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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어려운 말을 선택해야 하네요나의 신앙 나의 예수 >끝<
조효근/본지 발행인  |  dsr123@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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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5호] 승인 2020.02.05  15: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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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득불, 어느 날 저는 “들소리” 회원과 독자 여러분께 육성으로 호소할 긴급을 느꼈지요. 사방으로 빠져나갈 길 모두가 막힌 절박한 상황에서 의지하고, 안타까운 마음을 호소할 대상을 허우적거리듯이 찾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기도합니다.

 

1.“들소리신문”의 향후는?

험난하겠다고 생각합니다. 디지털시대, AI시대가 체념하는 신자들 분위기를 이끌어 올릴 수 있을까가 아니고 교회들 스스로 포부를 잃을 수 있어서 “들소리”의 길도 험난하지 않을까 예상해 봅니다. 물론 우리는 세속적 의미의 성공이나 성장을 목표해본 일이 없기에 사업적인 성패에 따르는 두려움은 없습니다. 초기에 처자식 버리고, 인륜을 내팽개쳐 버린 놈이라는 비난에 휩싸일 때에도 저는 두려워하지 않았어요.

굶주리는 시간에도 울지 않았어요. 100일 동안, 단 한 번 밥을 먹지 못하고 계속 아침, 점심, 저녁 모두를 20원짜리 라면으로 굶주림을 이겨냈던 일도 있었죠. 1980년 초여름부터 가을까지 김칫국물 한모금도 없이 맨 라면을 끓여먹다가 그것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아서 수돗간으로 가서 헹군 다음 선풍기 바람으로 라면발을 식혀서 목구멍으로 털어넣으면서, 구역질을 하면서 손가락으로 뱃속으로 집어넣으면서 굶주림을 이겨내기도 했지요. 어찌 “들소리” 44년 과정들을 다 말로 합니까.

가난은 두렵지 않습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말입니다. 처자식 내던지고 나와서 살던 3년차 겨울에는 사무실 소파에서 잠을 자는데 잠이 제대로 오지 않더군요. 처자식 걱정, 들소리 운영 걱정, 돈 걱정, 여자 걱정….

여자 걱정은 남자 구경 못해서 잠 못 이루는 여자들 걱정이 아니라 내가 여자 생각이 나서 잠이 오지 않아서요. 무슨 짓이든지 할 것 같기도 했어요. 저는 주섬주섬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갔어요. 그때 굴레방다리 주변이 2호선 지하철 공사중이었는데 주변에 공사장 일하던 트럭들이 몇 개 있었지요.

트럭 밑으로 들어갔어요. 바람이 몰아치기도 하고, 바닥이 찬데 새벽에까지 그래도 잠을 잤어요. 해뜰 무렵 몸을 털고 나서면서 보니까 제 몸을 눕혔던 자리의 얼음바닥이 녹아내려 마치 사람의 그림자가 그려지는 듯한 형국이더군요. 그런 식으로 여자 생각, 가정의 처자식 그리운 생각을 머릿속에서 지워보려고 몸부림치던 밤도 여러 날 있었어요. 그때마다 저는 마음을 다스리면서 제 몸이 기울어지는 것들을 막아왔어요.

또, 명예. 남의 앞자리에 서거나 감투 비슷한 것 따위는 쉽게 따돌릴 수 있었어요. 혹시 예수님보다 유명한 자리가 있다면 모를까, 예수께 덤비는 것 말고는 다른 경쟁자는 없습니다.

80년도인가, 모 교회 대학부 지도목사를 시작했는데, 첫 번째 설교를 했어요. 그때, 저는 설교 제목으로 ‘묵은 땅을 갈아 엎으라’는 제목으로 설교했는데, 바울 선생을 나와 평등 비교하는 설교였어요.

설교를 마치고, 강사 방으로 나와 있으니까 학생회장이 할 말이 있다고 찾아와서, “목사님이 뭔데 바울 사도를 함부로 말하십니까?”면서 항의하는 겁니다. 서울대생이었어요. 부회장도 서울대생, 학생들이 제 방으로 몰려들어요. 부임 첫 날, 대학생들만 70여 명 모이는 교회니까 제법 큰 교회인데 제가 참 난감해진 겁니다. 어려운 때 모처럼 수입원도 되는 대학부 목사, 자칫하면 도망쳐야 할 위기입니다. 그래도 저는 평상심을 찾고, “어이, 학생회장! 바울선생은 훌륭하죠. 나도 인정해요. 함부로 그분을 말하면 안 되죠. 그러나 그분은 이미 평가가 끝난 사람, 저는 아직도 성장할 가능성이 넉넉하게 열려 있어요. 장차 제가 얼마나 더 치솟을 수 있을지 몰라요. 그래서 저는 예수님을 제외하고는 신구약 인물들 존경과는 달리 어느 누구도 부럽다는 생각이 없어요. 더구나 바울 선생 정도는….”

이렇게 말하고 그 뒤로 2년 정도 교회 대학부 지도를 했어요. 40여 년 전 이야기죠. 요즘은 언제, 어떤 모습으로 “들소리신문”이 문 닫을지 모른다는 느낌도 있지만 이 또한 두려워하지 않아요. 이 하늘 아래서 “들소리”가 내게는 더 이상 소중한 것이었죠. 그러나 오늘 문 닫아도 좋을 만큼의 글을 쓰고 있어요.

머지않아서 문을 닫을 수도 있어서 독자와 회원들과 정담 수준의 글을 몇 줄 쓴다고 시작한 이 지면인데, 지금 말이 되는지 글이 되는지 잘 모르겠어요.

그만둘지 모른다. 아마 그렇게 되지 않을까 합니다. 나라가 기울고 있는데, 자칫 그 길이 보이는데 무슨 방법이 없을까요? 그만 둘 수 있다는 저의 이 말은 “내가 들소리이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내가 들소리죠. 다시 죽을 수 없는 생명을 가졌기에, 또 예수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예수 안에 있기에, 바로 이것이 나의 지상 최고(최대)의 상급이고 명예입니다. 더는 필요없습니다. “들소리” 깃발은 올리거나 내려도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저는 “들소리”(사 6:13, 11:6~8)라는 제호를 1977년 창업 16년 전에 예수께 받아서 품에 간직하다가 1977년 간판을 내걸었었죠.
 

2. 휴간사, 폐간사 여러 번 썼어요

라면, 줄기차게 먹으면서도 이겨냈고, 자식들 등록금 없어서 퇴학 직전에 절망도 이겨내다가, 하다하다가 “휴간사”를 써놓고 쉬려들면 하늘 까마귀가 나타나서 계속하게 하기를 여러 번, 휴간이 아니라 폐간을 해야 할 위기까지면 20회가 넘었지요. 그때마다 까마귀, 솔개, 수리매, 까치, 심지어 굴뚝새들까지 저를 도와주면서 문 닫지 말라고 했을 때는 참으로 넉넉한 여유 있었지요.

저는 지금도 익명으로 보내주신 격려 편지들, 소액환 증서들, 휴·폐간사 등 자료를 보관하고 있어요. 1980년 전후 3년 정도를 견디면서 1984년도부터 1988년까지는 제대로 된 발언을 하면서 세월보다 한걸음 앞서 달렸어요.

그 무렵, 88올림픽을 마치고 세계선교를 꿈꾸던 교회들이 선교사를 보내거나 목회자들이 교회를 뒤로하고 현지 선교사로 나가는 열풍의 시대였지요.

저는 그동안 숨겨둔 계획이 있었는데 “수도공동체” 복원과 재현이고, 또 하나는 “신학교 설립”이었죠. 그런데 신학생 배출 후 교단으로 발전할 위험 때문에 계획을 거두었어요. 수도공동체로 향하던 발걸음이 신문 발행으로 지체되었고, 세월만 흐르는군요.
 

3. 한국교회 몸집을 가볍게 해야 한다.

저는 요즘, <세계교회사>를 집필중인데, 지난달에는 “바벨론 포로기”의 유대-이스라엘 형편을 공부하다가 포로기 유대인들이 모여서 기도하던 중에 발견한 ‘내 주머니 안에 오신 하나님’이었어요.

예루살렘 성전 파괴 직전에 훌륭한 제사장의 아들이었던 에스겔도 아마, 거기에 모였겠지요. 예레미야 선지자의 제자들, 요시야 왕의 자손들도 그 자리에 모였을가요? 요시야는 종교개혁을 이룬 훌륭한 왕입니다. 아마 그의 곁에 예레미야가 있었는데 예레미야도 도왔을 것이고, 아직은 제사장이나 선지자가 되기 전인 에스겔도 도왔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지금은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에서 이집트로 추방중이고, 에스겔은 BC 605년 2차 포로로 잡혀왔으며, 요시야 왕은 BC 609년 이스라엘 전쟁터에서 전사, 마지막 왕 시드기야는 바벨론 군사에게 BC 586년 잡히고, 그가 자식들 앞에서 두 눈이 뽑혀서 죽었으나 시드기야가 거룩한 유다 왕 요시야의 셋째 아들인데 그들의 다른 자녀손들도 몇 명쯤 바벨론으로 끌려왔겠지요. BC 609년 1차로 끌려온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 사드락, 메삭, 야벳느고는 느부갓네살에게 붙잡혀서 다른 곳에 있었을까요?아무튼, 안식일. 바벨론 그발강 기슭, 7천명을 수용했다는 난민촌, 디아스포라들 중 요시아 왕의 자손들, 예레미야의 제자들 바벨론 현지에서 막 예언을 시작한 에스겔 등 주께서 사랑하는 형제들이 모여서 기도하다가 발견한 ‘내 주머니 안에까지 오신 하나님의 발견’이 포로기 이후 회당파 유대인들이고, 그들이 메시아 예수를 역사 위에 불러냈을 것입니다.

역설이지만, 바벨론 포로기에 예루살렘 성전 불타버리고, 나라를 잃어버리니 하나님이 유대 디아스포라 가슴 속으로 오셨네요.
 

4. 한국교회, 디아스포가까지 준비해야

앞으로, 한국교회는 중국식 “삼자교회”와 “지하교회”식으로 길을 바꾸는 날이 올 수 있습니다. 북풍이 불면 피하지 못할 것이고, 서풍이 계속 불어온다면 디아스포라의 운명은 얼마간 순연되겠죠. 한국교회는 애당초 길을 잘못 잡았어요. 샤먼과 텡그리즘의 실체와 기독교 고유의 성격을 혼돈하여 계속해서 미신과 기복신앙의 함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요. 이는 목회자들이 무능하거나 공부가 제대로 안 돼 있어서 발생한 일입니다.

인간의 기본 인권, 곧 생명권은 기독교 출현 때 확고부동하게 준비된 것입니다. 예수께서 하나님에게서 나오신 하나님 아들이고, 또 하나님 자신이십니다. 이 한구절 말씀을 알아들은 동학(천도교)의 교조 수운 최재우 선생은 인내천(人乃天), 곧 인간이 하늘이라는 기본교리로 천도교를 창업했어요.

인간, 예수 안에 있는 인간은 하나님의 존엄“입니다. 북한 김정은 위원장의 ”존엄“보다 훨씬 더 높고 거룩한 존엄이 믿는 성도의 존엄이잖아요.

그런데, 그 성도들의 성도인 목회자들이 “존엄‘의 진정한 가치를 큰 교회당, 수많은 신자, 큰 고기(헌금 뭉텅이를 내는 신자들) 많은 교회, 연봉 수억, 수십억 주는 교회, 끝발 좋고 목사에게 양처럼 복종하는 장로들 등등….

더 중요한 것은 왜 교회를 사유화, 집단화, 분파, 분열집단으로 쪼갭니까? 그래야 다루기가 좋은가요? 교단이 많으면 총회장 숫자 많고, 신학대학 학·총장, 교수들 많으니까 감투와 종신직이 마련되니까 그러는 건가요?

한국교회가 교회의 본질을 잃은 지 오래 되었죠. 그래서 사회가 “개독교”라고 하잖아요. 교회조직을 법인 단체나 준 민간단체, 친교단체, 잘하면 무능한 주민센터 정도 취급을 하잖아요.

세금. 세금은 교회 조직을 수익단체, 잘 취급하면 윤리적 사회사업단체 정도로 보려는 겁니다. 더구나, 사회주의적 성향의 정권들에게 교회는 다루기 쉬운 친정부(정권) 단체로 만들어버립니다.

규모가 크고 교권력이 강한 교회들은 중국의 삼자교회 식으로 아마 다루기 시작하는 날이 옵니다. 고개 숙이고 애완견 노릇 싫은 교인이나 목회자들은 지하교회 조직으로 들어가고, 해외로 도망가서 유대인들의 디아스포라 흉내를 내고 싶겠죠. 그러나 유대인들의 디아스포라 수준이면 걱정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시련 가운데서 메시아 예수를 내서 지구상에 기독교 신자 20억 명 정도를 만들어냈으며, 2천5백여 년 동안 나라 없는 민족으로 살았어도 1948년 다시 살아나서 지금도 세계를 움직이고 미국을 다루잖아요. 그들은 성공했지요.

우리 한국민족도 교회 때문에 세계사에 크게 기여하는 날이 와야 합니다. 만약 하나님이 한국교회를 금번의 위기를 면하게 해주신다면 교회여! 목사, 장로여! 그리고 모든 그리스도인들이여! 한국, 대한민국 자유와 평등, 시장경제, 주거 이전의 자유, 인간 존엄의 자유, 못난 인간이나 짐승들도 함부로 짓밟지 않는 대한민국을 지켜내고, 공산사회주의 국가들에게 휘둘리지 않게만 해주신다면, 오, 하나님, 그렇게만 해주신다면….

오! 주여. 그리만 해주신다면 이제는 주님처럼, 정말로 죽어도 좋은 자신감으로 생명 주시는 날까지 하늘에서 이루어진 그 나라, 이 땅에도 이루어내도록 힘쓰고 애쓰겠나이다.

주여, 위선과 거짓으로 뭉쳐진 권력들의 위협 따위에 굴복하지 않을 그리스도인을 하늘의 별, 저 바닷가, 원산에서 해운대 바닷가의 모래 숫자보다 많은 그리스도인을 만들어 낼 때가지 모세, 엘리야, 여호수아에게 뒤지지 않을 만큼 말씀공부하고, 기도하고, 주께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겠나이다.

더는 피를 보지 않고, 정권이 도중하차도 하지 않고, 보복도, 인민재판보다 더 무서운 방법 따위는 필요 없는 정권 순환의 날이 와야 합니다.

저는 다시 한 번 “들소리” 정신의 기초인 이사야 11장 6절 이하를 읽어보렵니다. “그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거하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찐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이 귀한 말씀을 하나님께 받아서 글로 남긴 이사야만큼은 되고 싶은 저로써 연민과 사랑, 슬픈 자비심이 사랑이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면서 이제부터는 어린아이처럼 징징거리는 글이 아닌 나의 사랑, 나의 “들소리”를 아끼는 이들에게 더 어른스러운, 성숙한 모습으로 다가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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