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21세기 이렇게 대비한다

“코로나19”가 휩쓸고 간 뒤, 한국교회는 외형상 예배당 숫자가 반 토막이 날 것으로 예측하는 이들이 많다. 절반 정도의 미자립교회 목회자들이 이른 바 목장을 잃고 안타깝게도 목자 잃은 양 무리의 신세로 전락할 수 있다는 뜻이다.

16세기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의 초기 확신이었던 ‘만인제사론’을 상기해 보지 않을 수 없다. 16세기에 등장한 만인제사론의 출발은 구약 선지자들의 중심예언이었고, 메시아 예수의 성취물이고 모범이었다. 속사도 시대까지도 그 정신을 유지해 오다가 거룩한 공동체(Holy Catholic Apostolic Church) 매력에 취하다가 더 큰 희생을 통한 신앙과 신학완성을 놓쳤던 것이다.

핍박하는 로마제국의 고난이 너무 힘들어서 일종의 피난공동체를 형성하고 성숙해야 할 교회의 과정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콘스탄티누스의 밀라노 칙령이 내려진 AD 313년부터는 단독자의 이름으로 신앙완성을 시도하는 “교회”를 먼저 선포하고, 두 사람 이상이 내 이름으로 모이는 곳을 “교회”라 하겠다 하신 예수의 말씀에서 완성도를 찾았어야 했었다.

만인제사란 모든 그리스도인 개개인이 하나님 앞에 선 단독자(신앙 완전 선언자)가 되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 앞에 서는 단독자의 경지가 그렇게 간단하겠는가.

그러나 가톨릭교회는 12세기부터 15세기까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피터 왈도(Peter Waldo)나 아시시의 프랜시스 그리고 보헤미아의 얀 후스의 신앙까지 모두 합한 인격신앙으로 신학과 신앙이 형성된 후 루터나 칼빈 등의 16세기 개혁이었어야 했다.

준비가 부족하여 16세기 개혁은 중세기와 완전결별을 못했고, 로마 가톨릭 교황권을 그토록 저주했으면서도 그들 16세기 개혁자들은 중·근세의 중간 인물들 수준에서 또 하나의 교황권 기독교를 만들고 있었다.

그 증거가 오늘의 전체 프로테스탄트 교회들, 한국의 교회까지 서유럽에는 없는 무당신앙에 뒤섞여서 저 모습이 교회인지, 아니면 신당이나 산당인지, 도무지 구분이 안 되는 교회모습을 하고 있다. 특히 “대형 교회당”들일수록 예수의 모습이 잘 보이지 않는다. 한국교회여! 코로나19 앞에서 대안을 서두르자. 절반쯤 문을 닫아야 하는 교회의 취약성에 대해서 3백여 개가 넘는 각 교단 책임자들은 답변해라. 대안을 내놓아봐라. 

한국교회는 수난의 위기에서 헤쳐모여까지 각오하고 교구와 교회를 제 조직(구성)할 수 있는 능력을 발휘해야 한다. 신자 한사람을 얻어 “믿음의 동지”를 만들기가 얼마나 힘들며, 또 그 한 사람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몰라서 하는 말이 아니다.

코로나19에 걸려 비명에 죽어가는 사람들을 떠올려 보라. 자식이 아비·어미를 문밖에 서 있으면서 먼발치 임종을 해야 하고, 아내가 남편, 또 남편이 아내를 마지막 인사도 못하고 헤어지는 코로나의 횡포를 우리는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그렇다면 한국교회여! 살겠다고 발버둥치는 것 이상으로 살리는 교회, 죽어가는 자를 살려내는 그리스도인들을 만들어 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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