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준 목사의 외침

담임목사의 갑질 예방을 위한 신임투표 제도가 도리어 교인이 목회자에게 갑질하는 도구가 된다면 자기모순이 아닐 수 없다
 

오세준 목사
오세준 목사


필자가 섬기는 교회는 “건강한 교회” “개혁적인 교회”를 모토로 세워진 교회다. 이런 이유로 6년마다 담임목사의 신임을 묻는 투표를 한다. 담임목사를 세우기 전에 교회가 출발되었고 이 제도를 도입했다. 그리고 필자를 초대 담임목사로 청빙했다. 필자는 이런 제도가 담임목사에게 유리하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건강한 교회를 세우겠다는 일념에서 부름에 응했다. 그러나 이런 제도의 부담 때문에 청빙에 응하지 않은 목사가 있었다는 후문도 있다. 그 만큼 목회자에게는 달갑지 않은 제도로 보일 수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담임목사에 대한 신임투표가 매우 생소한 이야기로 들렸지만, 지금은 신임 투표를 시행하는 교회들이 늘어나서 그런지 그리 낯 설 지만은 않다. 그런데 담임목사 신임투표를 도입하는 교회들이 점점 더 증가할 것으로 전망되어 우려스럽다. 왜냐면 이런 제도의 도입이 목회자에 대한 불신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며, 더 증가한다는 것은 목회자에 대한 존경과 신뢰가 갈수록 무너지고 있다는 신호이기에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임투표 제도가 긍정적인 요소가 없는 것은 아니다. 신임투표 제도가 목회자에게 배수진이 되어 더 성실하게 목회에 임할 수 있다는 장점이 그것이다. 주어진 임기가 끝나면 신임투표를 통해 재신임 여부가 결정 나기에 최선을 다해 목회에 진력하게 된다. 물론 신임투표 여부와 상관없이 목회자는 최선을 다해야 하고 대부분 그렇게 목회를 할 것이다. 하지만 한 교회에서 70세 정년 보장은 목회자를 느슨하게 하거나 목회에 사심이 들어갈 수 있는 위험성을 배제할 수 없다. 따라서 신임투표를 부정적으로만 해석할 필요는 없다.

그렇다고 해도 부정적 기능으로 작용할 소지는 얼마든지 있다. 신임투표 제도를 좋은 취지에서 도입했을지라도 악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담임목사가 지탄 받을 비윤리성이나 불법성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정상적인 목회와 설교를 하고 있음에도, 교인 중에서 담임목사에게 사사로운 악감정을 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오해에서 올 수도 있고, 담임목사의 작은 실수나 허물에서 촉발될 수도 있다. 이것이 치명적 문제가 아닌 사소한 것임에도 침소봉대하여 신임투표를 무기로 담임목사를 압박하거나 배척하는 경우가 있다. 이럴 경우 찬성파와 반대파로 분열되어 교회의 갈등을 초래하게 된다. 

신임투표를 악용하면 교인이 갑이 되고 담임목사가 을이 될 수도 있다. 교회는 주님의 몸을 이루는 지체들이기에 갑과 을이 존재해서는 결코 안 된다. 목회자와 장로, 교인들은 상하 관계도 아니고 높고 낮음의 관계가 아니며 서로 섬겨야할 지체일 뿐이다. 때문에 교회에는 갑과 을의 관계를 상상할 수 없다. 하지만 담임목사가 갑이 되어 있고 교인이 을이 되어 있는 교회가 없지 않다. 신임투표 제도를 도입한 목적에는 분명히 담임목사의 갑질 예방도 포함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담임목사의 갑질 예방을 위한 신임투표 제도가 도리어 교인이 목회자에게 갑질하는 도구가 된다면 자기모순이 아닐 수 없다.

필자는 신임투표에서 정관의 규정대로 3분의 2이상의 표를 받아 두 번의 재신임을 받았다. 하지만 두 번째 신임투표에서는 안타깝게도 신임에 반대하는 교인들 일부가 교회를 떠나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런 경험은 수십 년 목회에서 초유의 일이라 한동안 몸살이 날정도로 힘들었다. 교회가 후유증을 겪으면서 일부 교인들은 신임투표의 무용론을 제기하기도 했다. 신임투표로 인한 부작용이 크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신임투표 제도가 긍정적 요소가 있다고 해도 부작용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제도에 있지 않다. 목회자와 교인들 모두가 참된 주님의 제자로 성숙하지 않는 한 기발한 제도를 도입한들 무슨 해법이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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