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금지법이 구체화되는 날이 오지 않는다고 보장을 못한다. 기독교는 중세 가톨릭시절, 주로 AD 1,000~1,300여 년 어간에 부강했던 시절이 있었다. 물론 오늘날도 유럽은 부강한 나라들이지만 그때는 독점적이었기 때문인지 약자들에 대한 중세 유럽인의 학대는 무자비했었다. 이른바 이단자, 유대인, 동성애자, 나환자, 무슬림 등에 대한 박해가 극심했었다. 이어서 일반인들도 잘 아는 ‘마녀 사냥’이라는 이름까지 유럽 기독교의 오만은 하늘을 찔렀다. 그들의 학대는 계속 이어졌고, 십자군 전쟁기에 본격화된 유대인과 무슬림 학대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유럽인들이 사는 주거지역에는 유대인과 나병환자들이 다니는 길이 따로 있었다. 더 무엇을 말하랴. 이 정부가 예고하고 있는 대로 앞으로 교회가 차별적 습성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동반사회의 일원이 될 수 없는 날이 올 수도 있다. 평등사회, 차별 없는 사회를 만들겠다는데 더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서둘러 교회는 반성해야 한다. 프로테스탄트 신교는 가톨릭을 싫어하고 인정도 하려들지 않으면서도 중세 가톨릭의 편견과 자기 독점적 우월감에 빠진 행동은 거의 똑같으니 이를 어찌해야 하는가!

아벨을 죽인 살인자 형이 하나님의 창조 무대에서 동반하여 살아갔듯이, 이스마엘과 이삭이 부친 아브라함의 장례식을 같이 치룬 것을 보아도 저들은 우리 기독교가 생각한 대로 편견과 아집을 극복하면서 살아온 사람들임을 짐작할 수 있다. 기독교를 싫어하는 독재자나 사회주의적 계획을 가진 정부를 만나서 망신당하지 말고 교회는 생각을 좀 넓혀야 할 것이다. 왜 우리가 성소수자와 함께 예배하지 못하는가? 왜 나환자나 이슬람과 가까이 사귈 수 없는가?

역사과정을 돌이켜보면 기독교를 지배한 유럽사회가 물려준 악습을 우리가 답습할 이유가 없다. 약한 자와 함께 걸을 수 있으며, 곤고한 사람들, 생각이 잘못되어 세상을 오해하고 기독교인을 혐오하는 이들의 마음을 또한 이해할 수 있는 너그러움을 예수께 더 배워야 하지 않을까 한다. 살다 보면 내가 부족하고 넉넉하지 못해서 주변이 불편할 수 있음을 많이 발견했으면 좋겠다.

<복음인in 들소리>는 하나님의 교회다움을 위해 진력하는 여러분의 후원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동반자로서 여러분과 동역하며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함께 하겠습니다. 샬롬!

후원계좌 : 국민은행 010-9656-3375 (예금주 복음인)

저작권자 © 복음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