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는 한국교회 청년들이 “믿음이냐 행함이냐”로 많이 고민하던 때가 있었다. 교회가 발전하려면, 신자다운 신자가 되려면 믿음이냐 행함이냐로 밤을 지새우면서 토론을 하고 편을 갈라서 논리적 대결을 하기도 했었다. 돌이켜보면 그래도 그때가 참으로 순수하고 정직했었다는 생각이 든다.

마르틴 루터도 성장기에 믿음이냐 행함이냐로 고뇌하며서 로마 순례를 했으며, 바울 선생도 사울 시절에 이 문제로 살인도 마다하지 않았기에 스데반 죽이는데 앞장섰던 것 아니었을까?

믿음이냐 행함이냐는 예수님의 정답으로는 믿음의 증거는 그 열매, 곧 행함이라고 한다. 그러나 기독교가 바울시대부터 믿음이라는 신앙의 가치를 너무 쉽게 생각한 것은 아니었을까?

바울의 글, ‘율법 아래 있는 자는 저주 아래 있나니…’(갈 3:10)라고 했을 때 성급한 신자들이 바울 선생의 이 글을 제대로 해석하고 소화했을까를 걱정하게 된다.

불교에서도 수행(修行)이라는 이름으로 “행함”과 같은 의미를 부여하고 모든 구도자는 그 수행 역량으로 진위를 가린다고 말한다. 불교집 논리 아닌 것으로도 우리는 행함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는 표현법을 사용하여 믿음과 행함(행실)의 상관관계를 단단히 묶어두고 있다.

믿음을 머리, 가슴을 행함으로 말하기도 하고, 믿음을 영(靈), 행함을 육(肉)으로 균형 잡아서 현실에서 그리스도인의 신앙을 규정하기도 한다.

코비드19 상황이 장기화되면서 한국교회 성도들은 그동안 부족했던 기도를 많이 했을 것이고, 자기반성과 성찰을 또 많이 하고 있을 것이다. 생활이 불편하고 경제가 위태롭기는 해도 신앙의 내면 성장을 위한 은혜의 기회로 볼 수도 있다. 믿음이냐 행함이냐, 이 둘이 하나님 또한 확실하게 터득할 좋은 기회로 삼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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