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바이러스가 전 세계적으로 이렇게 오랫동안 계속될지 누가 알았을까. 한치 앞도 못 보는 것이 우리네 인생인데, 우리는 무엇을 얼마나 안다고 그렇듯 자신만만했던 것일까.

세계보건기구가 ‘팬데믹’을 선언하자 유치원에서부터 대학교까지 학교들이 개학을 미루고, 교회와 사찰의 문이 폐쇄되고, 각종 모임도 금지되고, 음식점과 카페 역시 제한받고 있다.

종교가 인류에게 행복을 보장한다거나 미래를 약속한다는 말은 이제 사회에서 제대로 먹히지 않고, ‘종교 없는 시대’라는 말이 거부감 없이 거론되고 있다. 이런 때일수록 위기가 곧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라 독려하는 말도 있지만 끊이지 않는 성직자 성추행, 교회 내 다툼 등으로 인해 상심하는 이들 속에서 교회가 이런 기회를 살릴 능력이 있을지 자신하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19는 우리를 불안한 미래로 내몰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비대면이 되자 자기만의 시간을 목회자들도 더 갖게 됩니다. 북적이던 주일 예배당에서 텅 빈 예배당을 마주하게 됩니다. 텅 빈 예배당에 앉아 희미해진 불빛 속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진정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하고 말입니다.”

어느 한 목회자가 전화통화에서 진솔하게 이렇게 표현했다. 사람 사랑을 한번쯤은 해본 사람이라면, 사랑하는 마음이 있을 때 사람이 어떤 마음이고, 행동을 하는지 알 것이다. 그것에 비추어 우리가 진정 하나님을 사랑하는지를 살펴보면 그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책을 보니 “부자란 가난한 이를 위하여 가진 것을 내어놓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표현이 있다. ‘가난한 자는 행복하다’(눅 4:24~25)라고 말씀을 좀 더 쉽게 설명하는 대목이 있다. 밀라노의 주교이자 아우구스티누스의 스승인 300년대 교부 암브로시우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대는 그대의 것을 가난한 사람에게 베푸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것을 되돌려 주는 것일 따름입니다. 모든 사람이 더불어 사용하라고 주신 것을 그대 홀로 빼앗아 썼기 때문입니다. 땅은 부유한 사람들의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것입니다.… 어찌하여 그대 부자들은 그대들만의 권리라고 사칭합니까? 자연은 모든 인간을 가난하게 낳은 까닭에 부자들을 알지 못합니다. 자연은 우리를 모두 동등하게 창조하고 우리 모두를 동등하게 무덤의 품속에 가두어 버립니다.”

코로나19처럼 바이러스는 인간의 탐욕이 불러온 결과라고 진단하고 있다. 코로나는 어쩌면 인간의 욕심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가를, 하나님이 아무리 경고해도 알아듣지 못하는 경고요 사인일 거라는 얘기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힘겨운 시간을 통해 우리는 2020년 많이 고통스러웠고, 혼란스러움을 경험했다. 이제 맞이하는 2021년은 이 시간들을 통해 우리의 잘못된 모습을 더 깊이 성찰하고,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음을 더 깊이 묵상하며 그 길로 한 발 한 발 내딛는 시간이 되길 소원하게 된다. 

하나님보다 더 큰 무엇을 바라는 사심과 욕심을 끊어내고, 오직 그분의 발 앞에, 늘 그 자리에 있을 수 있는 복이 있는 새해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교계의 풍토 역시 그런 인물, 지도자들을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말로만 하나님께 영광, 사랑, 희생, 섬김을 말하는 것이 아닌 삶에서 그런 모습이 보여져야 한다. 이름도 빛도 없이 제 역할을 다하는 보이지 않은 목회자와 성도들을 실망시키지 않는 2021년이 됐으면 좋겠다. 낯뜨거운 목회자와 교회의 좋지 않은 행태가 얼마나 크게 교회 이미지에 악영향을 주는지 기억하면서, 누가 되지 않겠다는  마음이면 좋겠다.

<복음인in 들소리>는 하나님의 교회다움을 위해 진력하는 여러분의 후원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동반자로서 여러분과 동역하며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함께 하겠습니다. 샬롬!

후원계좌 : 국민은행 010-9656-3375 (예금주 복음인)

저작권자 © 복음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