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2:17-22

▲ 윤형식 목사
동인교회 담임

이스라엘 신앙중심인 성전은 광야의 성막부터 솔로몬 성전과 스룹바벨 성전으로 이어진다. 공교롭게도 솔로몬 성전(586 BC)과 스룹바벨 성전(AD 70)이 같은 날(아브월 9일) 무너졌고, 그 날을 기억하여 애도하는 날을 ‘티샤베아브(Tisha Be-Av: 성전파괴일)’라 한다. 이 날은 금식하고 구약성경 중 ‘예레미야 애가’를 낭독하며, 촛불을 밝히며 경건하게 지낸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예루살렘 성전은 신앙중심지이며, 그들은 또한 국가의 흥망성쇠(興亡盛衰)역시 성전에 달려 있다고 믿는다. 그러기에 제1,2성전파괴는 국가의 멸망과 함께 이스라엘에 크나큰 혼돈을 가져왔다. 예루살렘 성전파괴야 말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장 큰 충격적 사건이었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성전 재건에 온힘을 기울였다. 그 예로 바벨론에서 돌아온 후 선지자들은 성전을 건축하라고 외쳤으며, 현재는 제3성전 건축을 준비하고 있다.

예루살렘 성전은 ‘하나님의 임재(함께 하심)’를 상징한다. 성전중심의 신앙은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동행하며 살아감을 의미한다. 광야의 성막이나 예루살렘 성전에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언약궤가 있었다.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과 함께 하시고 만나는 상징적 장소로써의 성전은 견고하고 든든히 서 있어야 했다. 하지만 예루살렘 성전파괴는 이스라엘에게는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버리신 사건이었다. 물론 하나님은 사람이 지은 곳에 계시지 않으신다(사 66:1). 그것은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그의 백성들과 함께 하심을 보이시며 확증해 주셨다. 이제부터 성전재건은 보이는 건물보다는, 하나님의 임재 속에 거하는 하나님과 동행(同行)에 더 가치를 두어야 한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서 마지막 한 주간을 보내시며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고 하셨다. 이는 성전 된 예수님의 육체를 가리키신 것으로 십자가의 죽음과 사흘만의 부활을 예고하신 것이다. 제자들도 예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다가 부활하신 이후에 예수님의 가르침과 성경에 대해서 믿게 되었다. 예수님은 자신이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에게 놀라운 일들을 이루어짐을 아셨다. 예수님은 자신이 죽으셔야 그를 믿는 자들에게 새로운 일들이 일어남을 아셨다. 그러기에 성전 된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말씀하셨다.

성전 된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죽으심은 우리 안에 손으로 짓지 않은 성전을 세우는 출발이었다(막 14:58). 우리에게는 손으로 지은 성전이 귀하지만, 예수님은 우리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전(고전 6:19-20)으로 세워지길 원하셨다. 따라서 예수님은 자신이 죽으심으로 우리를 새로운 성전 되게 하셨다. 예수님은 자신을 십자가에 내주시므로 우리를 하나님과 함께 살 수 있도록 하셨다. 예수님은 자신의 육체를 헐어, 하나님과 우리를 화목하게 하셨고, 우리의 영육과 삶의 전부를 회복시키셨다.

한 걸음 더 나가 예수님은 우리에게 그릇된 성전개념을 헐라고 하신다. 하나님의 임재보다도 외형적 건물에 관심을 두며, 하나님과 동행하기보다 종교적 의식에 매여서는 안 된다. 신앙생활을 오래 하다보면 우리도 모르게 타성에 물들게 된다. 잘못된 성전 사상, 그릇된 주일 개념, 기복적 헌금관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성전 된 자기 육체를 헐라고 하시면서, 우리에게 동시에 변질된 성전인 고정관념, 고집, 세속적 사상, 불의한 관행 등을 헐라고 하신다. 우리도 예수님만 고난 받으시면 충분하다는 신앙에서 벗어나, 그분과 함께 십자가에 연합하여 죽어야 부활한다는 신앙을 가져야 한다(롬 6:3-5). 고난주간을 맞아 예수님께서 우릴 위해 십자가에서 자신의 육체를 찢으시면서, 우리에게 신앙의 그릇된 신앙을 헐어 버리라고 하시는 음성을 들어야 한다. 바로 그 사람이 하나님이 거하시는 새로운 성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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