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는 본디 종교 아니다. 예수께서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요 2:19)하심이 탈종교 선언이며 종교 극복의 말씀이시다. 그러나 기독교가 예루살렘 성전 파괴와 유다왕국의 완전소멸(AD 70∼135년) 기간 이후 혹독한 로마의 박해, 그리고 AD 313년 이후 콘스탄틴의 보호에 지나치게 의지하면서 균형을 잃었다. 더구나 AD 325 니케야 세계 회의 이후 셈족 종교, 즉 헤브라이즘의 특성과 특징이며 생명의 진리인 대속(代贖)의 진리를 상실하여 중세 1천년 암흑기를 헤매게 되었다. 르네상스 이후 이성의 회복과 과학의 법칙을 받아들여 반쯤은 원형을 되찾는 듯 했으나 특히 로마 가톨릭의 7 성례중, 다 버리지 못하고 2개의 성례전을 후속대안이 없이 수용하여 결국은 미완(未完)의 종교 개혁기를 살아오고 있다. 16세기 개혁의 중반기에 멘노 시몬스의 ‘개혁의 추가대안’을 검토도 하지 않고 짓밟아 버림으로 말미암아 프로테스탄트의 개혁시대는 어느 시기에서부터는 개혁의지마저 증발해 버렸다. ‘들소리’는 오늘 창업 27주년을 맞이한다. 긴 세월 동안 회원과 독자들의 동참과 함께 눈물 씻어주는 연민으로 오늘에 이르러 아직 살아 있음을 온 세상에 밝힌다. 우리는 그 출발에서 이미, 기독교의 완전개혁을 지향하는 대열에 참여하여 왔다. 특히 오늘의 기독교가 셈족의 전승을 놓치고 야벳의 길에 목을 메고 있다보니 기독교의 기본은 흔들리고 돌이키기 어려운 시대로 밀려가고 있음을 우리는 눈 부릅뜨고 지켜본다. 보시오. 오늘의 상업주의의 욕구와 맞아 떨어진 ‘The passion of Jesus Christ’와 `promise'라고 하는 작품들이 우리 마음에 알지 못할 슬픔과 연민으로 오는 뜻을 아는가? 우리 기독교인들이 창세기 3장의 가죽옷, 창세기 22장의 이삭의 모리아 제단, 이사야 53장의 포로기 고난의 메시아 예언, 예수의 골고다 죽음으로 이어지는 ‘대속죄 메시아로서의 예수를 알고 있는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우리는 예수의 대속의 은혜, 십자가의 예수를 통해서 말하는 복음 증거의 사명을 인생의 절대 부분으로 삼고 있다. 험난한 세대를 살면서 예수의 멍에를 함께 매는 회원과 독자 여러분에게 깊은 감사를 드리며, 이제 연륜만큼 성숙해야 한다고 자신하는 들소리 신문은 온 교회 성도 모두의 유익과 신앙의 진보를 위하여 혼신의 힘을 다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열정(passion)에 뒤지지 않을 만큼의 모범을 지켜 낼 것을 약속한다. 저희는 하루 24시간, 일년 365일, 인생 100년 모두를 골고다 오르는 그 현장에 다 바친다 하여도 기쁘게 받아들일 것이다. 또한 오직 믿음으로 고난과 죽음을 예수의 이름만이 ‘영광’으로 아는 믿음으로 하겠다. 우리 모두의 자축마당에 주의 빛 따사롭게 비추어 주소서. 조효근 목사 / 본지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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