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기 전후로 한국교회는 에큐메니컬 운동에 대한 이해부족으로 보수 또 진보라는 이름으로 두 조각 난 이후 아직도 교회 분열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교회의 이 같은 속성은 이기적 분열에 명분을 주어 많은 소영웅적 인물이 일어나서 교파(교단)를 쪼개서 잔재미를 보고 있다.

사회 정치현실도 어느덧 닮아가는가, 현재 한국의 정치구조를 보면 무엇이 보수이고 또 진보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80년대 전문 운동꾼들이 대거 일어나서 드디어 그들이 현재 50대 초중반을 이루고 한국의 정치에 뛰어들어서 진보를 자처하고 있으나 그들 또한 보수적 기본 속성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보수와 진보는 “지킨다”와 “찾는다”로 구분할 수 있다. 지킨다는 것은 소중한 가치를 보존한다는 뜻이고, 찾는다는 것은 새로은 것의 보완을 위한 모험을 동반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석했을 때 보수와 진보는 하나요 또 둘이다. 하나요 두 측면이기에 서로 충돌하거나 적대시하면 안 된다. 그래서 정치 무대에서는 “타협”이라는 중요한 과정을 소중하게 여긴다. 그러나 후진적 정치 역량으로는 쉽게 타협을 못한다. 강자들만이 과감하게 주고받기를 통해서 상호발전을 한다.

한국교회 역시 지금쯤은 보수와 진보가 거의 없다. 한때, 2차 세계대전 전후로 고등비평이나 축자영감설을 말했지만 요즘 한국교회 강단설교를 발췌해서 분석해보라. 보수적 또는 진보적 해석이 뒤죽박죽일 것이다.

이는 18세기 초 유럽을 휩쓸었던 계몽기 현상을 제대로 수용하고, 또 대처하지 못해서 나타난 현상이다. 한국교회 초기에는 한국의 교회 인물들이 유학파가 적어서 계몽기와 대각성기의 파동을 선교사들 판단에 의존했던 결과가 성경해석의 난삽함에 빠졌던 것.

이제 한국교회는 보수적 성경해석과 사회적 행동원칙 간의 적절한 조화를 이루어내야 한다. 한국교회는 무시할 수 없는 사회계층을 형성했기에 때로는 유행을 선도하고, 또 사회 도덕률에 대한 리드를 과감하게 해갈 수 있는 사회성을 가져야 하기에 보수와 진보의 벽 또한 뛰어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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