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겨울, 가족들과 제주도를 여행하면서 구좌읍 종달리에 있는 아주 작은 서점인 ‘소심한 책방’에 들렀다(제주도에는 동네책방이 100군데가 넘는다고 한다). 

내비게이션이 가리키는 곳을 따라 자동차를 몰고 가면서도 이런 곳에 서점이 있을까 싶어 내심 반신반의했다. 길은 구불구불, 집은 듬성듬성, 주변은 허허벌판이라서 시간이 지날수록 불안감은 내 영혼을 잠식했다. 더구나 내 운전 실력은 아직도 초보다.

한참이 지나자 내비게이션에서 목적지에 왔다는 소리가 들렸지만, 내가 본 풍경은 어느 시골 마을의 골목길이었다. 

다행히 ‘소심한 책방’이라고 쓰여 있는 손바닥만 한 푯말이 보이고, 주차와 관련된 안내문이 돌담에 포스트잇처럼 붙어 있었다. 우리는 조금 먼 거리에 있는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들판(?)을 지나 책방이 있다는 골목에 들어섰다. 먼발치에서 보니 붉은색 간판이 붙어 있는 곳이 책방 같았는데, 처음에는 무슨 곡물 창고처럼 보였다.

책방 안에 들어가자 조붓한 공간에 아기자기하게 책들이 놓여 있었다. 책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이 예뻤다. 주인장의 취향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또 이달의 추천 도서목록이 붙어 있었고, 굿즈와 팬시 상품이 있었고, 각종 소식지들이 있었다. 그런데 이 좁은 공간에 손님이 많이 와 있었다. 대부분 여행객이었지만, 아이들과 부모들은 의자에 앉아 책을 읽거나 작은 소리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좁은 공간에서 책 읽는 모습이 포근하게 느껴졌다.

딸과 아내도 여러 책 가운데 읽고 싶은 책을 골라 입구 쪽 의자에 앉아 책을 읽었다.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는데, 책방 안으로 들어온 햇빛이 그곳을 평화롭게 만들어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마치 예수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마 11:28) 하고 말하는 것처럼 마음의 안식처가 되기에 충분했다.

현행 도서정가제 개정 시한이 11월 20일이라고 한다(도서정가제는 3년마다 개정한다). 이번에는 완전한 도서정가제가 되어야 하는데, 상황은 정반대로 흐르는 듯하다. 
동네책방들은 지금의 불완전한 도서정가제도 힘들어 하는데, 그 이상의 할인율을 적용한다면, 대형서점과 온라인서점만 남고 동네책방은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 동네책방이 살아야 중소 서점과 출판사가 살고, 출판 생태계가 건강하게 된다. 책은 가격으로 경쟁하는 게 아니라 콘텐츠로 경쟁해야 한다. 그래야 중소 출판사에서 양서를 많이 출간할 수 있다. 동네 골목길의 한 귀퉁이에 동네책방이 오래도록 살아남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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