤 학문도 다른 학문에 영향 받지 않으며 순수하게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고, 존재해서도 안 된다. 신학과 과학은 서로 다름을 인정하면서 조심스럽게 어떤 방식으로 대화할 수 있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김정형 교수는 현대 과학과 창조 신앙이 충분히 양립할 수 있다고 말하면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근거를 제시한다.

첫째, “자연계의 질서는 창조자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반영한다”(312쪽). 자연 세계는 일정한 규칙과 법칙 속에서 움직이고 작동한다. 물리학자들이 이 자연 세계를 탐구하고 연구해서 계산 가능한 법칙을 도출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신비라 할 수 있다. 이는 하나님의 변함없이 신실한 성품이 자연 세계에 반영된 결과다.

둘째, “현대 과학이 던지는 몇몇 중요한 한계 질문에 대해 성서와 기독교 전통의 창조론에서 가장 만족스러운 대답을 발견할 수 있다”(313쪽). 여기서는 과학과 신학이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으면서 서로 보충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과학이 밝힐 수 없는 한계를 신학이 대답하는 방식이다. 과학은 현상을 설명하고, 신학은 존재 이유를 대답한다. 과학은 기원을 밝혀주고, 신학은 목적을 제시한다.

셋째, “현대 과학의 발전은 더 크고, 더 지혜롭고, 더 신비로운 하나님의 존재를 향해 우리를 초대함으로써 성서와 기독교 전통의 창조론을 더욱 풍성하게 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314쪽). 과학의 발전은 그리스도인들이 가지고 있던 하나님 개념을 확장시켜주는 계기가 된다. 우주의 크기를 알고 세포의 유전자 암호를 해독하면서, 우리는 하나님의 광대하심과 세밀한 지혜를 알게 된다. 과학이 발전할수록 우리가 이해했던 하나님의 크기는 더욱 커진다.

기독교 창조론은 이 우주의 주인이 한 분 하나님이라고 말한다. 인간이 아니다. 이 명제는 과학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새로운 시야를 열어준다. 인간의 운명과 구원에 모든 관심을 쏟았던 인간중심주의적 세계관으로부터 하나님 중심 세계관으로 전이하도록 자극하는 것이다. 칼뱅의 말처럼, 이 세상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창조되었고, 인간 역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 인간은 창조자 하나님의 피조물이며 또한 하나님의 사역에 동참하는 조력자이다. 인간이 많은 피조물 중 하나에 불과하지만, 하나님의 사역에 동참할 수 있음을 알기에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뻐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과학이 우주와 인간의 기원에 관하여 연구하고 미래를 예측한다고 해서 신학이 위축되거나 축소될 필요가 없다. 얼마든지 두 분야가 상보적인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너무 가까워도 너무 멀어도 안 되는 사이가 과학과 신학 사이다.

최경환(과학과신학의대화 기획실장)

* 이 내용은 기윤실 <좋은나무> 웹에 1월 6일 발표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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