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수강필운그리스도의교회 담임목사
오수강
필운그리스도의교회 담임목사

기독교 신앙의 근원은 66건 성경에 있다. 지금까지 성경의 원본은 발견된 일이 없다고 하지만 현재까지 사용하고 있는 사본을 공인함으로 기독교도들의 믿음과 신앙생활의 근거로서 손색이 없었다고 믿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의 성경에 여러 가지 해석과 이해로 인해 기독교 신앙 자체가 하나로 통합을 이루지 못한 것이 신앙의 역사적인 흠으로 볼 수도 있다. 크게 몇 가지 사례를 들면 교회의 명칭, 신앙고백, 세례 형식, 예배 진행, 성의 착용, 교회 직분 자 명칭 및 임직 방법, 등이 있다. 물론 중요한 교리와 형식들이 다르게 이해하기까지에는 무수한 원인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그래도 이는 성경을 경전으로 삼아 신앙하는 신자들에게는 걸림돌이 될 수 있음을 모두 잘 알고 있다고 본다.     

겉으로는 기독교가 하나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속을 들여다보면 찢어지고 갈라져 본래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들에 의해 세운 교회 원형이 지워져 비슷하다고는 하나 다른 모습들이다. 교회를 이해하기 위해선 먼저 성경에 계시된 본래 교회가 어떤 모습이며 무슨 일을 위해 지상에 세워졌는지 분명해야만 한다. 예수님 공생애 당시 유대교 자체 속에도 여러 파당이 있었다. 바리새파, 사두개파, 에센파, 헤롯당 등이 섬기고 믿는 같은 하나님을 나름대로 신앙하는 방법을 달리하여 이해를 같이하는 부류들이 편당을 이루었다. 그렇지만 특히 바리새파와 사두개파는 정치적인 이해에 따라 이권에 협력하는 정치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종교의 가치는 따로 하다가도 이권에 대해서는 함께 하는 경우를 말한다.           

이천년이 지난 현대 기독교는 건물 옥상에 매어 단 십자가의 형태는 각기 다를지라도 의미는 유일하게 같다고 본다. 강단 강대상 위에 펼쳐진 성경도 여러 가지의 번역에 의해 해석을 달리하여 주석하는 관점이 달라 같은 성경이 여러 이해로 갈라져 있음도 안타까운 일이다. 그 가운데 일부는 원문의 뜻을 충분히 반영하여 번역하였다고 하지만 대표적인 오역은 불신자가 기독교도가 되는 길인 첫 번째 관문인 세례의식이다. 번역으로 세례가 옳으냐 아니면 침례가 맞느냐 하는 문제는 기독교가 해결해야 할 첫 번째 숙제다. 이러한 교리가 제대로 하나로 통합을 이루지 못한다면 기독교의 장래도 불투명하지 않나 하는 걱정이 앞선다.  
          
다음은 기독교가 종교적인 표현은 하나이지만 교리적으로는 수백 수천 가지로 나누어져 있음이다. 그중 교회 명칭은 매우 중요하다. 모두 그리스도의 교회로 통일을 이루어야 하는데 실상은 그렇지 못한 모습이다. 필자가 여러 번 지적하였듯이 교회의 명칭이 너무 세속적이며 추하고 천하다. 유흥업소나 여관, 일반 상점의 이름과 거의 구분키 어렵다. 이름이 다르면 하나로 연합하기가 더욱 어렵다. 성서에 여러 가지 교회 이름이 등장한다. 그중에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할 성경의 계시는 마태복음 16장18절 “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말씀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 내 교회를 세우리니,” 하셨다. 내 교회는 어떤 교회인가 사도 바울은 로마서 16장 16절에 “ 그리스도의 모든 교회 ” 라는 명칭을 사용했다. 성경에 계시 된 교회의 명칭을 인간에게 작명하도록 내버려 둔 것이 아니다. 구약의 예언과 신약의 성취에서 이미 교회 명칭이 계시 되었다. 거룩한 교회 명칭을 교단의 헌법이나 개 교회 지도자들의 금식 기도나 당회나 제직회에서 결정할 사안이 아니다. 교회의 명칭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 교회 명칭이 성경 계시의 근거 없이 임의로 세속적으로 사용함은 비진리가 아닌가?

더 중요한 것은 아무런 가책도 없이 이천 년, 수백 년간 사용하면서 진리의 중요성을 뒤로 한 채 인간의 구미에 맞도록 고안하고 연구하고 전통으로 만들어 지키고 있다는 현실이 안타깝다. 조금 유명세를 타면 인간의 짧은 지식을 동원해 유사 교리를 만드는데도 전혀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 특히 영성으로 성장을 이룬 지도자 따라 하기가 의식도 없이 흉내 내는 자들이 줄을 섰었다. 한 때 성장론이 교회 부흥의 교과서처럼 여기던 때에 너도나도 성장론에 정신을 팔았다. 하기야 그렇게 해서라도 한국교회의 성장을 이루었다고 자부할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그렇지 못한 작은 교회들은 운영에 어려움과 비참함이 성장의 그늘임을 알지 못한다. 한 성경과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는 한국교회의 모습은 천차만별이다. 사단의 세력은 세속적인 성장의 당근으로 본래 추구해야 할 영혼 구원과 구제와 선교는 잊게 할지도 모른다. 내 교단, 내 교파가 아니면 타 종교 취급하는 오늘의 한국교회 현실 한 성경으로 통일을 이루기는 요원한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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