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이 모여 
현실성 있는 모범 온라인 예배 안을 
만들어 제시하면 어떨까? 
그래서 어느 곳, 어떤 상황에서든지 
예배에 생명을 걸 만큼 예배를 
중시하는 한국교회가 되기를 소망한다.

 

오세준 목사
오세준 목사

 

요즘 한국교회는 코로나19 사태에 직면하여 예배 논쟁으로 시끄럽다. 좀처럼 가라앉을 것 같지 않아 당혹스럽다. 예배 논쟁은 이번이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기독교 2천년 역사에서 여타의 신학 논쟁과 함께 예배 논쟁은 쟁점만 조금씩 다를 뿐 늘 있어왔다. 때문에 코로나19의 팬데믹 상황에서 촉발된 온라인 예배 논쟁을 이상하게 볼 것은 아니다. 다만 예배의 본질이 아닌 지엽적인 문제로 소모적인 논쟁을 이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된다. 

온라인 예배는 예배라고 볼 수 없다면서 극단적인 주장을 하는 목회자들이 있다. 이런 주장을 펴는 이들 중에는 예배가 기독교의 생명이기 때문에 목숨을 걸고 예배당에 모여서 드리는 예배를 사수해야 한다고 강변한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구약의 다니엘이나 로마시대의 카타콤 예배, 한국 전쟁 중의 예배 등을 예로 들어 믿음의 선진들이 생명을 걸고 예배를 드렸다고 목청을 높인다. 

박해와 환난의 상황에서 예배를 드렸다는 것은 본받을 일이고 이런 전통은 이어가야할 것이다. 그러나 예배당에 모여 드리는 예배만이 참 예배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역사 속에서 있었던 이런 예배자들은 소위 성전이라 일컫는 장소에 모두 모여 예배를 드렸다는 것이 아니다. 이보다는 어떤 상황에서도 신앙을 지켰다는데 방점을 찍어야 한다. 박해자들과 환난으로 인해 이리저리 유리하면서도 장소와 상관없이 예배를 드린 것이지 특정한 장소에 모두 집결하여 예배를 드린 것이 아니다.

예배당에 모여서 드리는 예배에 생명을 걸아야 한다는 주장은 구약의 성전주의 사상에서 벗어나지 못한 비복음적인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예배에 생명을 걸어야 한다는 말에는 동의할 수 있어도, 예배당에 모여 예배하는 일에 생명을 걸어야 한다는 말에 동의할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복음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라면 지지할 수 없을 것이다. 예수님도 예배의 장소에 대해 질문한 사마리아 여인에게 특정한 장소가 아니라고 하시면서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하라고 하셨다(요4:21~23).

예배의 본질은 장소의 문제가 아니다. 예배당에 모여 예배를 드려도 참된 예배가 아닐 수 있다. 가정에서 온라인 예배를 드려도 참된 예배를 드릴 수 있다. 예배의 장소나 형식보다 중요한 것은 예배자이다. 예배자가 어떤 마음에서 어떤 자세로 예배를 드리느냐에 있다. 그렇다고 하여 예배당에 모여 드리는 예배가 중요치 않다는 것이 아니다. 성도들이 한 자리에 모여 예배를 드리는 것을 중요치 않다고 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코로나19의 전염이 우려되어 한시적으로 온라인 예배를 드리자는 것이지 상시 그렇게 하자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온라인 예배를 예배로 인정할 수 있느냐, 없느냐로 논쟁하는 것은 교회의 에너지를 소모시켜 복음의 능력을 약화시킬 뿐이다. 어차피 온라인 예배를 인정하지 않더라도 예배당에 모여 드리는 예배와 함께 온라인 예배를 병행하는 교회가 점점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오프라인에서의 전통적 목회가 아니라 ‘온라인 목회’라는 새로운 목회 패러다임으로 빠르게 전환될 것으로 전망되기에 더욱 그렇다. 

그러므로 온라인 예배는 또 하나의 예배 형태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이참에 불가피한 형편으로 예배당에 나올 수 없는 교인들을 위해 온라인 예배가 대안 예배로 잘 정착될 수 있도록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이 모여 현실성 있는 모범 온라인 예배 안을 만들어 제시하면 어떨까? 그래서 어느 곳, 어떤 상황에서든지 예배에 생명을 걸 만큼 예배를 중시하는 한국교회가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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